가상화폐 거래액 주식보다 많은데…법·규제 구멍 '숭숭'

입력 2021-04-18 06:11   수정 2021-04-18 15:14

가상화폐 거래액 주식보다 많은데…법·규제 구멍 '숭숭'
하루 24조 > 21조…가상화폐 거래소·외환·공시 등 관리 '사각지대'
업계·전문가 "가상화폐업 별도법 만들어 투자자 보호 나서야 할 때"

(서울=연합뉴스) 은행팀 =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거래금액이 이미 국내외 주식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거래 규모에 비해 관련 법이나 규제, 제도가 너무 허술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가상화폐는 법정화폐나 금융투자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를 보장할 수 없으니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기본 입장 아래 뒷짐을 지면서 가상화폐발 금융시스템 교란이나 투자자 피해 위험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가상화폐 하루 투자액 24조…동학·서학개미 보다 많아
일단 규모로만 보자면 가상화폐 투자는 더는 과거처럼 일부 소수 투자자가 참여하는 '그들만의 리그', 비주류 투자 행태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18일 가상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후 기준으로 원화(KRW) 거래를 지원하는 14개 거래소의 최근 24시간(하루) 거래대금은 216억3천126만달러(약 24조1천621억원)에 이른다.
공식 기관의 통계는 없지만, 가상화폐 거래에서 개인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가상화폐 업계의 설명이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3월 일평균 개인 투자자의 거래금액은 각 9조4천261억원, 9조7천142억원이었다.
결국 최근 개인의 가상화폐 하루 투자 규모(약 24조1천억원)가 국내 주식 투자 규모(유가증권+코스닥 약 19조1천억원)보다 크다는 얘기다.
여기에 3월 하루 평균 해외 주식 결제액(약 2조원)을 감안하면 '동학개미'와 '서학개미'의 주식 투자액을 모두 합쳐도 가상화폐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
│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대상별 거래규모 비교 │
│ (각 거래소·코인마켓캡·예택결제원 자료 취합)│
├──────┬───────┬───────┬───────┬──────┤
│투자 대상 │가상화폐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해외주식│
││(4월15일. 14개│(3월 일평균) │(3월 일평균) │(3월 일평균)│
││ 거래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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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거래대금│24조1천621억원│9조4천261억원 │9조7천142억원 │2조원 │
└──────┴───────┴───────┴───────┴──────┘

◇ 사기업 은행이 떠맡은 가상화폐 거래소 검증
하지만 현행 가상화폐 관련 법률, 제도는 불어난 덩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선 난립한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안전성, 위험성 등을 평가해 걸러낼 공식 기준조차 없어 민간기업인 은행이 개별 거래소에 대한 모든 검증 책임을 사실상 떠안고 있다.
지난달 25일 시행된 개정 특금법과 시행령은 가상화폐 거래소에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하고 반드시 은행으로부터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아 영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로부터 실명 확인 입출금계좌 발급 신청을 받으면, 해당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의 위험도·안전성·사업모델 등에 대한 종합적 평가 결과를 토대로 실명 입출금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거래소의 내부 통제 시스템,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구축한 절차와 업무지침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될 때만 실명계좌를 내주라는 뜻인데, 실명계좌가 없으면 영업이 불가능한 만큼 결국 은행이 각 거래소에 대한 '종합 인증' 책임을 지게 된 셈이다.
이처럼 금융당국 등 정부는 갑자기 은행에 가상화폐 거래소의 '명줄'을 쥐여주면서, 구체적 조건이나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은행권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필수적 평가요소, 절차 등 최소한의 지침을 요청했지만, '각 은행이 개별적으로 기준을 마련해 평가하라'는 취지의 답을 받았다.
결국 혼란에 빠진 은행들은 궁여지책으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 공통 평가지침' 등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 용역까지 준 상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명계좌를 내준 뒤 문제가 되면 분명히 은행에 책임도 물을 텐데, 적정 수준의 평가 기준도 정부가 주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른 시중은행 중은행 관계자는 "당국 가이드라인과 감독 권한도 없는 은행이 거래소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증권사가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모든 주식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 법적 근거 미비한데 '가상화폐 송금 의심된다' 막으니 대혼란
최근 은행 창구에서 벌어지는 해외 송금 관련 혼란도 가상화폐의 법적 허점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이달 들어 해외 송금액이 급증했는데, 내·외국인이 국내보다 싼값에 해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기 위해 돈을 보내거나 들여온 비트코인을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차액을 남긴 뒤 해외로 빼내는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권에 따르면 앞서 지난 8일 기획재정부는 은행 실무진이 참석한 외환거래규정 관련 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고, 이후 9일부터 주요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창구에 '가상화폐 관련 해외송금 유의사항' 공문을 내려보냈다.
대체로 해당 은행과 거래가 없던 개인 고객(외국인 포함)이 갑자기 증빙서류 없이 해외로 보낼 수 있는 최대금액인 미화 5만달러 상당의 송금을 요청하거나 외국인이 여권상 국적과 다른 국가로 송금을 요청하는 경우 거래를 거절하라는 지침이다.
하지만 현재 가상화폐 관련 법이나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은행권은 일반 자금세탁 등 불법거래를 위한 분산·차명 송금 관련 규제를 동원해 관리에 나선 상태다.
외국환거래법상 건당 5천달러, 연간 5만달러까지는 송금 사유 등에 대한 증빙서류 없이 해외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와 관련된 해외 송금을 정확히 걸러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은행들은 현재 임의로 건당 5천달러, 연간 5만달러 미만 송금이라도 일단 의심이 되면 막고 보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선 은행 창구에서는 최근 해외 송금을 놓고 고객들과의 실랑이도 잦아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는 현재 외국환거래법령상 법적인 성격이 정의되지 않아 관련 자금을 해외로 송금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인 것으로 안다"며 "예를 들어 유가증권 취득, 부동산 취득 등을 위한 해외송금은 그 대상이 명확하고 지급수단에 대한 사전·사후적 확인 절차도 가능하지만, 가상화폐에는 이런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국에서는 가상화폐 관련 해외송금 거래가 불가하다고 하지만, 법령상 정의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직원의 자의적 판단 아래 거래 여부를 결정해야 하니 고객들의 민원 리스크 등을 은행이 떠안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연간 5만달러까지는 송금 사유 등에 대한 증빙 서류 없이 해외 송금이 가능하지만, 최근 관련서류(자금출처·자금용도) 제출을 일일이 요청하니 고객과의 갈등이 커지고 민원도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 "일본은 정부 승인 코인만 상장…투자자보호 등 위해 별도 법 만들어야"
관련 법이 없어 가상화폐 거래소마다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는 공시도 문제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어떤 종류의 코인이 어떻게 생성됐고,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 등이 공시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전달돼야 하는데, 아직 가상화폐 허위 공시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는 상태다.
이런 법적 공백 상태에서 모든 공시의 진위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지자, 아예 개별 가상화폐가 공시를 자유롭게 직접 게시판 형태로 올리고 사후에 사실이 아닐 경우 페널티(처벌)를 받는 방식을 도입하는 거래소도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과거 가상자산 거래가 묻지마 투자로 치부됐던 이유 중 하나가 상장 코인(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공시 부재 문제였다"며 "공시 규제가 의무화된 부분도 아니고 거래소별 방침도 달라 투자자 혼란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어떤 상품(코인)이 된다, 안된다'에 대한 가이드가 불명확하다"며 "일본의 경우 금융청에서 승인한 '화이트리스트' 코인을 상장한 거래소만 운영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가이드는 어느 산업에서나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도 "특금법은 자금세탁 방지에만 초점을 맞춘 법으로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 업계 운영형태, 투명한 시장환경 조성 등에 대한 규정은 전무(全無)한 게 사실"이라며 "규정이 없으니 코인 펌핑(가격상승 조작), 공시제 미비에 따른 정보 비대칭성 등의 문제가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가상화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관련 법·규정 마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지난 7일 열린 국무조정실 주재 가상화폐 관련 관계부처 회의에서 당시 문승욱 국무2차장은 "가상자산은 법정화폐·금융투자 상품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출신인 이종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가상화폐 투자자가 몇백만이고, 거래 규모가 하루 몇십조원에 이르는데도 아직 가상자산에 대한 일관되고 통일된 규제가 없는 실정"이라며 "단순히 정부가 가상자산 투자 조심해라, 사기 등 처벌하겠다고 경고하는 정도인데 그것만으로는 투자자 보호나 가상자산·블록체인 기술의 산업적 발전이 불가능하다. 가상자산만을 위한 별도의 업권법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shk99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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