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사면 건의 이어지지만…여권 "시기상조"

입력 2021-04-29 05:30   수정 2021-04-29 11:42

이재용 사면 건의 이어지지만…여권 "시기상조"
재계·시민단체·학계, 명분 놓고 갑론을박




(서울=연합뉴스) 김종현 기자= 최근 반도체 위기론을 배경으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가 줄을 잇지만, 정부·여당은 꿈쩍도 않고 있다.
여권은 이 문제가 국정농단 사건과 연계된데다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볼 수 없다는 시각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향점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내부의 컨센서스 형성이 쉽지 않은 사안인데다 국민 여론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정부·여당 "아직은 시기상조"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28일 경제지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과 관련 "이 문제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연결돼 있다. 사면 문제를 경제 영역으로만 판단할 사항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가진 사면권은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엄정한 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는 (이재용 사면을) 고려한 바 없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27일 경제 5단체가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공식 건의한 데 대해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건의와 관련해 현재까지 검토한 바 없으며, 현재로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지난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재용 부회장 사면 가능성에 대해 "특별사면은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면 쉽지 않다. 그런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보지, 공감대가 마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여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보면 당정은 이 부회장의 사면을 공론화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호중 원내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의 발언에서 그런 기류가 감지된다.
윤 원내대표와 정 전 총리는 당내 의견을 두루 듣고 정부와도 소통할 수 있는 위치다. 따라서 이들의 견해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과 관련한 여권 내부의 일반적 '정서'로 읽힌다.


◇ 재계·시민단체 '갑론을박'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27일 대한상공회의소,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단체 명의로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건의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글로벌 산업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기"라면서 "과감한 사업적 판단을 위해선 기업 총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28일 공동성명에서 "이 부회장 사면 논의는 사면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사법제도와 경제범죄에 대한 원칙을 뒤흔들 수 있는 만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국정농단 범죄 사면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정치적 사안이 아닐뿐더러 우리 경제와 삼성그룹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사익을 위해 삼성그룹과 국민연금에 손해를 입히고 정권 실세에 불법 로비를 한 중범죄자에게 사면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 전문가들도 명분 놓고 의견 갈려
이 부회장의 사면론에 대해서는 학계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렸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의 경우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돼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국제적인 반도체 경쟁이나 백신 확보 외교 등 국가를 위해 이 부회장이 뛸 수 있는 명분이 있다고 한다면 풀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했다.
박영준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지금 숨 가쁘게 전개되는 반도체 세계대전은 한 두 달의 시간이 결정적일 수도 있다"면서 "장기적 관점의 투자나 방향 설정 등 큰 판단은 현재의 경영진이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이 부회장의 사면을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재판에도 연루된 데다 사면 명분이 부족하지 않으냐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불법 합병과 관련된 재판도 진행 중인 터여서 사면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보며 명분도 약하다"면서 "반도체 이슈는 그 분야에 정통한 전문경영인들이 충분히 판단하고 헤쳐나갈 수 있지 않으냐"고 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국가 경제 기여 등을 이유로 재벌 총수들에 대한 사면이 많이 이뤄졌는데 이는 법이나 정의, 공정성 측면서 바람직하지 않고 재벌들의 잘못을 시정하는 데도 역효과"라면서 "반도체 위기론을 빌미로 사면을 거론하기엔 명분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kimj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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