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전기료 규제하면 해외투자자들 정부에 국제중재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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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5-07 16:16   수정 2021-05-07 16:53

[팩트체크] 전기료 규제하면 해외투자자들 정부에 국제중재 제기?

[팩트체크] 전기료 규제하면 해외투자자들 정부에 국제중재 제기?

이소영 의원 "정부의 한전 경영 개입으로 투자자-국가 소송(ISD) 우려"

한전 해외투자자 지분율 23.7%…미국인 주주 있으면 한미FTA 근거해 ISD 가능

단, 공공복지위한 조치엔 ISD면제 가능…전기요금이 면제대상인지에 신중론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정부가 전기요금 규제를 계속할 경우 자칫 해외투자자들로부터 국제중재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여당 소속 현직 국회의원이 제기해 논란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의정활동을 보고하는 SNS 글을 통해 "영리기업인 한전(한국전력)의 기본적인 경영상 의사결정을 정부가 제약하게 되면 해외투자자로부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ISD는 우리나라 기업에 투자한 해외투자자가 우리 정부의 정책 결정 등으로 손해를 입을 경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 국제중재기관에 제기하는 국제중재 소송이다.

이와 더불어 이 의원은 전날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전기를 누구로부터 살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전기요금 약관을 개정하려면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한전이 "영리기업으로서의 기본적인 경영상 의사결정도 할 수 없는 것은 리스크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을 빚자 6일 SNS를 통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다는 엄포와 우려가 수년 전부터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임명될 장관이 이러한 이슈를 충분히 인지하고 리스크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조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주장과 관련해 네티즌들은 국내 전기요금 정책에 해외투자자가 무슨 권리로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등 의문을 표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한전은 정부가 절반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공기업이니 당연히 정부가 전기요금도 결정할 수 있다", "국내 정책에 불과한 전기요금 책정은 해외투자자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과연 전기요금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이 한전 지분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국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 공기업인 한전 관련해 ISD 가능?…미국인 주주 있다면 한·미 FTA 입각해 할 수 있어

한국 기업에 투자한 해외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하기 위해선 한국과 해외투자자의 소속 국가 사이에 ISD 제소를 합의하는 내용의 조항이 포함된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투자보장협정(BIT)이 체결돼 있어야 한다.

반대로 외국기업에 투자한 한국 국민도 한국과 외국기업이 속한 국가 사이에 ISD 조항이 포함된 FTA나 BIT가 체결돼 있다면 해당 외국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다.

즉 두 국가가 FTA나 BIT 등을 통해 '자국에 투자한 상대국의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구체적인 합의를 한 경우에만 한 나라 국민이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원의 주장대로 한전에 투자한 해외 투자자들 중에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는 이들이 존재할까?

한국과 ISD를 합의한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이다. 지난 2012년 발효된 한·미 FTA 협정문에는 상대국 투자자를 자국민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투자자 보호 의무'를 규정한 ISD 조항이 있다.

지난 2018년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낸 소송이 한·미 FTA에 따라 제기된 대표적인 ISD 소송이다.

한국은 미국 외에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등 유럽연합에 참여하지 않은 4개국의 경제연합체)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중국, 칠레, 싱가포르, 인도, 페루, 터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베트남과도 FTA 또는 BIT 체결을 통해 ISD를 합의한 상태다.

즉, 한전에 투자한 해외투자자 가운데, 한국과 ISD를 합의한 미국 등 국가의 투자자가 존재한다면 이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한전 등에 따르면 한전은 상장주식의 절반이 넘는 51.1%를 한국 정부(한국산업은행 지분 포함)가 소유했기 때문에 '공기업'에 해당하지만, 해외투자자의 지분율도 23.7%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해외투자자의 구체적인 국적은 확인되지 않지만, 뉴욕증권거래소를 통해 미국주식예탁증서(ADR) 형태로 주식을 보유한 해외투자자의 지분율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4.04%인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이 미국주식예탁증서를 보유하기 위한 요건이 까다로운 만큼 이들 대부분이 미국 국적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중재 전문가인 박장우 전 법무부 국제법무과장(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은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미 FTA에 따라 우리 기업의 주식을 한 주라도 보유한 미국인 투자자는 이론상 ISD 제소가 가능하다"며 "다만 (실제로 제소가 이뤄진다면) 손해 규모 등 현실적인 이유로 개인 투자자보다는 지분율이 높은 기관 투자자 위주로 소송이 제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기요금 정책에도 ISD 가능할까?…FTA 부속 합의 '공공복지 목적의 비차별적 규제는 예외적 상황 제외하고는 면책' 적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전 주식을 보유한 미국인 투자자가 한·미 FTA에 따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은 맞지만, 전기요금 책정과 같은 공공분야 정책과 관련해서는 ISD 합의 적용이 면제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미 FTA에 따라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상대국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대국 투자자를 자국민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을 '내국민대우 의무'(National Treatment)와 상대국 투자자를 다른 국가 투자자보다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을 '최혜국대우 의무'(Most Favored Nation Treatment), 충분한 보호와 안전을 제공할 '최소기준대우 의무'(Minimum Standard of Treatment),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본 상대국 투자자에게 신속하고 적절한 효과적 보상을 해야 할 '수용 및 보상 의무'(Expropriation and Compensation) 등을 준수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은 이 중 '수용 및 보상 의무'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에는 전기요금과 같은 공공분야와 관련된 정책의 경우엔 ISD 합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는 내용의 별도 조항이 존재한다.

한·미 FTA 협정문 제11장 부속서 제3조 '나'항은 "그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춰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가격 안정화와 같은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을 보호하기 위한 당사국의 비차별적인 규제 행위는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공공복지 목적을 위한 정부의 비차별적 조치나 과세정책으로 발생한 투자자 손해는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에서 제외해 ISD 제기를 못하도록 한 것이다.

◇2011년 당시 정부 "한미 FTA하에서도 공공요금 정부 규제 권한은 유지되므로 소송 제기 근거 안돼"…일부 전문가는 '신중론'

이 문제와 관련, 이명박 정부 시절로 한미FTA 한국 국회 비준 직후인 2011년 11월29일 김정관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은 외국인 투자자가 ISD를 이용해 정부의 전기요금 규제를 제소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한미 FTA 하에서도 전기, 수도, 가스 등 공공 서비스 요금에 대한 정부의 규제 권한은 그대로 유지되므로 소송 제기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의 견해 중에는 정부의 이런 입장과 다소 온도 차가 느껴지는 것도 존재한다.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중재법원 초대 상임위원을 지낸 임성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면책조항의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해석이 애매모호해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이 이에 해당할지 여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며 "다른 국제중재 판정 사례를 꼼꼼히 살펴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형로펌 소속 국제중재 전문변호사도 "전기요금 정책이 면책조항에서 언급한 공공복지 목적을 위한 규제행위에는 해당되지만 비차별적인 조치인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전기요금 정책이 미국인 투자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차별적 조치가 아니라는 견해와, 국내 투자자는 전기요금 인하라는 혜택을 받는 반면 미국인 투자자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않으므로 차별적 조치라는 견해가 대립한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팩트체크팀은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hyun@yna.co.kr)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hy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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