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수확량 20% 늘린 벼 개발…세계적 식량 증산 기여
시진핑 식량안보 강조 속 대대적 추모…해시태그 조회 66억 건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중국에서 수확량이 많은 교잡 벼를 1970년대에 최초로 개발한 농학자 위안룽핑(袁隆平) 중국공정원 원사가 91세로 세상을 떠나 국민적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위안 원사는 22일 오후 1시께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의 병원에서 여러 장기의 기능 쇠퇴로 타계했다고 인민일보가 23일 보도했다.
그는 중국에서 '교잡 벼의 아버지'로 불리며 큰 존경을 받았다.
그가 개발한 벼는 기존 품종보다 수확량이 20% 많았는데 연간 7천만명이 추가로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위안 원사는 1960년대 대기근 이후 벼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연구에 매진해 1973년 세계 최초로 수확량이 많은 하이브리드 벼를 만들어냈다.
그는 중국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농업정책을 비판했다가 정치적 압력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살아남아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위안 원사는 고령에도 올해 초까지 현장을 지키며 연구를 계속했다. 가장 최근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는 염류 알칼리 토양에서 자라는 쌀을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2018년 두바이에서 이 품종을 시범 재배하기도 했다.

그가 개발한 교잡 벼는 1976년 대규모 도입 이후 국가적 식량 안보를 뒷받침했으며 세계적으로 배고픔과 가난을 퇴치하는 데 기여했다고 중국 농업농촌부는 평가했다.
농업농촌부는 위안 원사의 별세를 "중국 농업분야의 큰 손실"이라고 애도하면서 종자 산업의 혁신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빗속에서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전날 한 꽃 가게 주인은 국화 3천 송이가 모두 다 팔렸으며 주문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교인 충칭 시난대학의 위안 원사 동상 앞에도 꽃다발이 쌓이고 있다.
전날 운구차가 병원을 떠날 때 수백명이 "위안 할아버지, 잘 가세요"라고 외쳤다. 운구차가 지나가는 도중에 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위챗과 웨이보 등 온라인에서도 추모 열기는 뜨겁다.

'#위안룽핑 별세#'라는 해시태그는 웨이보에서 무려 66억 건의 조회 수를 올렸으며 댓글은 1천300만 건이 달렸다.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CCTV 등 주요 매체들은 위안 원사의 별세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를 조성했다.
신화통신은 그가 세계에 큰 공헌을 했다면서 조기 게양을 건의했다.
그의 장례식은 오는 24일 열릴 예정이다.
인민일보는 위안 원사가 2가지 꿈이 있었는데 하나는 '높이 자란 벼 아래서 시원함을 즐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교잡 벼가 세계를 뒤덮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인도와 베트남, 필리핀, 미국, 브라질 등지에서 교잡 벼가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전체 벼의 5분의 1이 위안 원사가 개발한 교잡 벼에서 비롯된 품종들로 전해졌다.
중국의 14억 인구를 먹이는 것은 여전히 막중한 과제다.
지난해 시진핑 국가 주석은 식량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음식 낭비 반대 캠페인이 벌어졌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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