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출발부터 삐걱대더니…아소의 '저주받은 올림픽론' 재조명

입력 2021-07-21 18:36   수정 2021-07-22 11:59

[올림픽] 출발부터 삐걱대더니…아소의 '저주받은 올림픽론' 재조명
유치과정서 오염수 논란·금품 스캔들…개막 앞두곤 코로나·연쇄사퇴 파문
'정상적으로 열릴까' 회의론 마저…방일예정 정상 수도 직전대회 절반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그의 발언은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실상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말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 얘기다.
거친 말을 잘해 '망언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아소 부총리는 작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속에서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의 연기·취소론이 부상하자 '저주받은 올림픽'이라고 정의했다.
올림픽 역사를 보면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940년의 삿포로 동계올림픽과 그해 여름의 도쿄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취소됐다.
이어 40년 만인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 국가들이 보이콧해 반쪽 대회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다시 40년 만인 도쿄 대회가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연기·취소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 아소 부총리의 '40년 주기 올림픽 저주론'이었다.



◇ 유치 단계부터 논란…아베의 '오염수 통제' 허언
1964년 하계 대회에 이어 도쿄에서 2번째로 열리는 2020올림픽은 유치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유치의 주역은 2012년 12월 제2차 집권을 시작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다.
그는 2020년 대회의 개최 도시 결정을 앞두고 있던 2013년 1월 유치위원회 평의회의 최고고문을 맡아 직접 유치 활동에 나섰다.
당시 총리로 복귀한 지 얼마 안 된 아베는 올림픽 유치 명분으로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을 세계에 알린다는 점을 내세웠다.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유치 연설에 나섰던 그는 동일본대지진 때 폭발사고가 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대해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를 폐로 과정의 최대 난제로 껴안고 있다.
계속 불어나는 오염수를 어쩌지 못하고 결국은 삼중수소(트리튬) 등의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상태로 바다로 흘려보내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베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거짓말을 해 도쿄올림픽을 유치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치 과정에서 IOC 위원들을 상대로 한 금품 로비 의혹도 불거졌다.
도쿄는 당시 '부흥 올림픽'을 테마로 내세워 스페인 마드리드, 터키 이스탄불과 경쟁한 끝에 2020년 대회를 가져왔는데, 컨설팅 계약을 위장해 일부 IOC 위원 측에 금품을 뿌린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프랑스 사법당국이 수사 중인 이 의혹으로 다케다 스네카즈(竹田恒和)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회장이 2019년 3월 IOC 위원직을 사임한 뒤 그해 6월에는 JOC 회장 연임도 포기하고 물러났다.



◇ 끊이지 않는 불상사…'여성 멸시' 발언 대회 조직위 수장 중도하차
2020도쿄올림픽은 준비 과정에서도 불상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졌다.
가장 대표적인 스캔들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대회 조직위원회 회장의 여성 멸시 발언 파문이다.
지난 2월 JOC 임시 평의원회에서 그가 여성 이사 증원 문제를 언급하면서 "여성이 많은 이사회는 (회의 진행에) 시간이 걸린다"고 발언한 것이 일본 사회에서 여성 멸시 논란을 촉발했다.
모리 회장 본인과 일본 정부는 논란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넘기려 했다.
그러나 성평등을 강조하는 올림픽 이념에도 어긋나는 '망언'이라는 비판론이 국내외에서 강해지자 모리 회장은 문제의 발언을 하고 나서 9일 만에 사실상 쫓겨나듯 조직위를 떠났다.



모리 회장이 사임한 지 한 달여만인 올 3월에는 개·폐회식 총괄책임자인 사사키 히로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여성 연예인의 외모를 모욕한 사실이 드러나 대회 조직위는 다시 소용돌이에 빠졌다.
개회식 연출안으로 진행자, 배우, 가수로 활약하는 개그우먼 와타나베 나오미(33)의 뚱뚱한 몸매에 착안해 그를 돼지로 분장시켜 연기토록 추진한 것이 한 주간지의 보도로 알려진 것이다.
엄청난 비판 여론 속에 사사키 디렉터가 사임하면서 도쿄올림픽 이미지에는 다시 흠집이 났다.
그의 사임 후에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폐회식은 연출 총책임자가 없는 상태로 열리게 됐다.
개막이 임박해서도 올림픽 행사 진행에 차질을 야기할 수 있는 불상사가 속출하고 있다.
학창 시절 장애인을 괴롭혔다는 논란에 휩싸인 뮤지션 오야마다 게이고(小山田圭吾)가 지난 19일 도쿄올림픽 개회식 음악감독직을 내놓은 데 이어 대회 조직위 측이 문화프로그램의 하나로 준비해온 이벤트에 출연할 예정이던 그림책 작가인 노부미가 과거의 차별적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출연진에서 빠졌다.



◇ 결정타는 코로나19 팬데믹…개막 후 대회 지속 가능성에 회의론
일본 정부와 도쿄도(都)가 2013년 9월 유치에 성공한 이후 7년 넘게 준비해온 대회 자체를 휘청이게 만든 결정타는 코로나19의 세계적인 대유행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코로나19로 '1년 연기'라는 올림픽 사상 초유의 기록을 쓴 뒤 마침내 막을 올리게 된 2020년 도쿄 대회는 코로나19의 굴레 속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전인미답의 길을 계속 가야 하는 상황이다.
작년 3월 아베 당시 총리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1년 연기에 합의하면서 인류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증거로 온전한 형태의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이것 또한 허사가 되고 말았다.
1년이 지나는 동안 일본에서 코로나19가 진정되기는커녕 전염성이 한층 강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무관중 올림픽 개최라는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시중 감염뿐만 아니라 선수 등 대회 관계자의 감염이 급속히 퍼지는 상황이어서 막을 올리는 도쿄올림픽이 예정된 폐회 기간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를 놓고 회의론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올림픽 경기장이 집중된 도쿄 지역에선 대회 개막을 이틀 앞둔 21일 1주 전과 비교해 683명이나 많은 1천832명의 신규 확진자가 쏟아져나왔다.
무토 도시로(武藤敏郞) 대회 조직위 사무총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며 확진자가 급증하는 등의 상황이 닥치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론적인 답변일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 중도 취소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이 주한 일본공사의 망언 등 문제 속에서 무산된 가운데, 개막을 축하해줄 각국 최고위급 사절들의 규모도 빈약하다.
21일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개회식을 사흘 앞둔 전날 기준으로 도쿄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할 정상급 인사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포함 20명 미만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직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의 절반 수준이다.
아베 정책을 그대로 계승해 도쿄올림픽 개최를 결국 성사시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20일 도쿄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백신 접종도 시작돼 긴 터널에서 마침내 (코로나19 사태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치르면서 스가 총리의 말대로 코로나19라는 터널을 조만간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여전히 긴긴 터널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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