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게 드리운 아베 그림자…기시다, 존재감 확보 '안간힘'

입력 2021-10-01 15:19   수정 2021-10-01 18:03

짙게 드리운 아베 그림자…기시다, 존재감 확보 '안간힘'
3A에 보은성 인사…젊은 의원 발탁해 쇄신 이미지 강조
주요 파벌 배려하며 하루 늦은 인사…관방장관 인선 우왕좌왕
내달 총선은 기시다 리더십 시험대…이달 14일 국회해산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출범을 앞둔 일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기시다는 건재를 과시한 아베와 그 측근들을 배려하면서도 안팎의 쇄신 요구를 고려해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양상이다.
내달 실시될 총선은 기시다 리더십의 첫 시험대이며 일본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3A' 지원받아 총리 되는 기시다…'논공행상' 인사
4일 임시국회에서 총리로 선출될 예정인 집권 자민당 새 총재 기시다가 1일 내놓은 당 간부 인사에서는 아베의 측근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세제조사회장이 당 넘버2인 간사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 우선 눈에 띈다.
아마리는 아베,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 더불어 '3A'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아베 정권의 주축이었다.
그는 지난달 29일 실시된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진영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기시다의 당선에 기여했다.



아마리는 최대 파벌 호소다(細田)파 지주인 아베가 총재 선거 결선 투표 때 기시다에게 표를 몰아주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아소파 소속인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이 총재 선거에 출마하는 바람에 노골적으로 기시다를 지지하기 어려운 아소를 대신해 아소파의 표를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 아마리는 두 번째로 큰 파벌인 아소파 소속이다.
기시다는 당의 자금 관리 책임자이며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간사장에 아마리를 임명해 선거 과정의 공로에 보답한 셈이다.
아울러 실력자인 아베·아소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는 '파이프'로 아마리를 선택한 셈이다.



아마리가 총재 선거 때 아베의 전폭 지원을 받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을 당 3역 중 하나인 정무조사회장(정조회장)에 임명한 것도 아베를 배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다카이치는 표면적으로는 총재 자리를 놓고 기시다와 경쟁한 인물이지만 그가 1차 투표에서 예상보다 많이 득표한 것이 기시다가 여론 선호도 1위인 고노를 누르고 당선되는 원동력이 됐다.
다카이치를 지지한 국회의원 다수는 3A의 의향에 따라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아소는 자민당 부총재로 임명됐다.
제2차 아베 정권이 출범한 2012년 12월부터 8년 9개월 넘게 부총리 겸 재무상으로 활동한 아소에게 또 요직을 준 셈이다. 아소는 아베의 맹우로 분류된다.

◇ 실력자 눈치 보며 하루 늦춘 인사…관방장관 인선 '우왕좌왕'
당내 실력자와 주요 파벌의 도움을 덕에 총리 자리를 예약한 기시다가 자기 생각대로 과감한 인사를 하지 못한 정황이 곳곳에서 보인다.
1년 전 총재가 된 스가의 경우 선거 다음 날 바로 당 간부 인사를 단행했는데 기시다의 경우 이틀 후에 인사를 발표했다.



이는 주요 파벌과의 협의 때문으로 보인다.
기시다는 선거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아소를 만나 약 1시간 면담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은 인사와 관련한 협의는 물밑에서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라며 양측의 공개적인 만남이나 인사 지연이 결국 주요 파벌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1일 분석했다.
총리관저의 핵심인 관방장관 인선을 둘러싼 혼선은 기시다가 처한 미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기시다는 아베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을 관방장관으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앞서 호소다파에 전달했다.
기시다는 선거를 앞두고 하기우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아베가 자신의 복심인 하기우다에게 요직을 챙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아마리와 다카이치에 이어 하기우다까지 아베의 측근에게 지나치게 많은 요직을 줄 경우 아베의 아류 정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기시다는 하기우다와 마찬가지로 호소다파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전 문부과학상을 관방장관으로 임명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쓰노는 2012년 총재 선거 때 아베가 아닌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를 지지하는 등 아베와는 거리를 둔 인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기시다는 관방장관으로 마쓰노를 기용하는 편이 하기우다를 택하는 것보다 당내에서 이해를 얻기 쉽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베가 수긍할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아사히는 분위기를 전했다.
아마리가 간사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5년 넘게 자민당 2인자로 군림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가 밀려난 것도 눈여겨볼 만 한다.
그는 1년 전 스가가 총리가 될 때는 발 빠르게 '킹 메이커' 역할을 했으나 후보 4명이 경쟁한 올해 총선에서는 대응이 늦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만 82세인 니카이의 영향력 퇴조는 그보다 한살 어린 아소와는 대비된다.

◇ 젊은 의원 요직 발탁해 '쇄신' 강조
기시다가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 애쓴 흔적은 역시 당 3역 중 하나인 총무회장에 3선 중의원 의원인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를 임명한 것이다.
후쿠다는 조부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1905∼1995)와 부친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가 모두 일본 총리를 지낸 정치 명문 가문 소속으로 자민당의 차세대 리더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한 2012년 12월 처음 당선돼 정치 경험이 짧다.
심지어 각료 경험도 없어 그가 당내 조정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기시다가 후쿠다를 기용한 것은 아베 정권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자민당이 쇄신에 힘쓰고 있다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기시다는 지난달 29일 당선 직후 "노년·장년·청년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인사에 관한 견해를 밝혔는데 청년의 대표로서 후쿠다를 발탁한 셈이다.
후쿠다는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지지율 하락에 위기감을 느낀 3선 이하 중의원 의원 90명이 '당풍(黨風·당의 분위기나 기풍) 일신 모임'을 구성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모임은 파벌 논리를 벗어난 자율 투표나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당 운영을 요구하는 등 낡은 질서를 혁파할 것을 주장했다.

◇ 내달 총선…시험대에 오르는 기시다 리더십
기시다는 4일 총리로 취임할 예정이며 내각 인선의 윤곽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
당 간부 인사와 현재까지 드러난 내각 인선 동향에 비춰보면 전체적으로 아베와 그 맹우의 영향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시다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다.
기시다가 차별화를 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총선이다.
총선 결과는 자민당의 새로운 간판이 된 기시다의 지도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8년 가까이 이어진 아베 정권과 아베를 계승한 스가 정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돌아서면서 스가 퇴임 선언 직전까지 내각과 자민당 지지율이 급락한 점에 비춰보면 결코 녹록한 상황이 아니다.



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된 스가가 퇴임하기로 했고 일본 주요 언론이 총재 선거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최근 자민당 지지율이 다시 상승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과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자민당이 과거에 비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운데 선거 때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기시다의 정치적 구심력을 강해질 수 있으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권력 기반이 취약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4일 소집할 임시 국회를 14일 폐회하는 일정을 야당에 제시했다.
여당 내에서는 기시다가 새 내각 발족 후 중의원 해산에 나서는 경우 '디데이'가 10월 14일이 될 것이며 중의원 선거 투표일은 내달 7일 또는 14일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달 21일 중의원 임기가 만료하기 때문에 기시다가 국회를 해산하지 않더라도 총선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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