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내각 야스쿠니 가을제사 참배 유보…韓中 눈치 봤나?

입력 2021-10-18 19:49  

기시다 내각 야스쿠니 가을제사 참배 유보…韓中 눈치 봤나?
기시다 총리 공물만 보내…취임 초기 외교논란 부담 고려한 듯
다카이치 자민당 정조회장 등 일부 정치인 직접 참배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지난 4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내각이 출범하고 처음 맞은 야스쿠니(靖國)신사의 가을 큰 제사에 맞춰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한 현직 각료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예년과 비교해 하루 단축돼 17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야스쿠니신사 추계 예대제(例大祭·큰제사)에 맞춰 참배한 기시다 정권의 각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예대제는 봄(4월)과 가을(10월)에 치르는 큰 제사로, 야스쿠니신사의 연중행사 중 태평양전쟁 패전일(8월 15일) 제사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꼽힌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제사 시작 첫날인 17일 '내각 총리대신 기시다 후미오' 명의로 '마사카키'라는 공물을 바쳤다.
마사카키는 제단에 올리는 비쭈기나무(상록수의 일종)를 일컫는다.



기시다 총리가 직접 참배하지 않고 공물을 보낸 방식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두 전직 총리를 답습한 것이다.
2012년 12월 제2차 집권기에 들어간 아베 전 총리는 이듬해 12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는 작년 9월 퇴임 때까지 주요 행사 때마다 공물을 보내는 것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근대화 시기에 일본 침략으로 고통당한 한국과 중국이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를 포함한 태평양전쟁 지도부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강하게 반발해 왔기 때문이다.



스가 전 총리도 아베와 마찬가지로 재임 중에는 춘·추계 예대제와 8.15 패전일에 맞춰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만 보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당당하게 참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추계 예대제에 맞춰서도 아베는 지난 14일, 스가는 17일 각각 참배했다.
이 때문에 일본 총리가 공물 봉납 방식으로 야스쿠니신사의 위령 행사에 참여하다가 퇴임 후 직접 참배하는 구도가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바치는 것도 침략전쟁을 이끈 전범들을 추모하는 성격을 띠는 것이어서 한국과 중국에선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이 결여된 행위로 보고 있다.
기시다 내각 인사 가운데 고토 시게유키(後藤茂之) 후생노동상과 와카미야 겐지(若宮健嗣) 엑스포(만국박람회) 담당상도 공물을 바쳤다.
직전의 스가 내각 시절에도 춘계·추계 예대제에 맞춰 참배한 각료는 없었다.
다만 올해 8월 15일 패전일에는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현 경제산업상),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 이노우에 신지(井上信治) 엑스포상 등 3명이 참배했다.
교도통신은 올해 추계 예대제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현직 각료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갓 출범한 기시다 정권의 외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 핵심 인사 중에는 직접 참배자가 나왔다.
자민당 지도부 3역(役) 중 한 사람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정조회장은 18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지난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아베의 지지를 받으며 기시다 총리와 대결했던 다카이치는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을 어떻게 위령할지는 각 나라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는 이날 참배 후에도 취재진에게 "국책(國策)에 목숨을 바친(순직한) 분들에게 존숭(尊崇)의 마음으로 진정한 감사를 바치러 왔다"고 말했다.
주변국을 침략한 태평양전쟁이나 이 전쟁을 이끈 지도부까지도 미화하는 그릇된 역사 인식을 보여준 셈이다.
일본 초당파 의원 조직인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은 회장인 자민당 소속 오쓰지 히데히사((尾秀久) 전 참의원 부의장 등이 대표 참배하는 형식으로 야스쿠니에 봉안된 영령을 추모하는 가을 제사에 동참했다.

◇ 일본 우익의 '성소' 야스쿠니는

도쿄 지요다(千代田)에 세워진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제가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6천여 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다.
이 가운데 90%에 가까운 213만3천 위는 일제가 '대동아(大東亞)전쟁'이라고 부르는 태평양전쟁(1941년 12월~1945년 8월)과 연관돼 있다.
일제 패망 후 도쿄 전범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을 거쳐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전 총리 등 7명과 무기금고형을 선고받고 옥사한 조선 총독 출신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1880∼1950)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을 이끈 A급 전범 14명도 1978년 합사(合祀) 의식을 거쳐 야스쿠니에 봉안됐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우익 진영에는 '성소'(聖所)로 통하지만, 일제 침략으로 고통을 겪었던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 사람들에게는 전범의 영령을 모아놓은 '전쟁신사'로 각인돼 있다.
야스쿠니에는 일제의 군인이나 군속으로 징용됐다가 목숨을 잃은 조선인 출신 2만1천181 위와 대만인 2만7천864 위도 본인이나 유족 뜻과 무관하게 명부로 봉안돼 있다.
이 때문에 야스쿠니신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영령을 한곳에 두고 추모하는 시설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17일 기시다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또다시 공물을 봉납하거나 참배를 되풀이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중국의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 브리핑에서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행동은 자신의 침략 역사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며 "일본은 침략 역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parks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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