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멍에 지고 떠난 이학래…도쿄서 추모사진전

입력 2021-11-22 16:04   수정 2021-11-22 18:46

전범 멍에 지고 떠난 이학래…도쿄서 추모사진전
부인 강복순 여사 "많은 사람이 문제 알고 응원해주기 바란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BC급 전범'의 명예 회복을 위해 투쟁하다 세상을 떠난 재일 한국인 이학래(1925∼2021) 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22일 일본에서 개막했다.
일본 시민단체 '지요다(千代田) 인권네트워크'와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은 이날 오후 도쿄도(東京都) 지요다구 소재 구단(九段)생애학습관에서 올해 3월 별세한 이씨를 추모하는 사진전을 시작했다. 전시회는 25일까지 이어진다.
17살이던 1942년 일본군의 포로 감시원으로 태국으로 보내졌다가 패전 후 BC급 전범으로 기소돼 사형 판결까지 받은 이씨의 굴곡진 삶을 돌아보는 사진 등 자료 수십 점이 전시됐다.

이씨가 수감 중에 쓴 수기 등의 유품도 선보였다.
이씨의 부인 강복순(86) 씨는 "여러분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이런 멋진 사진전이 열리게 됐다"면서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이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응원해주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한국인 전범의 명예 회복과 보상이 이뤄진다면 "그 이상 행복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인은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연합국이 주도한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후 20년 형으로 감형받아 교수형을 면했으나 31살이던 1956년 10월 가석방될 때까지 합계 약 11년간 구금돼 있었다.
일제는 이씨와 같은 식민지 조선의 청년을 '일본인'으로 전쟁에 동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하자 이씨 등에게 '일본 국적자에서 제외한다'고 통지했다.
일본은 전쟁에 동원된 자국민을 보상했으나 이씨와 같은 한반도 출신자는 일본 국적 상실에 따라 보상을 받지 못했고 전범이라는 멍에만 남았다.
이런 부조리를 겪은 것은 이씨 한 명이 아니다.

일제가 일으킨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중 148명이 BC급 전범으로 분류됐고 이 가운데 23명이 사형됐다.
온몸으로 모순을 실감한 이씨는 스가모 감옥에 구금돼 있던 1955년 4월 한국인 전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진회(同進會)를 결성했고 평생 투쟁했다.
그는 생전에 역대 일본 총리 30명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요구서를 제출했으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일본 정치권에서 뜻있는 의원들이 한국 출신 전범 피해자의 보상과 명예 회복을 위한 입법을 추진했으나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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