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원자력]③ '원전 후처리' 기술 한발 앞선 강국

입력 2021-11-28 16:01   수정 2021-11-28 22:18

[프랑스의 원자력]③ '원전 후처리' 기술 한발 앞선 강국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 연구·건설에 박차
각국 골치 아픈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대행업'에 적극



(뷔르·라아그[프랑스]=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원자력 발전소가 반대론을 넘어서려면 방사성 폐기물을 영구히, 그리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원전에서 만들어지는 방사성 핵종의 반감기는 길게는 수억 년에 달해 방사선량이 이론적으로 '0'이 될 수 없는 탓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사용 후 핵연료 등 원전 부품뿐 아니라 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버리는 거의 모든 물건을 지칭한다.
현재 실현 가능한 영구폐기 방법으로는 지하 깊숙이 폐기물을 묻어버리는 심지층 처리법이 있다.
프랑스 방사성폐기물관리청(ANDRA·안드라)은 파리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동부 뷔르 지역을 영구처분장 후보지로 선정하고 처분장과 같은 조건을 갖춘 연구 공간을 만들어 각종 실험을 하고 있다.
프랑스는 원전 건설 시장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지만, 방사성 폐기물 저장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등 '원전 후처리' 시장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초청으로 24일(현지시간) 연합뉴스가 방문한 안드라 뫼즈·오트마른 센터는 차라리 공사판에 가까웠다.
드릴로 바위를 깨부수는 소리, 흙을 실어나르는 지게차가 울리는 경적, 중장비가 내는 소음 등이 겹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연구소는 최대 7명이 탈 수 있는 원통 모양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6분 가까이 땅속으로 내려가야 볼 수 있었다.
곳곳에 파진 수많은 갱도에서는 다양한 화학적, 물리적 실험이 이뤄지고 있었고, 새로운 실험을 위한 갱도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 갱도에서는 방사성 물질을 탐지하는 검출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다른 한 갱도에서는 폐기물을 매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방사성 폐기물을 넣을 처분공이 외부 압력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나도 변형되지는 않는지 등을 살펴보기도 했다.
연구소 견학을 안내한 오드레 기므네 홍보팀장은 "지하 500m 깊이에 15㎢ 면적의 심지층 처분장을 만들어 장수명 중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을 묻겠다는 목표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드라가 뷔르에 지으려고 하는 영구처분장은 고준위 폐기물 1만㎥, 장수명 중준위 폐기물 7만3천㎥를 저장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프랑스 원전이 지금까지 생산한 폐기물만으로도 이미 저장 용량의 절반이 채워진다.



안드라는 환경학, 지질학, 수리지질학, 물리학, 화학 등을 전공한 과학자로 연구진을 구성해 점토층 성분을 분석하는 데 가장 중점을 뒀다.
방사성 폐기물을 묻을 장소를 둘러싼 점토층이 방사성 물질을 이동을 억제할 수 있는지, 땅을 깊이 파도 지반이 흔들리지 않는지, 물을 만나 침식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을 따져봤다.
이를 통해 연구소 대지를 포함해 반경 250㎞ 지역은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소로 사용할 조건을 갖춘 점토로 둘러싸여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밀리아 위레 안드라 뫼즈·오트마른 센터장은 "그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2022년 영구처분시설 건설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고 2025년 정부 허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변수가 없으면 2035∼2040년 방사성폐기물을 집어넣는 첫 번째 실험을 하고, 2040∼2050년 폐기물 저장 조건 등을 명시한 새로운 법이 만들어져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는 게 안드라의 계획이다.
프랑스법에 따라 영구처분시설은 2150년까지 사용한 뒤 영원히 폐쇄하고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그사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방사성 폐기물을 다시 밖으로 꺼낼 수 있어야 한다.
약 36만명이 거주하는 뫼즈와 오트마른주에 걸쳐있는 뷔르가 1997년 영구처분실험시설 용지로 선정되고 나서 안드라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꾸준히 설명회를 열고 재정 지원을 약속해가며 설득했다.



프랑스가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함께 선도하는 원전 분야로는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기술이 있다.
연합뉴스가 26일 찾은 프랑스 라아그 재처리 공장은 국영 원전기업 오라노(ORANO)가 반세기 넘게 사용 후 핵연료에서 우라늄, 플루토늄을 뽑아내고 처리하는 세계적인 시설이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 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보안을 이유로 플루토늄과 우라늄 등을 분리해내는 핵심 과정은 볼 수 없었고 하역장과 중간저장 수조, 유리 형태로 만든 최종 폐기물을 저장하는 창고만을 공개했다.
원전에서 4년 정도 사용한 연료봉은 통상 원전 수조에 2년간 보관해 식힌 뒤 재처리시설로 보내는데도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기 때문에 다시 한번 냉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격으로 로봇팔을 조종해 스테인리스로 제작한 바구니에 폐연료봉 다발을 집어넣은 뒤에는 9m 깊이의 저장 수조에 5년 동안 보관한다.
이후 폐연료봉 다발을 잘게 잘라 원심분리, 침전 등의 기술로 플루토늄, 우라늄, 핵분열생성물을 추출한다.
플루토늄과 우라늄으로는 다시 원전에 사용할 수 있는 연료를 만들고, 나머지 찌꺼기는 유리 형태의 고체로 만들어 밀폐 보관한다.
실방 르누프 오라노 홍보팀 차장은 이런 방식으로 방사성 폐기물을 재처리하면 부피가 5분의 1로 줄고, 독성은 10분의 1로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라아그 재처리시설이 연간 보관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는 1천700t으로, 지금까지 이 곳을 거쳐 간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3만7천t에 달한다.
3분의 2에 해당하는 2만6천t 이상이 프랑스에서 나왔고, 나머지 3분의 1은 독일(5천482t), 일본(2천944t), 스위스(771t) 등에서 재처리를 위탁했다.
필립 르포르 주한프랑스 대사는 지난 6월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한국이 프랑스에 사용후핵연료 위탁재처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홍보했다.
한국에서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없어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불가하지만,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프랑스나 영국에 재처리 위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 원전에서 매년 1만2천t의 사용후 핵연료가 나오는 데 이를 처치하기 곤란한 나라를 대상으로 프랑스가 '핵연료 재처리 대행업'에 나선 셈이다.
현재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보유한 나라는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일본(시운전), 인도 등이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