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협상 배제된 EU, 지정학적 '하드파워' 모색

입력 2022-01-14 14:58  

우크라 협상 배제된 EU, 지정학적 '하드파워' 모색
"정치적 통합 강화…'전략적 자율성' 확보해야"
마크롱, 유럽방위 주도…유럽합동군 창설 추진


(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을 위해 이번 주 서방과 러시아 간 협상이 열린 제네바에도, 브뤼셀에도, 빈에도 유럽연합(EU)의 자리는 없었다.
대신 EU 회원국 외무장관과 국방장관들은 프랑스 북서부의 소도시 브레스트에 모였다.
13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열리는 EU 외무·국방 비공식 회의에선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EU의 역할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는 지역적으론 유럽에 속하지만 이번 주 내내 숨 가쁘게 이어진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장에서 EU는 철저하게 배제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러시아가 제안한 안보보장 안과 관련한 첫 번째 협상을 벌였다.
이어 12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러시아 협상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13일에는 러시아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협상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다.
EU 외교 소식통들은 일련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EU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EU 측에 결과를 알려준다고 전했다.
하지만 EU의 이 같은 궁색한 처지는 EU가 얼마나 역내 안보 현안에 무기력해졌는지 보여준다.
EU의 한 고위 관리는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EU를 협상에서 배제하려 한다고 해도 미국이 이를 바로잡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한 유럽문제 전문가는 "러시아와 협상에서 EU의 역할이 제한적인 것은 EU가 정치, 군사적으로 통일성이 결여됐다는 방증"이라며 "러시아는 안보 문제에서 EU와 협상할 아무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의 국제정치 분석가 자크 루프닉은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과 인터뷰에서 최근의 상황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 유럽의 장래를 결정하던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강대국의 세력권 분할로 유럽이 쪼개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의 안보 지형을 결정하는 협상에 EU가 중립적인 구경꾼이 될 수는 없다. 유럽 안보는 미국·러시아, 나토·러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EU가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된 최근의 국제정세는 EU가 경제적 통합체인 '소프트 파워'에서 벗어나 안보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지정학적 하드파워'로 거듭나야 한다는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 지정학연구소장인 브렌던 심스 교수는 "EU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하나의 대통령, 하나의 의회를 가진 한 국가로 변화되어야 한다"며 단합을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EU가 완전한 정치적 통일체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쉽게도 EU는 하나의 국가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며 '분산된 힘'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위기를 통해 EU가 안보 역량을 키워야 할 긴급한 필요에 직면함으로써 정치적 통합을 진전시킬 기회를 맞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브뤼셀에 있는 싱크탱크 유럽정치센터의 소피 포른슐레겔 선임 연구원은 "유럽이 강대국에 의해 완전히 압도되지 않으려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EU가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EU 자체의 군사적 방위력을 증강해야 한다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추진하는 유럽 공동방위 정책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방위를 미국과 나토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가 진정한 유럽의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프랑스가 EU 의장국으로 활동하는 올해 상반기에 EU의 주권을 강화하고 나토에 대한 방위 의존을 줄이는 등 나토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토 창설 멤버인 프랑스는 1960년대 중반 나토군에서 병력을 철수했다. 그 이후 프랑스는 나토의 정치기구에만 참여할 뿐 나토와는 별개인 독립적 방위 기구를 추진해왔다.
EU는 자체 방위력을 증강하고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이와 궤가 같다.
EU 집행위원회 보안 문서에 따르면 EU는 2025년까지 병력 5천명 규모의 유럽 합동군을 창설할 계획이다.
유럽 합동군 창설 계획 초안은 육·해·공군력을 모두 포함하는 신속대응군이 적대적인 환경에서 구조·대피, 또는 안정화 작전과 같은 모든 범위의 군사적 위기관리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군수품 보급, 장거리 공중 수송, 작전 통제 등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보유하는 방안에 중점을 둔다.
'전략적 나침반'이라고 명명된 유럽군 창설안은 오는 3월 최종안이 승인될 예정이다. 이 안이 확정되면 EU는 2023년부터 정기적으로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1990년대 후반부터 자체 방위기구 창설을 추진했다. EU 회원국은 5만∼6만명 규모의 합동군 창설 계획에 합의하기도 했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지금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songb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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