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또 무기력 드러낸 유엔…"여우에 닭장 맡긴 격"

입력 2022-02-25 09:17  

[우크라 침공] 또 무기력 드러낸 유엔…"여우에 닭장 맡긴 격"
'외교로 해결' 안보리 긴급회의 호소 중 침공 소식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유엔의 무기력함이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고 AFP 통신이 2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23일 밤 미국 뉴욕. 전쟁을 막기 위해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 도중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진격을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각국 대사들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의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준비된 연설을 한창 낭독하고 있는 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영 TV를 통해 군사작전 개시를 알린 것이다.
침공을 알리는 뉴스가 뉴욕의 유엔 본부 회의실로 전달되자 분위기는 실망과 분노,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AFP는 전했다.
세르게이 끼슬리쨔 우크라이나 유엔대사는 이날 긴급회의에서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쟁을 막아 달라"고 각국에 간청했지만,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던 2003년 때처럼 유엔은 전쟁을 저지할 힘이 없었다.
푸틴이 공격 의도를 갖고 있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결의안 거부권을 지닌 상황에서 유엔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무엇이겠느냐고 AFP는 반문했다.
공교롭게도 현재 안보리 의장국도 러시아다. 한 달씩 번갈아 맡는 의장국은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회의 일정 등을 조율할 때 영향력을 발휘한다.
비정부기구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의 리처드 고완 유엔 전문가는 "안보리는 결코 이 위기를 풀지 못한다"며 "러시아가 거부권을 갖고 있고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 의견이나 외교적 해법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보리 결의는 15개 이사국 가운데 9개국 이상의 찬성으로 채택되며, 유엔 회원국은 결의안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으로 이뤄진 5개 상임이사국은 안보리 결의안을 거부할 수 있다.
유엔은 1945년 설립된 이후 이들 상임이사국이 일으킨 어떤 전쟁도 막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었던 이들 국가는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엔을 단순히 자연재해나 전쟁이 났을 때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하는 기구로 격하시키고 있다고 AFP는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77년간 바뀌지 않았으며, 거부권을 가지지 못한 10개의 비상임이사국은 선출 방식으로 2년 마다 교체될 뿐이다.
인도와 일본, 독일 등 단골 비상임이사국은 자신들에게도 상임이사국 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가 부여돼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다극화된 현재의 국제질서를 고려해 유엔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수년째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파멜라 차섹 뉴욕 맨해튼대 파멜라 정치학과 학과장은 "본질적으로 (유엔은) 여우에게 닭장을 맡기고 있는 격"이라며 "안보리는 냉전 시대 이전의 마비 상태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전쟁과 관련해 15차례나 넘을 만큼 빈번한 거부권을 행사해 왔으며, 25일 공개될 우크라 침공을 비난하는 결의안도 저지할 것이라고 통신은 전망했다.
193개 회원국이 모이는 유엔 총회에도 결의안과 비슷한 내용의 문서가 발송되지만, 역시 구속력은 없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8년 후 러시아는 여전히 그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고 AFP는 지적했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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