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조장한 日교과서 검정기준 개정과 각의결정

입력 2022-04-18 10:05   수정 2022-04-18 10:13

역사왜곡 조장한 日교과서 검정기준 개정과 각의결정
검정기준 개정 "정부 견해나 최고재판소 판례를 토대로 기술"
각의결정 "'강제노동' '종군 위안부' 표현 적절하지 않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새 고교 역사 교과서는 '강제연행' 등의 표현을 거의 삭제해 기존 교과서보다 일제의 가해 행위를 흐릿하게 기술했다.
당국이 2014년 교과서 검정기준 개정과 2021년 4월 각의(閣議·내각회의) 결정을 지렛대 삼아 역사 교과서 서술 방식의 변화를 유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개정된 교과서 검정기준은 일본 정부의 견해를 토대로 기술하도록 규정했고, 정부는 '강제연행' 대신 '징용'을, '종군 위안부' 대신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당하다고 각의 결정했다.
◇ 2014년 교과서 검정기준 개정


2014년 1월 17일 문부과학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회과(지도 제외), 고교 지리역사과(지도 제외)와 공민과에 대해 교과용 도서 검정기준을 개정 고시했다.
개정 검정기준은 2014년 4월부터 시행됐다.
당시 검정기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 등이 추가됐다.
『근현대의 역사적 사상(事象·여러 가지 사물이나 현상) 가운데 통설적인 견해가 없는 숫자 등의 사항에 대하여 기술하는 경우에는 통설적인 견해가 없음을 명시함과 더불어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 없을 것.
각의 결정 및 그 밖의 방법으로 제시된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나 최고재판소의 판례가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토대로 한 기술이 되어 있을 것.』
검정기준이 바뀌면서 교과서 서술에 변화가 나타났다.
통설적인 견해가 없음을 명시하고 학생이 오해할 우려가 없도록 하라는 지침 때문에 출판사들은 1913년 간토학살 때 살해된 조선인의 숫자나 1937∼1938년 일본군이 일으킨 난징대학살의 희생자 수를 교과서에 싣는 것을 수년 전부터 꺼리게 됐다.
올해 검정에서는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에 토대를 둔 기술이 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여러 번 나왔고 그 결과 '강제연행', '종군 위안부' 등의 표현이 거의 사라졌다.
'정부의 통일적인 견해'라는 표현은 2021년 4월 27일 당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각의 결정한 국회 답변서를 염두에 두고 사용됐다.
우익 성향의 바바 노부유키 일본유신회 소속 중의원 의원의 질문에 대해 '강제연행'이나 '종군 위안부' 등의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정부 견해로 확정한 것이다.
◇ 2021년 각의 결정
2021년 4월 27일 일본 정부가 각의 결정한 답변서 요지는 이렇다.



『 지적하신 바와 같이 한반도에서 내지(內地·현재의 일본 영토를 일제 강점기 때 식민지였던 조선과 구분해서 칭하던 용어)로 이입(移入·이동해 들어옴)한 사람들의 이입 경위는 다양하며, 이 사람들에 대해 '강제연행됐다' 혹는 '강제적으로 연행됐다' 또는 '연행됐다'고 일괄해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옛 국가총동원법(1938년 법률 제55호) 제4조의 규정을 토대로 한 국민징용령(1939년 칙령 제451호)에 의해 징용된 한반도로부터의 노동자의 이입에 대해서는 이들 법령에 의해 실시된 것임이 명확해지도록 '강제연행' 또는 '연행'이 아닌 '징용'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적하신 바와 같이 '모집', '관(官) 알선' 및 '징용'에 의한 노무에 대해서는 모두 동(同) 조약(일본이 1932년 비준한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을 의미함)상의 '강제노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을 '강제노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부의 기본적 입장은 1993년 8월 4일 내각관방장관 담화(이하 '담화'라고 한다)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2년 7월 6일 및 1993년 8월 4일에 두 번에 걸쳐 공표된 정부에 의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조사에서, 조사 대상으로 한 그 당시 공문서 등의 자료 중에는 '위안부' 또는 '특수 위안부'라는 용어는 사용됐지만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무엇보다도 담화 발표 당시는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가 널리 사회 일반에 사용되는 상황에 있었던 것 때문에 담화에서는 '이른바'라는 말을 붙인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위안부가 지적하신 "군에 의해 '강제연행'됐다"는 견해가 널리 유포된 원인은 요시다 세이지 씨(고인)가 1983년에 "일본군의 명령으로 한국의 제주도에서 많은 여성을 사냥했다"는 취지의 허위 사실을 발표하고, 당해 허위 사실이 대형 신문사(아사히신문을 의미함)에 의해 사실인 것처럼 크게 보도된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후 당해 신문사는 2014년에 "'종군위안부' 용어 메모를 정정"하고 "'주로 조선인 여성을 정신대의 이름으로 강제연행했다'는 표현은 잘못"이며 "요시다 세이지 씨의 증언은 허위라고 판단했다"는 것 등을 발표하고 당해 보도와 관련된 사실관계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경위에 입각해 정부로서는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오해를 부를 우려가 있으므로 '종군 위안부' 또는 '이른바 종군 위안부'가 아닌 단순히 '위안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근년(近年) 이를 사용하는 중이다. 또 지적하신 것처럼 '종군'과 '위안부'라는 용어를 조합해 쓰는 등 같은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표현에 관해서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계속해서 정부로서는 국제사회에서 객관적인 사실에 토대를 둔 올바른 역사 인식이 형성돼 우리나라의 기본적 입장이나 대응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지금까지 이상으로 대외 발신을 강화할 생각이다.』



◇ 피해자나 학계 연구 결과와 배치되는 측면 부각
각의 결정한 답변서는 큰 틀에서 강제연행 피해자나 학계의 연구 결과와는 배치되는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동원된 강제노역했던 생존자 다수는 감시, 폭력, 굶주림 속에서 위험한 노동에 시달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조선인들이 노역을 거부하거나 사업장을 떠날 자유가 없는 강압적인 환경에서 노동했기 때문에 '강제연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모집, 관(官) 알선, 징용 등 표면적인 동원 방식 등을 내세워 강제연행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부린 것이 조약에서 규정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각의 결정했으나 국제적으로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99년 3월 펴낸 전문가위원회 보고서는 일본이 2차 대전 중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를 무더기 동원해 자국 산업시설에서 일을 시킨 것이 '협약 위반'(violation of the Convention)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고노담화)를 계승한다면서도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고노담화에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사용되므로 작년 4월 각의 결정 자체가 모순됐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고노담화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 군에 요청으로 이뤄졌고 군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한 점을 고려하면 '종군'과 '위안부'를 조합해 사용하는 것이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들을 동원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관해 고노담화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官憲)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 아래의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지(戰地)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나라(일본을 의미함)의 통치 아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



각의 결정은 일본사연구회, 역사교육자협의회 등 16개 역사단체가 2015년 5월 공동으로 발표하고 이후 4개 단체가 추가로 동참 의사를 밝힌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역사학회·역사교육자단체의 성명'을 비롯해 전문가들의 견해나 연구 결과를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제연행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다수 있으며 이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성 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만하다.
당시 성명(원문 https://www.nihonshiken.jp/20151104-statement/)은 위안부 강제연행이 요시다 세이지나 그의 발언을 보도한 아사히신문에 의해 확산한 오해라거나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은 거짓이라는 주장 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 일본군이 '위안부'의 강제 연행에 관여한 것을 인정한 일본 정부의 견해 표명(고노담화)은 당해 기사(아사히신문 기사를 의미함)나 그 토대가 된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근거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중략) 강제연행된 '위안부'의 존재는 지금까지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실증돼 왔다. 강제연행은 단지 반대를 꺾고 억지로 데려가는 사례(인도네시아 스마랑, 중국 산시성에서 확인, 한반도에도 많은 증언이 존재)에 한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본인의 의사에 반한 연행의 사례(한반도를 비롯해 넓은 지역에서 확인)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위안부'로 삼아진 여성은 성노예로서 필설(筆舌)로 다할 수 없는 폭력을 당했다. 근년의 역사연구는 동원과정의 강제성뿐만 아니라 동원된 여성들이 인권을 유린당한 성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밝혔다.』
일본 정부가 각의 결정에서 요시다 세이지를 굳이 언급한 것은 일본에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인물과 결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강제연행됐다는 연구 결과 등을 흠집 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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