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지금] '여긴 라라랜드' 사이버 시위…당서기에겐 항의

입력 2022-04-18 19:18  

[상하이는 지금] '여긴 라라랜드' 사이버 시위…당서기에겐 항의
"미국이 인권 후진국" 관영매체 기사엔 "중국으로 이름 바꿔봐라"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미국 할리우드 영화 '라라랜드'를 언급한 게시물이 갑자기 무더기로 올라오고 있다.
강력한 인터넷 검열망이 작동하는 중국에서 '라라랜드'가 당국을 비판하는 은어로 자리를 잡으면서 봉쇄 정책에 대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하이 시민들이 풍자의 방법으로 일종의 사이버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 인터넷에서 '라라랜드'가 당국을 조롱조로 비판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작년 말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 장면이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중국 누리꾼들에게 '소환'된 것이 계기가 됐다.
자오 대변인은 당시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에 관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 "우리나라는 코로나19와 싸움에서 전략적으로 승리했다. 외국 기자를 포함해 당신들이 코로나 기간 중국서 살고 있다면 그저 몰래 속으로 기뻐하면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책임론에 관한 질문을 던진 외신 기자에게 강력한 방역 정책 덕분에 안전한 중국에 살고 있으니 행복한 줄이나 알라고 면박을 준 것이다.
그런데 뒤늦게 들이닥친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인구 2천500만명의 거대 도시 시민들이 식료품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기약 없이 신체의 자유를 제약당하는 상황이 닥치자 자오 대변인의 대답 장면이 일종의 '밈'처럼 누리꾼들에게 재발견된 것이다.
이후 '몰래 속으로 기뻐하라'는 말인 '터우저러'(偸着樂)는 당국을 비꼬아 비판하는 신조어로 급속히 확산했다.
나아가 누리꾼들은 중국어로 '사랑과 즐거움의 도시'(愛樂之城)로 번역된 '라라랜드'까지 정부를 비꼬아 비판하는 은어로 쓰게 됐다.
한 상하이 시민은 웨이보에 식료품 부족 속에서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나는 지금 사랑과 즐거움의 도시에 살고 있다. 맞다 라라랜드다. 라면을 끓이면서 몰래 기뻐해야겠다"고 비꼬았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정부를 비판하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최근 관영 중국중앙(CC)TV가 '미국은 최대의 인권 적자국이다'라는 제목의 미국 비판 기사를 올렸는데 한 누리꾼이 "미국이라는 이름을 중국으로 바꿔보라"고 꼬집은 것이 화제가 되면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거꾸로 중국 당국을 비판하는 사회적 맥락을 띠게 된 것이다.
누리꾼들이 '라라랜드'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관련 게시물을 활발하게 올리며 집단행동에 나서자 웨이보를 운영하는 시나닷컴 측은 두 키워드를 해시태크를 통해 검색되지 않게 검열 처리했는데 이는 누리꾼들의 또 다른 반발을 불렀다.
한 누리꾼은 "이런 정도의 언론 자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며 "이렇게 계속 가면 분서갱유라도 하려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검열로 인한 제약이 가해지면 누리꾼들은 또 새로운 은어를 찾아내 정부를 향한 조롱과 항의를 이어가면서 '사이버 시위'를 연일 이어가고 있다.
17일 밤에는 느닷없이 '한악부'(漢樂府)라는 단어가 정부를 비판하는 새 은어로 등장했다. 한악부는 억압적 통치의 진나라 뒤에 등장한 한나라 때의 음악을 관장하던 관청으로 그 시대 개방적 문화를 상징하는 말이라고 한다.
강력한 인터넷 검열망이 작동되는 중국에서 이처럼 '인터넷 광장'인 웨이보에서 연일 사이버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020년 우한 사태 때도 잠시 인터넷에서 정부의 부적절한 대처를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검열로 얼마 못 가 깨끗하게 '정돈'이 된 적이 있다.
이런 드문 현상은 상하이 봉쇄가 장기화하는 속에서 민심이 극도로 악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딱 나흘이면 끝날 것이라는 봉쇄가 20일 넘게 지속되는 동안 2천500만 상하이 시민들은 극도로 공급이 제한된 식료품과 생필품 등을 구하느라 힘겨워하고 있다.
절대 안 할 거라던 봉쇄가 시작되면서 한번, 나흘에 끝날 것이라던 봉쇄가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또 한 번. 두 번 연속 속으면서 상하이 시민들의 시 당국에 대한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자랑해온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회의감도 커지고 있다.
대중의 반감과 분노 표출이 오프라인에서 표면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늘어나고 있다.
차기 최고 지도부 후보군에 거론되는 리창 상하이 당서기는 최근 봉쇄 주택 단지 시찰을 하러 갔다가 주민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다.
또 최근 상하이 푸둥신구에서는 임대 아파트를 코로나19 격리 시설로 징발하는 문제를 놓고 시위에 나선 주민들과 공안이 거리에서 충돌해 많은 사람이 연행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 역시 상하이 같은 중국의 '1선 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올가을 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 집권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사실상의 일당독재 국가인 중국에서도 수십년에 걸쳐 유지된 집단지도체제와 임기제를 무력화하는 권력 제도의 개편은 매우 민감한 일이어서 전국민적 차원의 지지를 확보하는 모양새가 필요하다.
비록 인터넷 풍자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는 하지만 검열에 막힐 때마다 키워드를 바꿔가며 지속되는 '사이버 시위'는 열광적인 시 주석 연임 지지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 중국 공산당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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