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주거권 지키고 역사관 세운 日우토로…증오범죄 직면

입력 2022-04-29 09:03   수정 2022-04-29 17:03

[르포] 주거권 지키고 역사관 세운 日우토로…증오범죄 직면
시영주택 건설에 이어 기념관 개관…투쟁과 한일 양측 협력의 성과
방화 사건에 불안 느끼기도…"혐오 감정이 낳은 사회 범죄"


(우토로=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덩 덩 덕쿵덕"
27일 일본 교토역에서 재래식 열차로 20여분 이동한 후 내려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보이는 낡은 창고 같은 건물에서 귀에 익은 장단이 흘러나왔다.
'한바(飯場·함바)라고 불린 재일조선인 판잣집이 모여 있던 우토로 마을 공동체 시설 '에루화'에서 누군가 장구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골목을 따라 수십 미터 정도 들어갔더니 시커멓게 숯덩이로 변한 목조 건물이 앙상한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8월 방화 사건으로 주택과 창고 등 7개가 불에 탄 것이다. 경찰 통제선은 잔해를 휘감고 널브러져 있었다.
걸어서 약 5분 거리에는 우토로 주민을 위한 정비사업으로 2018년 완성된 5층짜리 복도식 아파트가 있었다.
옆에 우토로 주민을 위한 2호 아파트 공사도 진행 중이었고 바로 옆에는 우토로평화기념(祈念·기원함)관이 30일 개관을 앞두고 있었다.
수십 년간 차별·편견과 싸운 우토로 마을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토지소유권도 없이 무단 점거했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졸지에 거리로 내몰릴뻔했던 우토로 재일 조선인들은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협력, 한국 정부의 지원, 국제사회의 지지에 힘입어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게 됐다.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과 우토로민간기금재단이 우토로의 토지 일부를 사들였고 이들 땅을 활용해 일본 정부, 교토부, 우지시가 주거개선사업을 실시해 시영아파트를 건설한 것이다.
우토로평화기념관은 우토로 운동에서 또 하나의 성과다.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진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핍박, 이에 꿋꿋하게 맞선 우토로 주민의 삶을 기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점을 마련한 셈이다.

그렇다고 우토로를 괴롭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광복 77주년을 향해 가는 가운데 일본 각지에서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움직임이 대두하는 상황이다.
방화 사건은 우토로 주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열 살 무렵부터 우토로에 살아 온 재일 조선인 2세 정우경(81) 씨는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공사장에서 물건을 던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서 밖을 보니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빈집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열기로 인해 정씨 집 2층 창에 설치된 방충망이 녹아내렸다고 한다.

물을 뿌렸으나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위험하니 빨리 피하라는 이웃의 말을 듣고 집을 벗어났다.
구속기소 된 용의자는 아이치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건물에도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된 인물이다.
그는 한국 관련 시설에 대한 혐오감에 불을 질렀다고 일본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용의자는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 씨는 배후에 누군가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며 "그런 사람이 또 올까 봐, 누군가 피해를 볼까 봐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우토로 마을 외곽을 지나는 도로 건너편에는 일본의 여느 교외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주택가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펼쳐져 있었고 반대쪽 경계에는 육상자위대 오쿠보 주둔지가 접하고 있었다.

우토로는 징용이나 강제동원이 두려워 고육지책으로 군사 비행장 건설 현장을 택한 조선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채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한 곳이다.
현재의 지역 배치는 묘하게도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물론 한일 양국 시민사회가 연대하는 가운데 우토로는 더는 고립된 마을이 아니다.
하지만 재일 조선인·한국인을 겨냥한 혐한 시위나 증오 범죄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 비춰보면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김수환 우토로민간기금 이사는 방화 사건에 대해 "완전한 헤이트 크라임(증오 범죄)"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혐오 감정이 사회 구조로 자리 잡은 일본에서 나타난 이 사회의 범죄"라며 이를 한 개인의 일탈 행동으로만 간주해서는 충분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김 이사는 방화 사건을 지켜본 우토로 주민 가운데 일부는 불안을 느끼고 일부는 분노하고 있다면서 일본 사회의 차별이 과거보다는 개선했으나 본질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역시나"라는 반응도 나온다고 전했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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