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부려먹고 팽개친 우토로 조선인의 굴곡진 역사

입력 2022-04-29 09:03   수정 2022-04-29 17:02

일제가 부려먹고 팽개친 우토로 조선인의 굴곡진 역사
강제연행 대신 고육지책으로 비행장 건설 현장 간 조선인 마을
상하수도 없는 열악한 환경…내몰릴 위기 겪다 토지 문제 해결
역사관 건립 성과…재일조선인 겨냥한 혐오 문제 남아



(우토로=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우토로 마을은 일제 강점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본으로 이주했다가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들이 차별과 빈곤을 딛고 뿌리내린 역사가 새겨진 곳이다.
재일 조선인은 각지의 군사시설·군수공장이 철거된 자리나 하천 부지 등에 판잣집 등을 짓고 살면서 마을을 형성했는데 우토로도 그중 한 곳이다.

◇ 교토비행장 건설 추진 과정서 조선인 주거지 형성
통신·교통을 관할하던 일본 중앙행정기관인 체신성은 중일전쟁이 시작된 다음 해인 1938년 12월 5개의 비행장과 승조원 양성기관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가 우토로 지구 형성과 관련 있는 교토비행장이었다.
교토비행장 건설을 위해 조선인 약 1천300명이 투입됐다.


많은 조선인이 강제 연행이나 징용 등으로 탄광 등에 끌려가는 것을 피하고자 국책사업인 교토비행장에서 일하는 것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일 개관하는 우토로평화기념(祈念·기원함)관에 전시된 고(故) 문광자(1919∼2008) 씨의 증언은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징용된 사람의 아이들이 정말 고생하는 것을 근처에서 본 것도 있어서 혹시 또 출두 명령이 나오면 어떻게 할지 정말 걱정이었다. 그런 때에 징용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일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교토비행장 공사는 나라의 일이니까 절대 징용당하지 않아 안심이다. (중략) 매우 좋은 조건이라고 담당자는 말했다."

◇ 움막 수준의 한바…징용 아니지만 혹사당해
우토로의 조선인에게는 '한바(飯場·함바)라고 불리는 숙소가 주어졌다.
한바는 광산이나 토목·건축 공사 현장 근처에 설치한 노동자의 합숙 시설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근래에는 건설 현장의 휴게소·식당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불결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어 널리 쓰이지는 않는다.
당시 조선인의 생활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는 사실이 투영된 용어다.
문 씨에게 주어진 한바는 거의 움막 수준이었고 비가 오면 생활은 고달프기만 했다.

약 20년간 우토로를 취재한 재일교포 3세 저널리스트 나카무라 일성은 최근 발간한 저서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에서 우토로에 관해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혹사당했다. 완전한 '징용'은 아니었다 해도 이런 실태는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패전으로 건설 중단…굶주림과 차별에 시달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으로 비행장 공사는 중단되면서 우토로 조선인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월급은 물론 식량 배급까지 끊긴 채 방치된 것이다.
우토로민간기금재단은 "많은 노동자가 귀국을 희망했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고향에서의 생활기반이 파괴됐고, 한반도가 사회적·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운 것이나 일본 정부에 의한 재산 반출 제한, 여타 생계 문제 등으로 일본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갈 곳 없는 이들은 불모지를 개척하며 굶주림과 싸웠다.
당국에 생활 보호를 요구하며 투쟁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조선학교를 만들었다.
일본 정부와 연합 점령군 총사령부(GHQ)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재일본조선인연맹의 활동을 탄압하는 가운데 조선학교는 설립 4년 만인 1949년 10월 폐쇄됐다.

이후 일본학교로 편입된 조선인 학생들은 집단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전쟁 와중인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하자 조선인과 대만인 등 옛 식민지 출신자의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조선인은 외국인으로 등록됐고 당국은 지문을 채취해 관리 대상으로 삼았다.
우토로 주민은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을 벌이며 차별에 맞섰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우토로 사람들은 위험한 사람들, 어울려서는 안 될 사람들로 취급받았다.
김수환 우토로민간기금 이사는 취직을 하려면 "한국 사람이라는 것과 우토로 사람이라는 것 두 가지를 숨겨야 했다"고 우토로 출신자들에 대한 이중차별 실태를 지적했다.

◇ 열악한 기반시설 시민단체와 협력해 상수도 설치
한바는 매우 허술했고 하수도가 없어 태풍이나 호우에는 침수·파손에 시달렸다.
수도가 없어 우물이나 펌프로 퍼 올린 지하수가 식수원이었다.
수질이 좋지 않아 나무통에 모래를 채워 걸러서 마셨다는 증언도 있다.
큰비가 내리면 우물에 오수가 흘러 들어가 화장실인지 우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때로는 수량이 줄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당국은 토지소유자(닛산샤타이·日産車體)의 승낙이 없다는 이유로 수도를 설치해달라는 주민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불이 나도 소화전이 없어 민가가 전소되는 일도 벌어졌다.
상수도는 일본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를 인권 문제라고 생각한 시민들이 모며 '우토로에 수도 시설을 요망하는 시민 모임'을 결성해 노력한 결과 닛산샤타이가 수도 설치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1988년에 수도 배관 공사가 시작됐다.

◇ 토지매각…퇴거 소송 패소로 위기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닛산샤타이가 우토로 토지를 1987년 매각하면서 주민들의 주거가 위협받는 상황이 전개됐다.
제3자를 거쳐 땅을 사들인 니시니혼쇼쿠산(西日本殖産)이 약 2년 후인 1989년 2월 우토로 주민들의 퇴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우토로에서는 계약서이나 등기부등본과 같은 부동산 거래의 일반적인 원칙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우선시해 판잣집이나 새로 지은 주택을 구두 약정으로 사고파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우토로 조선인이 제대로 학교를 다니기 어려웠고 글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던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법원은 우토로 조선인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의 희생자라는 역사적 맥락보다 토지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점거가 얼마나 오랜 기간 이뤄졌는지 등을 따졌다. 법을 모르는 우토로 조선인들이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낮았다.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돼 측면 지원했지만, 최고재판소(대법원)까지 간 끝에 2000년 주민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 시민단체·국제사회 관심 속 주거 문제 해결…혐오 근절 미흡
강제퇴거 위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은 우토로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며 여론 변화를 시도했고 2001년 7월에 유엔 사회규약위원회가 우토로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차별 시정을 권고했다.
이후 한국 시민단체 지구촌동포청년연대(KIN)가 우토로 문제 실태 조사에 나섰고 유엔특별보고관이 우토로를 방문 조사하는 등 우토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한국 정부는 우토로 문제를 풀기 위해 일본 외교 당국과 협의를 하기도 했으며 우토로민간기금재단과 한국 정부가 세운 우토로 재단법인이 2010년과 2011년에 일대 토지 약 5천600㎡를 사들이면서 우토로 문제 해결을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이들 토지를 활용해 주거 개선사업으로 우토로 주민을 위한 시영 아파트를 건설했다.
현재 우토로에 남아 있는 약 60가구 가운데 약 40가구가 2018년 완성된 1호 아파트에 입주했고 나머지 주민은 내년 봄 완성되는 2호 아파트에 들어갈 전망이다.
아울러 우토로의 역사를 알리는 우토로평화기념관이 시영 아파트 곁에 설치돼 30일 개관한다.
우토로 재일 조선인의 주거 문제는 아파트 건설로 해결됐고 이들의 발자취를 기리는 작업도 기념관 건설로 어느 정도 달성됐다.
하지만 작년 8월 우토로 지원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주택 등에 방화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우토로를 향한 편견과 혐오는 근절되지 않았다.
sewon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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