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라비다] 한국민요에 빠져 엄마 몰래 한국행…'멕시코 소리꾼' 난시

입력 2022-05-08 07:22  

[비바라비다] 한국민요에 빠져 엄마 몰래 한국행…'멕시코 소리꾼' 난시
'경기민요 전수자' 난시 카스트로, 멕시코서 처음 민요 무대 선보여
"민요 부를 때 행복…한국 정체성 담은 민요, 더 널리 알려지길"


[※ 편집자 주 : '비바라비다'(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중남미에 거주하는 한인, 한국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포함해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연재 코너입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2018년의 어느 날,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살던 난시 카스트로는 여느 때처럼 회사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난시가 간 곳은 회사가 아닌 공항이었다. 친언니 집에 미리 조금씩 챙겨놓은 가방을 들고 그길로 어머니 몰래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 민요를 공부하겠다며 그렇게 무모하게 한국행에 나선 카스트로는 4년 만에 어엿한 '경기민요 전수자'라는 칭호를 달고 멕시코를 찾았고, 처음으로 엄마와 멕시코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 민요를 선보였다.
"공연 끝나고 엄마가 무대로 올라오셔서 저를 꼭 안아주시면서 "너무 잘했다"고 하셨어요. 행복했습니다."
'멕시코 소리꾼' 난시(28)는 지난 3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열린 한국·멕시코 수교 6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 양국 관객 앞에서 '노랫가락' '창부타령' '아리랑' 등을 불렀다.
공연 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멕시코에서, 그리고 엄마 앞에선 처음 하는 공연이라 너무 떨린다"고 했던 난시는 공연 후 "관객분들이 큰 박수로 맞아주고 내내 응원해주셔서 잘 끝낼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난시가 처음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4년이었다.
사실 한국문화와의 첫 접점은 K팝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슈퍼주니어를 좋아한 난시는 한국이란 나라가 알고 싶어졌고,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와 다양한 문화 수업을 들었다.
"어느 날 문화원에서 아리랑을 소개하면서 여러 영상을 보여줬는데 '국악소녀' 송소희의 아리랑 영상을 보고 푹 빠졌어요. 예쁜 어린이가 신기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에 관심이 생겼죠. 집에 가서 더 많은 영상을 찾아봤고, '민요'라는 장르에 대해 알게 됐죠."
서양음악과는 발성과 호흡, 장단이 완전히 다른 민요에 매료된 난시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며 스스로 민요 공부를 했다. '경복궁 타령'을 독학해 한복을 입고 문화원 행사에 선보이기도 했다.
2015년 처음 한국을 찾아 11일간 문화체험을 했던 난시는 대학 졸업 후 다시 한국에서 10개월간 한국어 등을 공부했고, 우연히 기회가 닿아 국악방송 아마추어 민요 경연에도 출연했다.
이후 멕시코로 돌아와 한국 회사에 취직했지만 "민요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은 점점 커졌다.
"원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 법대에 갔었는데 공부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민요를 들으면서 노래를 하고 싶어졌고, 민요를 부를 때만 너무 기쁘고 행복했죠."
난시의 어머니는 낯선 나라의 전통음악을 공부하겠다는 딸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결국 난시는 몰래 한국행을 감행했다. 동생의 꿈을 응원해준 언니가 멕시코에서 어머니와 대신 싸워줬다.

무작정 한국에 간 난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외국인 전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했고, 합격해 19학번이 됐다.
이춘희 경기민요 보유자를 사사하면서, 지난해 경기민요 전수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한국어가 모국어도 아닌 외국인이, 악기도 아닌 민요를 전공해 실력을 인정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한국 전통음악을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지 걱정했는데 다들 너무 쉽게, 빨리 저를 받아들여 주셨어요. 가사에 한자가 많아 이해하지 못하면 선생님이 쉬운 말로 설명해주셨죠."
몰래 떠난 딸에게 1년 가까이 화가 나 있던 어머니도 난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든든한 응원자가 됐다.
난시는 그동안 한국에서 국립국악원을 비롯한 이런저런 무대에 섰지만, 모국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은 또 다른 기분이었다.
"아리랑을 부를 때 한국 관객뿐 아니라 일부 멕시코 관객도 따라부르는 것을 보고 '두 나라가 정말 친구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신기하게도 제가 한국어를 잘 모를 때 들은 아리랑과 나중에 가사를 완전히 이해하고 들은 아리랑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언어를 몰라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거죠."
여전히 슈퍼주니어의 팬이지만, 난시는 K팝 못지않게 국악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길 바란다. "전통음악이 사라지만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국악을 널리 알리는 데 난시도 열심히 힘을 보태고 있다."한국에 돌아가 국악을 계속 공부하면서 스페인어 국가에 국악을 알리고 싶어요. 스페인어로 국악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죠.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저를 통해 국악의 매력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mihy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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