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선 '반역자'·서구에선 '공범'…궁지 몰린 오페라의 여왕

입력 2022-06-24 01:31   수정 2022-06-24 14:51

조국에선 '반역자'·서구에선 '공범'…궁지 몰린 오페라의 여왕
네트렙코, 우크라 침공 이후 美서 퇴출…유럽 공연장 안팎선 시위
러시아 공연 취소하고 푸틴에 거리 두자 '조국 버렸다' 비판받아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클래식계의 비욘세'로 추앙받았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조국 러시아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양쪽에서 외면받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오페라에서 퇴출당한 네트렙코가 최근 미국 무대 복귀를 추진했지만, 긍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고 보도했다.
일단 넵트렙코를 퇴출한 메트는 복귀 조건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의 종식과 네트렙코의 진심 어린 반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특히 피터 겔브 메트 총감독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자선공연'을 반성의 예로 들기도 했다.
네트렙코가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한 셈이다.
이에 따라 네트렙코는 뉴욕의 카네기홀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뉴욕 필하모닉과 접촉해 미국 복귀 무대를 제안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없는 상황이다.
뉴욕 필하모닉 측은 "지금까지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네트렙코와 굳이 지금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야 할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미국 클래식계가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던 네트렙코에게 등을 돌린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그가 보인 태도 때문이다.
네트렙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라는 여론에 전쟁 반대 메시지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다만 그는 "예술가나 공인에게 조국을 비판하고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내세우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글을 덧붙였다.
또 다른 인스타그램 메시지에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눈먼 침략자만큼 사악하다"라는 표현을 써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그는 푸틴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이 확산한 지난 3월 초 자신의 음반을 발매하는 독일의 레코드회사 도이체 그라모폰의 경영진에 푸틴이 나오는 TV 화면 앞에서 술잔을 든 사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에 대한 지지를 접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네트렙코는 이달 발간된 독일 디자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아직 러시아의 대통령이고, 난 아직 러시아 국민"이라며 "러시아 국민은 누구도 푸틴을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독일, 스위스 등에서도 잇따라 공연이 취소되자 네트렙코의 심경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위기에 처한 유명인들을 위한 홍보회사를 고용했고, 자신을 퇴출한 메트에 대해서는 노동계약과 관련한 민원을 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는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친(親) 푸틴 인사인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기획한 러시아 공연을 취소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정치에 대한 발언을 중단했다.
특히 그는 지난 3월 말에는 "난 푸틴을 몇 번 만났을 뿐"이라며 푸틴과 거리를 두기도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정치권에선 네트렙코를 향해 '반역자'라는 비난도 나왔다.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설 자리가 좁아진 셈이다.
일반 팬들 사이에서의 평판에도 문제가 생겼다.
네트렙코는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 파리와 모나코 등에서 공연을 재개했지만, 공연장 주변에서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파리 공연에선 극장 바깥에서 "네트렙코는 침략의 공범"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4월 모나코 공연에선 한 관객이 공연 도중 일어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된 항의를 쏟아낸 뒤 퇴장하기도 했다.
kom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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