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사죄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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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2-06-25 07:07  

[특파원 시선]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사죄와 용서

[특파원 시선]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사죄와 용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 모색 움직임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지도 숙고해야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국제 정세 급변과 한일 양국의 새 정권 발족을 계기로 한일 관계 개선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의 후속 절차가 어떻게 될지 이목이 쏠린다.

특히 강제 노역 피해자 소송의 경우 대법원 확정판결을 근거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강제 매각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라서 당국이 서둘러 해법을 모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한일 관계 회복이 중요하지만 "현안 해결이 급무"라며 "나라와 나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국가 간 관계의 기본"(기시다 후미오 총리)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아베 신조 정권이나 스가 요시히데 정권 시절에 내놓은 것보다는 우회적인 화법이지만 그간 일본 정부의 설명 등을 종합해보면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으로 이 문제를 매듭짓기로 약속했는데 소송을 제기해 문제 삼는 것은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반복하는 셈이다.



이에 관해서는 한일 양국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주로 논란이 되는 것은 배상금 혹은 위자료에 관한 문제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해법을 모색 중이다.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이 낼 배상금을 일단 피해자들에게 지급하고 나중에 일본 측에 청구하는 대위변제 방안도 일각에서 거론된다.

하지만 역사 갈등에는 누가 돈을 낼지 결정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일제가 식민지 민중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동원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차별하며 부렸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온당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지 등의 문제가 있다.

피해자는 진심이 담긴 사죄가 이뤄졌다고 인식해야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고 비로소 화해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중략)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장이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위자료 배상 책임이 면제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렇지만 이런 규정이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할 책임까지 면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 배상 책임 면제되는지에 관한 법률·외교적인 논쟁은 잠시 접어두겠다.



역사 갈등을 돈 문제, 배상 문제로만 치부하면 온전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앞선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가 이뤄지고 9개월 남짓 지난 2016년 10월 3일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한국 정부가 아베 총리의 사과 편지를 요구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런 사항은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표명하고서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당시 아베가 보인 태도는 일본 측은 '10억엔(약 96억원)을 냈으니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위안부 합의 발표문에는 양국 정부가 협력해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지만 이후 한일 양국의 움직임은 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지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양국 정부가 배상 문제에 관해 합의하더라도 한쪽에서 역사 비틀기를 시도한다면 피해자가 수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켜보는 양국 국민감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상황을 보면 일본 사회에 역사를 직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을 느끼게 된다.



스가 내각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 노무 동원을 '강제 연행'이 아니라 '징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작년 4월 각의(내각회의)에서 결정했다.

기존에는 교과서에 강제 연행이라는 표현이 두루 사용됐지만, 각의 결정을 계기로 대거 삭제됐다.

일본 정부는 '종군 위안부' 대신 '위안부'로 표현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결정해 일본군과 위안부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고 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일본 고등재판소(고법)는 군마현에 설치된 조선인 추도비 인근에서 열린 행사에서 참가자가 '강제 연행'이라는 발언을 한 것 등을 이유로 추도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한 것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이 판결이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최근 확정됐다.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를 홍보하는 시설에는 강제 동원된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 침해를 부인하는 전시물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정치권은 사도 광산이 조선인 강제 노동 현장이라는 것을 부인했고 일본 정부는 한국의 반대에도 올해 2월 세계유산 추천을 강행했다.

물론 일본이라는 사회가 단일 인격체가 아니고 정부가 모든 구성원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므로 역사 인식에 관한 모든 책임을 일본 정부에 묻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한일 관계의 진정한 회복을 원한다면 일본 내각 구성원이나 정치 지도자들은 피해자의 감정을 헤아리고 이들이 겪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모색할 때는 이런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 배상 판결을 확정받은 양금덕(93) 씨가 강제 동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일본 시민단체의 제500회 '금요행동'을 기념하기 위해 2020년 초 도쿄를 방문했을 때 기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사죄를 하면 그래도 마음이 달라질 것이 아니냐. 아무리 독한 사람도 (잘못했다고) 비는 데는 장사가 없다", "잘못했다는 사죄를 하면 자연히 우리도 마음이 약해져서 다 (사이)좋게 살게 되는 것이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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