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수출대국' 일본, 42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국 전락하나

입력 2022-08-11 06:15  

[이슈 In] '수출대국' 일본, 42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국 전락하나
사상 최대 반기 무역적자…자본수지 흑자로 상쇄 못 해
"경제 구조개혁 필요"…만성 경상수지 적자국 우려 커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수출 대국' 일본이 42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위기에 처했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국제유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무역수지 적자 폭이 사상 최대 규모로 커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면서 '메이드 인 재팬'의 제조업 경쟁력을 앞세운 막대한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국부를 일궈온 일본의 신화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 日, 사상 최대 반기 무역적자 기록…"만성 경상적자 국가 될 것"
일본은 올 상반기에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1∼6월) 무역통계에 따르면 수출은 45조9천378조엔, 수입은 53조8천619조엔, 수출에서 수입을 뺀 무역수지는 7조9천241조엔의 적자였다.
엔화 가치가 2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데다 일본의 주요 수입품인 원유, 천연가스, 식량 등의 가격이 급등한 것이 무역적자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무역수지에다 외국과 투자 거래를 나타내는 1차 소득수지, 수송과 여행 등 거래를 나타내는 서비스 수지 등을 더한 경상수지는 흑자였지만 8년 만에 최저치로 줄어들었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1∼6월 국제수지 통계를 인용, 일본의 올 상반기 경상수지가 작년 동기 대비 63.1% 급감한 3조5천57억엔(약 33조7천570억원) 흑자였다고 전했다.
상반기 경상흑자 규모로는 2014년 이래 8년 만에 가장 적었다.
6월 경상수지는 1천324억엔 적자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 중간값(7천86억엔 적자)을 크게 밑돌았다.
같은 달 무역·서비스 수지는 1조3천684억엔 적자였다.
1차 소득수지는 1조2천200억엔 흑자를 기록했지만 무역·서비스 수지 적자를 상쇄하지는 못했다.
1990년대까지 수출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던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이 밀어닥친 2010년대부터는 흑자 기조가 흔들렸지만 꾸준한 1차 소득수지 흑자 덕에 경상흑자를 이어왔다.
1차 소득수지의 근간이 되는 일본의 대외순자산은 2020년 기준 356조9천700억엔으로 30년 연속 세계 1위다.
어마어마한 해외 자산의 이자와 배당 소득 등으로 벌어들이는 1차 소득수지가 연간 20조엔(약 192조원)에 달한다.
지난 30년간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도 일본인들이 '일본 경제는 끄떡없다'고 믿었던 배경도 이처럼 막대한 1차 소득수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가파른 엔화 가치 하락과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현상이 겹치면서 무역적자 규모가 1차 소득수지로도 상쇄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서 경상수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일본의 경상수지가 1980년 이후 42년 만에 적자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닛케이는 자체 분석 결과를 토대로 올해 달러당 엔화 환율이 120엔,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일 경우 일본의 경상수지가 9조8천억엔 적자일 것으로 예상했다.
1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35엔대까지 떨어졌다.
아오키 다이주 UBS증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은 앞으로 만성 경상적자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메이드 인 재팬' 경쟁력 떨어지고 경제 구조개혁도 지지부진
2010년대부터 일본의 무역수지가 만성적자 구조로 전락한 근본 원인은 일본 제조업 경쟁력 하락 때문이다.
1970∼80년대 '메이드 인 재팬' 마크가 찍힌 일본 상품은 세계를 휩쓸었고,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쓸어 담은 일본 경쟁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도요타, 닛산, 닌텐도 등 일본의 대표 기업들은 산업계의 혁신을 주도하며 일본 정부와 가계에 막대한 부를 안겨줬다.
지금은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에 패권을 넘겨준 반도체 시장의 선도기업도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NEC, 도시바, 히타치 등 일본 기업이 세계 1∼3위였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정점이던 1989년에는 세계 시가총액 1∼5위 기업이 NTT, 일본산업은행, 스미토모은행 등 일본 기업일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거품 붕괴와 함께 일본 경제가 30년간의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일본 기업의 제조업 경쟁력도 점차 쇠퇴했고, 2010년대부터는 무역수지가 흑자를 내는 해보다 적자를 내는 해가 많아졌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회 전반적 타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거품이 붕괴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이어진 무역흑자로 축적한 막대한 부를 투자해 확보한 해외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와 배당 소득으로 무역적자를 메우는 구조가 정착됐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관되게 수출이 수입을 웃돌아 무역흑자를 내는 상태가 이어졌다"며 "일본 상품의 경쟁력이 저하된 1990년 이후에는 축적된 무역흑자를 이용한 대외투자수익의 증가로 경상수지 흑자 기조가 유지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 달러화와 함께 위기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엔화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글로벌 경제위기 와중에 가치가 폭락하면서 분위기가 일변했다.
역대급 엔저 현상과 함께 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까지 폭등하자 연간 20조엔에 달하는 1차 소득수지 흑자로도 상쇄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역적자 규모가 커지면서 탄탄하던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을 퇴출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등의 산업 구조개혁이 필요하지만 정치권의 무능과 타성에 젖은 관료집단이 개혁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오마에 겐이치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대 학장은 "일본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OECD 37개 회원국 중 26위이며 G7 회원국 중 가장 낮다"며 "기시다 총리가 지금 이행해야 할 것은 20년 전 독일 슈뢰더 정권이 시행했던 '어젠더 2010' 유형의 구조개혁"이라고 말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경상수지 적자 전락의 가능성이 점점 커지면서 산업구조의 전환을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passi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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