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영국 가로지르는 템스강이 마른다

입력 2022-08-16 08:02   수정 2022-08-28 17:52

[기후위기현장을 가다] 영국 가로지르는 템스강이 마른다
'물이 퐁퐁 솟았다'는 템스강 수원 고갈…올해 같은 가뭄은 처음"
작년엔 홍수, 올해는 가뭄…'온화한' 영국 기후는 옛말


[※ 편집자 주 =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의 수위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북미,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글로벌 특파원망을 가동해 세계 곳곳을 할퀴고 있는 기후위기의 현장을 직접 찾아갑니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등 기후재앙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현장을 취재한 특파원 리포트를 연중기획으로 연재합니다.]

(글로스터셔[영국]=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기상청의 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영국 기상청은 잉글랜드 남부·중부, 웨일스 일부 지역에 11일부터 나흘간 폭염 황색경보를 발령했다.
잉글랜드 남부의 글로스터셔를 찾은 12일(현지시간) 낮 30도가 넘는 기온에 습기없이 달아오른 공기는 조금 과장하자면 에어프라이어를 연상케했다. 땡볕은 구름 없는 파란 하늘에서 전혀 걸러지지 않고 직사해 피부를 찌르는 듯했다.
목적지는 영국 남부를 장대하게 가로지르는 템스강이 시작되는 수원(水源·source).
수원을 향해 같이 걷던 한 영국인은 "이제 영국에선 우산이 아니라 양산이 필요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20여 분을 걸어 도착한 템스강 수원은 명칭과는 정반대였다. 물이 샘솟는 수원이라지만 '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황무지였다.
잔디가 가뭄으로 누렇게 돼 '그린'이라는 이름이 어색해진 런던의 '그린파크'가 떠올랐다.

주변 흙바닥은 갈라졌고 누런 풀은 쥐자마자 바스러졌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도 했다. 이 수원에서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면 오던 길이 그렇게 메마르지 않았을 테다.
수원 주변의 키 큰 나무들은 아직 푸른 것을 보면 뿌리를 깊이 내려야만 물에 닿을 수 있는 상태인 듯했다.
템스강은 런던에서 서북쪽으로 약 2시간 떨어진 켐블 마을 주변에서 출발해서 옥스퍼드와 런던을 지나 약 350㎞를 동쪽으로 달려 북해로 빠진다.
"템스강 수원은 여름엔 종종 마르지만 올해같이 꽤 아래쪽 곳까지 마를 정도로 심한 적은 없었어요."
동행한 영국 환경단체 리버스 트러스트(Rivers Trust)의 매니저 알리스데어 널스 씨는 "여기 작은 돌무더기 사이에서 물이 퐁퐁 솟아서 템스강이 시작됐다"고 말했지만 눈앞의 광경에 그의 말이 수천년전 '전설'처럼 들렸다.
그러면서 "한 방송사에서 템스강이 시작하는 곳에 카누를 띄워보겠다고 가져왔던데 제대로 된 강 같은 곳을 보려면 여기서 15㎞는 더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템스강 수원 근처에 있는 식당 '템스 헤드 인'의 매니저 데이비드(31) 씨는 "비가 많이 오는 겨울엔 수원에 물이 무릎까지 차기도 했다"며 "이 지역에 평생 살았는데 올해는 정말 심하게 말랐다"고 말했다.
이곳에 물이 있었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2000년 1월에 찍은 사진이 실린 엽서를 꺼냈다. 정말로 당시엔 큰 웅덩이 같았다.

템스강 수원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애슈턴 킨스에 산다는 엠마(22)씨도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템스강이 완전히 말랐다"고 말했다.
엠마 씨의 말을 확인해 보려고 애슈턴 킨스에 가보니 냇물 너비로 흐르던 물길의 흔적만 있었다. 강 옆에 세워진 배가 생뚱맞게 보일 정도였다.
이 동네 상점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은 "1998년부터 이 동네에 살았는데 강물이 얕아진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바닥이 보인 것은 2011년도 가물었을 때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고 했다.

유럽 대륙과 달리 영국의 여름은 '선풍기만 한주 틀면 된다'고 할 만큼 선선한 편이다. 미국 가정의 90% 이상이 에어컨이 있지만 영국은 5% 미만이다.
하지만 최근 몇 해 전부터 영국인들도 에어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날 시골 마을인 애슈턴 킨스의 작은 상점들에서도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익은 손님들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에어컨 바람을 접하곤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템스강 수원 주변 지역에서 우편 배달을 하는 스티브 씨는 "이렇게 더웠던 때가 없던 것 같다"며 "영국이 아니라 유럽 날씨 같다"고 말했다.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엔 온화하다는 영국 기후는 옛말이 됐다. 올해 여름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닥쳤다.
영국은 지난달 관측 사상 처음으로 최고 기온 40도를 기록했다.
11일부터 폭염 경보(앰버 경보)가 시작했고 런던을 포함한 잉글랜드 여러 지역에는 가뭄이 공식 선언됐다.
잉글랜드의 지난달 강수량은 23.1㎜. 평년의 35%에 그쳐 1935년 이후 가장 건조한 7월을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가뭄이 심했던 1976년 이래 가장 적다.
8월에도 비가 올 기미가 없어 벌써 겨울 가뭄 걱정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범상치 않은 여름은 글로스터셔 주변만의 걱정이 아니다.
올해 한 해의 예외적인 기상 현상이 아니라 기후 차체가 아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영국 전체의 걱정거리가 됐다.
지난해 영국엔 갑작스러운 폭우, 올해 초엔 태풍으로 피해가 심했는데 이어진 올여름엔 '역대급' 가뭄이 닥쳤다.
작년에 홍수가 나 차가 잠긴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올해 여름엔 호스로 정원에 물을 주지 말고,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하는 대신 샤워를 하고 머리도 매일 감지 말라는 '깨알같은' 권고 메시지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건조한 땅이 빗물을 잘 흡수하지 못해서 비가 왔을 때 물이 넘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기후가 더욱 더워질 것을 염두에 둔 모습이다.
런던 남쪽 외곽지역에 사는 존 스위니 씨는 "집에 바닥 카펫을 걷어내고 마루를 깔았다"며 "이제 천장 선풍기와 창문 블라인드를 달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런던에 사는 지방공무원 카렌 씨는 "생활에서 재활용을 잘하고 개인 컵을 가지고 다니는 등 친환경 습관을 지키려고 한다"며 "업무에서는 구의 203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각자 목표를 하나 이상 세우게 돼 있다"고 했다.
예술 관련 일을 하는 마이키 에스피노사 씨는 "선풍기를 사서 거의 24시간 돌리면서 더위를 견디긴 했는데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번 여름을 겪으면서 영국인들에게 기후 변화는 과학계의 가설이거나 먼 미래가 아닌 일상으로 성큼 다가와 엄중한 현실이 돼 버렸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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