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77번째 광복절, 잊을 수 없는 이름 이덕삼

입력 2022-08-14 13:46  

[특파원 시선] 77번째 광복절, 잊을 수 없는 이름 이덕삼
의열투쟁 중 순국한 스물한살 청년, 홀로 상하이 묘지에 남겨져
분단장벽 가로막힌 귀국…송환 위한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의지 필요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상하이 도심의 오랜 외인 묘지인 만국공묘(萬國公墓) 잔디 사이에 놓인 수많은 묘비 중 'LI YOUNG SON'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새겨진 작은 묘비가 있다.
이 묘비의 주인은 조국 독립을 위해 불꽃 같은 의열투쟁을 벌이다 1926년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이덕삼 지사다.
1905년 평안북도 철산 태생인 이 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시작된 1919년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의 나이 불과 14세 때의 일이다.
임시정부의 기밀문서와 독립신문을 국내에 전하는 역할을 하던 소년은 일경에게 붙잡혀 1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이런 시련이 조국 해방을 위한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 지사는 갓 어른이 된 1926년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망명했고 한인 무장 조직인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입, 상하이 중심 거리에서 일본 조계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 본격적인 의열 투쟁에 나섰다.
묘비에 본명 대신 '이영선'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것도 이 지사가 생전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이영선 등 여러 개의 가명을 썼기 때문이다.
그는 1926년 순종 인산일(장례일)에 맞춰 거사를 계획하고 권총과 폭탄을 갖고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국내에 잠입하려다가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현지 경찰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이 지사의 신병을 일본 조계지 경찰에 넘겼다.
이 지사는 심한 고문을 받다가 스물한 살의 나이에 상하이 일본 경찰서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그가 그토록 염원했을 조국 해방이 이뤄진 지 77년, 한국과 중국이 다시 교류의 물꼬를 튼 한중수교 이후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이 지사는 여전히 상하이 외인 묘지에서 외롭게 잠들어 있다.

같은 상하이 만국공묘에 안장된 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안태국 등 저명 독립지사의 유해가 한중 간 협의를 통해 한국 국립묘지로 봉환됐지만, 오로지 이 지사만이 홀로 상하이 땅에 남았다.
이 지사의 귀국을 막는 것은 한편으로는 분단의 장벽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당국과 국민의 무관심 또는 이 지사 유해 송환을 위한 의지의 부족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우리 당국은 그간 여러 채널로 중국 측에 이 지사의 유해 봉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유해 연고권이 있는 자손을 데려와야 유해를 넘겨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 측 요구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유족을 데려오라는 것이지만, 실제 속내는 이 지사의 고향이 현재의 북한 지역이기 때문에 혹시나 생길 북한과의 마찰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유해 송환 문제에 밝은 당국자들은 귀띔한다.
북한이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임정 계열 독립투사인 이 지사의 송환 문제에 북한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점에서 이는 지극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임정 기관지인 독립신문이 1926년 9월 펴낸 신문에서 이 지사의 '열사 이덕삼의 일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 지사의 생애를 자세히 소개할 정도로 임정은 당시 이 지사의 순국을 안타깝게 여기며 가슴 아파했다.
이 지사의 송환 문제는 수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제 이 지사의 송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별한 돌파구 마련이 필요할 때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최고위 당국자 수준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중 교섭 때 최우선 의제 중 하나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의사 결정 구조상 부처 간 실무 협력 수준에서는 민감한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이미 대규모로 한국전쟁 시기 중국군 유해를 대규모로 송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상호주의 원칙을 강력하게 강조하면서 이 지사의 유해 송환 협조 요구를 더욱 강력히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 지사가 북한이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임정 계열 독립운동가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이 이 지사를 봉환해 모실 수 있는 충분한 연고권을 갖고 있음을 중국 측에 적극적으로 이해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행이라면 중국 역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끝에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기에 역사적으로 '정치적 연고권'의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측의 의지만 있다면 설득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최종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관심일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복잡한 의제들이 있기에 현실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고 의사 결정권자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애국선열 17위 합동봉송식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도 없이 쓰러져갔던 영웅들을 우리가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점에 주목한다.
오늘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산실인 상하이에서 기자가 특파원으로 일하는 마지막 날이다. 우연히도 77번째 광복절 날 고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지난 4년의 특파원 임기 중 거의 매년 광복절 때마다 이 지사의 유해 송환 문제를 환기하기 위한 기사를 반복해 쓰며 애를 써 보았지만, 실질적인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오늘 상하이 특파원으로서의 마지막 기사로 호소하고 싶다. 이덕삼 지사를 이제라도 고국으로 모셔갈 수 있기를.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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