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 절제 후 재생하는 간(肝), 백혈구 도움 없인 안 된다

입력 2022-08-26 18:03  

부분 절제 후 재생하는 간(肝), 백혈구 도움 없인 안 된다
호중구의 간세포 성장 인자 분비 → 간 재생 촉진
간 절제 때 생기는 '자살 세포 파편'이 호중구 변신 자극
오스트리아 빈 의대 연구진, '저널 오브 헤파톨로지'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간(肝)은 절제 수술을 해도 빠르게 재생해 원래 기능을 회복한다.
간암이나 간경화에 걸린 위급한 환자는 못 쓰게 된 조직을 떼어내는 '간 부분 절제술'(Partial hepatectomy)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절제하고 남은 간 조직이 재생해 기능을 회복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과학자들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간의 재생 메커니즘을 오스트리아 빈 대학 과학자들이 상세히 밝혀냈다.
간 절제 수술을 하고 나면 백혈구가 간세포 성장 인자를 분비해 간 조직의 재생을 돕는다는 게 요지다.
빈 의대의 루돌프 욀러 일반외과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오브 헤파톨로지'(Journal of Hepatology)에 논문으로 실렸다.
26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간 재생을 돕는 면역세포는 호중구(neutrophil)였다.
과학자들은 이미 호중구가 절제된 간의 재생에 관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컨대 절제 수술을 하고 나서 염증이 생기면 호중구가 곧바로 대응한다.
욀러 교수팀이 발견한 건 호중구의 '이중적 기능'(dual function)이다.
간 조직이 일부 절제됐을 때 호중구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임무를 수행했다. 새로운 간세포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성장 인자를 생성하는 것이다.
호중구(好中球)는 포유류의 백혈구 중에서 가장 큰 비중(40∼75%)을 차지한다.
골수 줄기세포에서 생성되는 호중구는 호산구, 호염기구와 함께 다형핵세포 족(族)에 속한다.
헤마톡실린과 에오신(H&E) 염색을 하면 분홍색으로 변해 호중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같은 계열의 호염기구는 청색, 호산구는 적색이 된다.
포식세포의 일종인 호중구는 혈류를 타고 이동하면서 급성 세균 감염, 특정 암세포 발생 등에 가장 먼저 반응한다.





연구팀은 간 부분 절제술을 받은 환자 124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했다.
환자의 혈액은 수술 전에 한 번, 수술 후에 두 번(바로 다음 날과 닷새째 되는 날) 채취했다.
우리 몸의 간이 신기할 만큼 왕성한 재생 능력을 보이는 비밀은 여기서 풀렸다.
간의 부분 절제로 생긴 '자살 세포 파편'(apoptotic cell debris)이 혈류에 풀리면 호중구가 이것들을 찾아 집어삼켰다.
이렇게 포식한 호중구는 HGF(간세포 성장 인자) 같은 미토겐(mitogenㆍ유사 분열 촉진 물질)을 분비했다.
실제로 간 절제술을 받고 나면 환자의 혈액에서 HGF 양성 호중구가 급증했다.
결국 간 절제술로 생긴 '자폭 세포 파편'이 HGF 분비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물론 호중구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호중구가 '자살 세포 파편'을 포식하지 않으면 간세포 성장 인자도 생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간 부분 절제술은 간암 등 심각한 간 질환 환자에게 중요한 치료 옵션이다.
사실상 어떤 환자는 유일한 선택일 수도 있다.
환자의 생존을 위해선 암 종양이 덮인 조직을 잘라내야 하지만, 간 조직이 심하게 손상되는 건 피하기 어렵다.
이번 연구의 최대 성과는,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면역계가 어떻게 조직의 재생을 돕는지 상세히 밝혀낸 것이다.
연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인체 내의 어떤 세포가 손상되면 즉시 면역 반응을 자극해 조직 재생을 촉진한다는 걸 시사한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욀러 교수는 "간의 재생 과정에서 호중구가 역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라면서 "몸 안의 모든 손상 조직을 복구하는 데 관여할지도 모르는 면역학적 메커니즘을 찾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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