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버킹엄궁과 작별한 여왕…취재구역서 가까이 본 운구행렬

입력 2022-09-15 15:02   수정 2022-09-15 16:12

[르포] 버킹엄궁과 작별한 여왕…취재구역서 가까이 본 운구행렬
연합뉴스 등 외신에 취재 긴급 허가…엄격한 신원확인 거쳐 근접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돼 닷새간 일반인 조문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14일(현지시간) 오후 2시 25분 로열 스탠더드(영국 왕실기)에 덮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운구 행렬이 버킹엄궁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 주위를 돌아 모습을 보이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버킹엄궁 앞 더몰(The Mall) 대로 양쪽에 운집한 수만의 군중은 왕립 기마 포병대가 끄는 여왕의 관이 천천히 지나가는 장면을 놓칠세라 눈을 떼지 않았다.
70년 만에 주인이 바뀐 영국 왕실의 왕관(임피리얼 스테이트 크라운)이 관 위에 놓여 전 주인과 마지막으로 동행했다.
찰스 3세 국왕 등 네 자녀, 여왕의 손자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가 군악대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장송곡에 발을 맞춰 천천히 뒤를 따랐다.
찰스 3세 국왕과 앤 공주, 에드워드 왕자는 군 장교 제복을 입었지만 성범죄 의혹으로 왕실의 직위에서 물러난 앤드루 왕자는 연미복을 입었다. 왕실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버킹엄궁을 나간 해리 왕자 역시 연미복 차림이었다.
버킹엄궁을 출발한 여왕의 관은 38분 뒤 약 2㎞ 떨어진 템스강 변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됐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도로 주변엔 몇 시간 전부터 사람이 빽빽했으나 영국 정부가 내준 공식 취재허가 덕분에 이 모습을 조금 더 자세하고 가까이 볼 수 있었다.


영국 정부는 자국 매체뿐 아니라 뉴스통신사를 중심으로 런던에 주재하는 일부 외국 언론사에도 취재 허가증을 발급했다.
연합뉴스와 독일, 일본의 뉴스통신사, BBC 등 모두 17개 언론사가 버킹엄궁 바로 옆 사우스웨스트 아프리카 게이트 근처에 마련된 취재구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빅토리아여왕 기념비 구역을 제외하고는 버킹엄궁에서 출발하는 장례 행렬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위치다.
여왕이 갑자기 서거하다 보니 상황이 숨 가쁘게 돌아가면서 취재 신청, 승인 등도 급박하게 이뤄지고 있다. 서거 이틀 뒤인 10일 저녁 늦게 장례식 취재를 위한 허가를 신청하라는 공지가 전달됐고 신속히 마감됐다.
하루 전인 13일에서야 허가가 나왔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버킹엄궁 근처 미디어 센터에서 매우 엄격한 신분 확인을 거친 뒤 즉석 사진을 찍고서 프레스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취재구역에서 행렬을 함께 보던 BBC의 영국인 기자는 "엄숙하다"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취재구역을 관리하는 영국 정부 담당자들에게 느낌을 물으니 "감정이 북받친다"고 했다.
여왕이 서거한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을 출발한 관이 에든버러를 거쳐 여정의 종착지인 영국의 중심 런던에 도착하면서 장례 예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여왕의 관은 이날 오후 5시부터 대중을 만났다.



운구가 시작되기 세시간 전 취재 구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더몰 대로 양옆은 추모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도에 설치된 철제 울타리 바로 앞에 앉은 존(68)씨는 부인과 함께 잉글랜드 중부 체스터필드 집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해 오전 7시 전에 도착했다고 했다.
더운 날씨 속에 7시간을 넘게 기다려 힘든 표정인데도 "좋은 자리에서 마지막 경의를 표하려고 왔다"며 "여왕은 정말 너무 잘했다"고 말했다.
생후 한 달 아들에게 여왕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려고 두 시간 거리 옥스퍼드에서 온 가족도 있었다.

잉글랜드 서부 울버햄프턴의 집에서 새벽 1시에 출발했다는 맨디 씨는 "여왕의 우리 모두의 할머니 같았다"며 "우리는 오늘 밤 돌아가지만 19일 장례식까지 계속 있겠다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더몰 대로를 꽉 채운 인파는 장례행렬이 지나자 바로 흩어졌다. 그린파크 공원으로 가서 헌화하려는 사람들, 여왕의 관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홀로 가려는 사람들이 엇갈렸다. 눈물을 닦으며 걷는 노인들도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홀 앞엔 직접 조문하려는 이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조문객 줄은 수 ㎞는 돼 보였다.
줄 맨 앞쪽에 선 이들은 일반 조문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13일 오후에 와 템스강 옆 길거리에서 밤을 새웠다고 했다. 여왕을 조문하려고 거의 24시간을 꼬박 기다린 셈이다.
14일 새벽 런던에 뿌린 비와 밤이슬에 축축이 젖은 모습이었지만 이들의 추모 열기를 식히진 못한 듯했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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