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추운 겨울] ③ '빛의 도시' 파리에 암흑이 찾아왔다…불꺼진 랜드마크

입력 2022-10-19 07:13  

[유럽, 추운 겨울] ③ '빛의 도시' 파리에 암흑이 찾아왔다…불꺼진 랜드마크
'에너지 10% 줄인다' 야경 명소 에펠탑·파리시청 등 일찍 소등
위기의식 제고한다지만…실효성 두고 갑론을박 "상징적 차원 커"
일부 매장은 한밤에도 환한 조명…파리시, 상점에 벌금 부과 추진
독일, 기념물 야간 조명 시간 단축…스페인, 상점 진열대 조명 제한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오후 10시 파리시청, 오후 11시 루브르박물관 앞 피라미드, 오후 11시 45분 에펠탑….
17일(현지시간) 해 질 녘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프랑스 파리에 빛을 수놓았던 랜드마크들이 시차를 두고 하나둘 조명이 꺼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가 가져온 에너지 위기가 '빛의 도시' 파리의 밤을 점점 어둡게 만들고 있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이 파리시의 에너지 소비를 지난해보다 10% 줄이겠다며 시행하는 여러 정책 중 하나다.
이날 오후 10시가 넘어 파리 야경 명소 중 한 곳으로 꼽혀온 파리시청을 찾아가 보니 삭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청 앞 광장에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텅 비어있었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을씨년스러웠다.



광장에 홀로 서서 시청을 스마트폰으로 찍던 아나스타시아(35) 씨의 눈에는 불이 꺼진 시청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했다.
업무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파리로 출장 왔다는 그는 시청에 원래 야간 조명이 들어오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에너지를 아끼겠다는 시청의 마음이 이해 간다며 조명이 꺼졌다고 해서 아름다움이 가시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밤에 조명이 켜진 시청을 못 봤다고 내가 무언가를 놓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오히려 그 취지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루브르 박물관 안뜰에 있는 피라미드도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소등 시간을 오전 1시에서 오후 11시로 앞당겼다.
박물관 경비원은 오후 10시 50분이 되자 호루라기를 불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들을 철제 울타리 밖으로 몰아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던 경비원은 "솔직히 피라미드 조명을 일찍 끈다고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피라미드 조명은 꺼질지 몰라도 가로등을 포함해 박물관에 있는 다른 외부 조명들은 모두 살아있다고 말했다.
정말로 에너지를 아끼고자 한다면 하다못해 가로등을 2∼3개에 하나씩이라도 꺼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경비원의 지적에 일리가 있었다. 에너지를 아끼겠다며 몇몇 명소들은 불을 껐지만, 여전히 조명이 꺼지지 않는 명소들도 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도,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 등은 같은 시간대에 조명이 켜져 있었다.
파리에서 7년째 택시를 운전하고 있다는 칼리파(52) 씨 "어떤 곳은 불을 끄고, 어떤 곳은 끄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명을 1∼2시간 일찍 끈다고 큰돈을 아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그는 말했다.



파리 야경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에펠탑도 지난달 23일부터 평소보다 1시간 15분 일찍 조명을 끄고 있다.
오전 1시에 수많은 전구가 반짝이며 에펠탑을 하얗게 만들고 나서 소등하는 조명 쇼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사실 에펠탑 조명을 일찍 끈다고 에너지를 많이 절약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시 당국이 할 말은 없다.
BFM 방송은 에펠탑 야간 조명을 끄더라도 이는 에펠탑 연간 에너지 소비량의 4%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리마 압둘 말라크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에펠탑, 루브르 피라미드 등의 조기 소등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에너지 위기 인식 제고 캠페인'이 무색하게도 상점이 즐비한 골목에서는 여전히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루브르 피라미드 조명이 꺼진 시간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리볼리 가의 상점들은 불을 환히 켜놓고 있었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는 이달부터 영업이 끝난 프랑스 매장의 조명을 밤에 끄겠다고 했지만 어떤 매장은 밤에도 환했다.
오후 11시가 넘어 찾아간 샹젤리제 거리에서 LVMH 자회사인 불가리의 매장은 불이 꺼졌지만, 루이비통 매장은 조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파리시는 영업이 끝났는데도 조명과 화면을 끄지 않은 기업이나 상점에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도심 곳곳에 있는 랜드마크 소등은 파리뿐만 아니라 에너지 위기 파고를 넘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문,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유대인 박물관, 전승 기념탑 등 주요 명소의 조명 시간을 단축했다.
브란덴부르크문을 포함한 공공기념물과 공공건물, 광고판은 문화 행사 기간을 제외하고 오후 4시∼오후 10시에만 불을 켤 수 있다.
스페인 정부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상품을 진열해놓은 상점 유리창 조명을 끄도록 법령을 정비했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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