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위안화 추락] 32년·15년만의 최저…개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입력 2022-10-30 07:11   수정 2022-10-30 08:22

[엔·위안화 추락] 32년·15년만의 최저…개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일본, '나홀로 초저금리'…막대한 국가부채가 발목
중국, 코로나·부동산 투기 잡으려다 위안화 추락 못 막아


(도쿄·서울=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차병섭 기자 =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에 따른 '킹달러' 현상은 전 세계적이지만, 일본과 중국에선 유독 심각하다. 금리차에 따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각국이 미국을 뒤따라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와 위안화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과 7위안을 돌파해 각각 32년, 15년 만의 기록적 통화가치 하락을 보였다. 두 국가의 통화 당국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日, 나홀로 초저금리…올해 엔화 가치 30% 급락
"지금의 엔화 약세는 미일 금리 차이로만 설명되고 있지만, 엔저의 절반 이상은 일본의 국력 전체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하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외환정책의 책임자인 재무성 재무관을 역임한 와타나베 히로시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은 27일 발행된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엔화 가치 하락의 근저에는 일본의 국제경쟁력 저하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엔·달러 환율은 30% 가까이 급락했다.
올해 1∼2월 달러당 115엔 안팎에서 등락하던 환율은 3월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지난 20일에는 일본의 '거품(버블) 경제' 후반기였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2개월 만에 처음 150엔을 넘었다.
다음 날인 21일 엔·달러 151엔대까지 올랐다가 일본 당국의 개입 영향 등으로 하락해 28일 도쿄 외환시장에선 146∼147엔대에서 거래됐다.
올해 엔화 가치의 하락은 미국·유럽 등 주요국과의 금리 차이로 설명된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원자재·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인플레이션에 대응에 금리를 공세적으로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 나홀로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27∼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도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도하도록 상한 없이 필요한 금액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대규모 금융완화를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과 일본의 정책금리 차이가 약 3%포인트로 벌어지면서 외환시장에선 달러를 사고 엔화를 매도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엔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최근 3차례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2일에 2조8천억엔, 이달 21일에는 5조5천억엔, 이어 24일에는 1조엔 규모로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여 지금까지 개입 규모는 총 9조3천억엔(약 90조원)으로 추정된다.
시장 개입에 따라 일시적으로 엔화 가치가 상승하기도 했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와타나베 이사장은 "한 방향으로 외환이 움직인다고 모두 생각할 때는 개입해도 사막에 물을 뿌리는 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세계 외환시장에선 하루에 1천조엔(약 9천700조원)이 거래되고, 엔·달러만 해도 125조엔(약 1천200조원)"이라며 "정부의 외환준비고가 180조엔(약 1천750조원)이라고 해도 시세를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 더딘 경기회복과 막대한 국가부채로 금리인상 어려워
엔화 약세 흐름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도 금리 인상이 나서야 하나, 일본은행은 경기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 일본의 경기회복 속도는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더딘 편이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일본의 막대한 부채 규모가 꼽힌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채 잔액은 작년 말 기준 처음으로 1천조엔(약 9천700조원)을 넘었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1∼2%포인트 올리면 정부의 연간 원리금 부담액이 3조7천억∼7조5천억엔(36조∼73조원) 늘어나는 구조다.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엔저 흐름이 이어지면서 물가가 오르고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등 일본 경제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과거 엔화 약세 때는 수출이 증가하고 임금 상승과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엔저 효과가 있었지만, 엔고 시절 일본 기업이 생산거점을 대거 해외로 옮겨 이마저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대표 산업인 자동차의 올해 4∼9월 수출 대수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0.2% 줄었다. 반도체 부족의 영향도 있지만, 해외생산을 늘린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에는 엔저로 혜택을 보는 기업보다는 엔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고통을 겪는 기업이 더 많다.
일본의 시장조사 기업인 테코쿠(帝國)데이터뱅크가 지난 7월 자동차 산업의 중심인 아이치(愛知)현 소재 646개 기업에 엔저 영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마이너스"라는 답변이 59.3%에 달했고, "플러스"라는 답변은 5.6%에 그쳤다.

최근 엔화 약세 흐름을 미일 금리 차이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현재 미일 정책금리 차이는 약 3%포인트지만 2000년께는 6%포인트에 달했다. 당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00∼110엔으로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와타나베 이사장은 "일본 기업을 인수합병(M&A)한다면 지금은 1년 전보다 20% 할인임에도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다"며 "일본 기업과 산업기술은 과거에 쌓은 권위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동차를 제외하면 전기 등은 해외에 밀렸고 정보기술(IT) 등의 성장 분야에선 미국과 중국에 뒤처졌다"며 "일본의 국력과 장래성이라는 경제의 기본조건의 약점을 시장이 간파했고, 환율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제로 코로나·부동산에 발목잡힌 中 위안화…"환율방어, 힘든 선택 직면"
미국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 속에 올해 들어 역내 위안화 가치는 달러 대비 12.4% 떨어졌다.
일본 엔화(-22.1%)와 한국 원화(-16.4%)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이지만, 최근 들어 위안/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7위안 선을 훌쩍 넘어서며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이다.
8월 중순까지만 해도 달러당 6.7위안 수준이던 역내 위안화 가치는 이달 25일 15년 만에 최저인 7.2위안으로 떨어졌고, 역외 위안화 가치도 달러당 7.3위안으로 2010년 거래 시작 후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위안화 약세는 우선 달러화 강세에 따른 측면이 크지만,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과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른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재정 확장 정책을 실시한 것도 약세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3차례에 걸쳐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3.85%에서 3.65%로 내렸고, 최근까지도 이를 동결한 상태다.
여기에 올해 1∼9월 중국 중앙·지방정부 재정적자도 작년 동기의 약 3배이자 역대 최대 수준인 7조1천600억 위안(약 1천403조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블룸버그통신은 추산했다.
위안화 약세가 심해지면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외국인 자금이 중국을 이탈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게다가 최근의 세계적 수요 둔화로 인해 위안화 약세에 따른 중국 수출의 수혜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 환율이 급격히 치솟자 중국 국영은행들이 환율 안정을 위해 달러를 매도하고 인민은행이 고시환율을 통해 위안화 가치를 뒷받침하고 나섰지만, 단기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위안화 방어를 위해 힘든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직접 개입, 관리변동환율제 하에서 환율변동폭 축소 등의 수단이 당국에 있지만, 과도한 개입을 피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전했다.
게다가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중기적으로는 위안화 가치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7일 아시아·태평양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4.4%에서 3.2%로 낮췄다.
IMF는 중국 경제가 제로 코로나와 부동산 경기침체의 여파로 빠르게 둔화 중이라고 짚었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도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성장 전망이 밝지 않다면서, 제로 코로나가 실업을 초래하고 소비심리를 훼손하는 등 '자해적'이었다고 비판했다.
헝다(恒大·에버그란데) 등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잇따라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 가운데,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이들 기업의 부채 부담이 커지는 만큼 금리 인상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PIIE는 지속 불가능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수정하는 것 외에 단기간에 성장을 되살릴 선택지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 주석이 제로 코로나를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내세워온 만큼 당분간 현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hoj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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