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수미 "예술은 힘들고 낯선 곳에서 희망 선사"

입력 2022-11-17 19:36  

[인터뷰] 조수미 "예술은 힘들고 낯선 곳에서 희망 선사"
홍콩서 3년만 공연…"삶의 빛이 되는 음악하는 게 나의 미션"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결국에는 산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오늘이 있어도 내일 세상을 떠날 수도 있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굉장히 힘들고 낯선 곳에서 헤매는 분들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음악, 책, 하나의 작은 기도를 통해 다시 충전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분들을 너무 이해하기 때문에 항상 그분들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17일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은 시대에 예술가로서 무엇을 느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18일 홍콩 서구룡문화지구 아트파크에서 열리는 'HKGNA 뮤직 페스티벌'의 개막 무대를 장식하기 위해 3년 만에 홍콩을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에 최근 한국 이태원 참사 등이 더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우울'과 '상실', '트라우마'를 입에 올린다.
그런 가운데 이태원 참사에 따른 '국가 애도의 기간'에 한국은 물론 홍콩 등 해외의 여러 한류 공연이 취소되면서 추모의 방식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데뷔 36년을 맞은 베테랑 조수미에게 예술의 의미를 물었다.
인터뷰는 홍콩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그의 호텔 객실에서 이뤄졌다.

--앞서 "예술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예술가로서 느낀 바가 있다면.
▲ 제가 좀 젊었을 때는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제가 사는 성 안으로 들어가 그저 열심히 연습한 후 무대에서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알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그러나 어느새 완성도 있는 음악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아름답고 삶의 빛이 되고 힐링이 되는 음악을 하는 게 내 미션이 아닐까 싶어졌다. 그러자 점점 더 어깨가 무거워지고 레퍼토리도 많아졌다.
결국에는 산다는 게 쉽지 않다. 좀 화가 나고 좀 손해를 봐도 내려놓고 다독거릴 수 있는 여유와 관대함이 있어야 이 세상을 떠날 때 나 자신에 뿌듯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음악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아주 힘들거나 녹초가 됐을 때 좋은 음악을 틀어놓고 명상에 잠기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사실 의식주에 시달리고 살기가 너무 힘든 분들에게 음악은 어찌 보면 사치일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이해한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도 모든 예술 행위는 우리 삶에 희망을 주고 힐링이 된다는 것, 삶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도 그거 하나만 믿고 가고 있다.

-- 넷플릭스의 '테이크 원'이 화제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일상을 어떻게 30여 년 유지해왔나.
▲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또 내가 무대 밖에서 고생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은 분이 드디어 보시게 돼 사실 속으로 후련하기도 했다. (웃음) "조수미가 저렇게 떨면서 무대에 오르는구나", "무대에 오르기 전에 목이나 몸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안타깝네"라고 말씀하시며 저에 대한 유대감을 느꼈을 것 같다. (웃음) 제가 추구하는 바가 바쁜 것은 정말 맞는데 이유 없이 바쁜 게 아니라 뭐 하나를 하더라고 제대로 완성도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래는 목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온갖 것을 고려하고 투자해서 한다. 예전에는 성악가로서만 무대에 섰다면 지금은 프로듀서로서 전체적인 것을 다 구상한 후 아티스트로서 그 안에 내 모습을 끼워 넣는다. 주변에서 이제 좀 쉬어 가면 안 되냐고도 하는데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다. 이 일이 재미없거나 어떤 이유로든 빛을 발하지 못한다면 그때 무대에서 내려올 것 같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여전히 재미있다. 많은 아티스트와 소통하고 공연을 짜내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 기대되고 솔직히 너무 재미있다. 내일에 대한 기대도 많다.
-- 이달 새 앨범 '사랑할 때, In Love'를 발매한다. 한국 작품이 주로 담긴 걸로 아는데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 한국 예술가곡으로 음반을 내는 것은 2002년 '향수' 이후 20년 만이고, 그 사이 2015년에 한국 가요로 구성된 '그리다'를 냈다. 이번 앨범은 아주 독특하다. 작업하면서 이상하게 첫사랑 생각이 많이 났다. 첫눈이 오면 경복궁에서 만나자고 약속해놓고는 깜빡 잊고 뒤늦게 갔더니 남자친구는 없었고…. (웃음) 첫사랑 생각을 많이 하며 작업했다. 우리가 팬데믹, 어려움, 슬픔 모든 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지만 살면서 사랑이 가장 행복을 주지 않나. 사랑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축복받은 삶 아닌가.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이번 앨범은 그런 마음으로 만들어서 굉장히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눈 오는 날 커피 한 잔, 와인 한잔 마시며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내가 들어도 감동하는 음악이라 자신있게 권해드리고 싶다. (웃음)
-- 12월 한국 공연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공연 일정이 빼곡하다. 바쁜 일정에 봉사도 하고 수익금 기부도 한다.
▲ 코로나 때문에 못했던 공연들이 뒤로 밀리면서 굉장히 바빠졌다. 이제는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콩쿠르 심사위원, 마스터 클래스 등 후배를 양성해야 위치라 더 바빠졌다. 내년에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았고, 파리 근교 성에서 제 이름을 건 '수미 조 인터내셔널 컴피티션'도 열린다. 아티스트로서 계속 노력을 하면서 특히 한국과 동양권 후배들이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연말 한국 공연은 진짜 욕심을 많이 냈다. 12월 20일에 정통 예술 공연을 한 후 바로 다음 날에는 지금 굉장히 핫한 아티스트들과 크로스오버 공연을 펼친다. 24시간 안에 내 모습이 확 바뀔 것이다. 아…떨린다. (웃음)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면도 있지만 반대로 후배들이 그것을 보고 음악이 왜 필요한지 봤으면 하는 면도 있다. 어차피 예술인은 봉사하는 직업이다. 한때는 예술인은 기량을 자랑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면이 없지 않고 그런 프라이드는 항상 있지만 지금은 음악을 하는 이유가 그보다는 더 깊고 심오하다. 모두를 위해 나눌 수 있는, 빛을 드릴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활동하고 싶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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