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강진 현장] 차량 버리고 계속 뛰다…'폐허 된 전쟁터' 대재앙의 비극

입력 2023-02-12 06:00   수정 2023-02-12 17:21

[튀르키예 강진 현장] 차량 버리고 계속 뛰다…'폐허 된 전쟁터' 대재앙의 비극
'통신 두절·주차장 같은 도로' 악전고투…추위 속 '차박 노숙'·구호식량으로 숙식 해결
도로 파괴에 내비게이션도 무용지물…곳곳에 날카로운 파편 '위험천만', 여진 느껴져 공포감도
주민들, 고통 속에서도 "꼬레" 연호하며 "형제의 나라" 환대…"잊지 않겠다, 반드시 갚을 것"


(이스탄불·이스켄데룬·안타키아·아다나[튀르키예]=연합뉴스) 조성흠 특파원 = "당장 출발해야 합니다. 갑시다. 따라오세요."
지난 9일(현지시간) 오전 7시께 한국 긴급구호대가 숙영지를 차린 튀르키예 하타이주 주도 안타키아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 앞에 도착한 취재진과 맞닥뜨린 이원익 주튀르키예 한국 대사는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다급하게 말했다.
오전 6시37분께 선발대로 답사에 나선 한국 긴급구호대가 70대 남성을 구출했다는 낭보가 전해진 직후 구호대 본진이 현장으로 출발하는 참이었다. 전날 밤 안타키아에 도착, 차 안에서 쪽잠으로 눈을 붙인 뒤 구호대를 따라 그렇게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8일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함박눈이 내린 이스탄불을 떠나 튀르키예 동남부 피해지역을 취재하고 11일 오후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기까지 '길 위에서' 겪은 비극의 현장은 실제 전쟁 상황보다 더 심한 전쟁터 그 자체였고, 극한상황의 연속이었다.

◇ 구호대 놓친 뒤 차량 버리고 계속 달리다…3시간 헤매다 극적 구출 순간 현장에
이틀째 현장에서 차박을 했다는 그의 말대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사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이 대사의 행색을 보는 순간, 안타키아의 취재 현장이 얼마나 험난할지 직감할 수 있었다.
내렸던 차에 바로 다시 올라 구호대 본진을 따라나섰지만, 곳곳에서 중장비와 구호 차량이 도로로 쏟아지면서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구호대 본진은 현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 구조 현장으로 떠났지만, 취재 차량은 마침 앞에서 구조 활동이 시작되면서 막혀버린 도로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면서 앞서 달리던 구호대 차량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주변 길가에 차를 버려둔 채 구호대가 전해준 위도와 경도 좌표를 따라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현지 통신까지 사실상 두절된 상황에서 스마트폰 지도도 작동하지 않으면서 미아 신세를 면치 못할 지경이었다.
간신히 처음 지점으로 돌아온 뒤 다시 받은 좌표를 향해 2㎞ 이상 뛰어간 끝에 멀리서 손을 흔들며 반기는 대사 차량의 튀르키예 현지인 운전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튀르키예와 각국 구조대, 자원봉사자들이 주변에 뒤섞여 활동 중인 상황에서 여러 팀으로 흩어진 한국 구호대가 어디로 갔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한국 구호대를 봤다는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이동하던 중 멀리서 우리나라의 주황색 소방청 유니폼이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가 간신히 이들 행렬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때가 오전 9시 30분 언저리로, 이날 이른 아침 한국 구호대 숙영지를 향해 출발했을 때로부터 약 3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이들 팀을 만난 지 약 30분이 되지 않았을 때 안타키아 시내 주거지 건물에서 우리 구호대의 두 번째 낭보인 2세 여아 루즈 부녀의 극적인 구출 순간을 국내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눈 앞에서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이들이 구출됐을 당시 구호대 본진은 이날 아침 첫번째로 70대 남성을 구조했던 곳 주변에서 활동 중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본진을 놓치고 교통·통신 악조건 속에서 3시간 가량 헤맨 '덕'에 한국 긴급구호대의 두번째 구출 상황을 직접 취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 '전기 없고 연료 부족' 속 차박…건물 무너질까 하늘 보며 걸어, 여진 느껴져 공포감도
3박 4일의 취재 현장은 악전고투와 불확실성으로 점철됐다.
전기와 물 공급을 포함해 도시가 완전히 마비된 탓에 제대로 된 취침이나 식사는 기대할 수 없었다.
여진 발생의 위험성 등을 감안, 처음부터 '차박 노숙'을 각오했다. 앙카라 공항을 경유해 직선거리로 진앙에서 170㎞ 떨어진 아다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렌터카 업체부터 찾았다.

공항 근처에 있는 10개 안팎의 렌터카 업체를 돌았지만, 통틀어 남은 건 준중형 세단 1대 뿐이었다.
밤이면 본인과 사진기자 등 취재진 두 명과 현지 통역·안내인 등 성인 남성 3명이 '숙박 공간'인 이 차량 안에서 잠을 청했다. 부족한 연료 사정 탓에 히터도 마음 놓고 틀 수 없어 추위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식사는 길거리에서 운 좋게 마주친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는 빵과 수프 등을 먼지 속에서 먹는 것이 전부였다. 워낙 유동적인 취재 상황에 음식이 있으면 걸으면서 먹고, 식사가 없으면 그냥 잊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사진 기자는 30㎏에 달하는 취재 장비를 짊어지고 폐허 더미를 오르내려야 했고, 글 기사는 부서진 차량 트렁크 위에 노트북을 펼치고 작성해야 했다.
모든 길거리에 날카로운 파편과 물건들이 널려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라 걸음걸음이 힘겹고 조심스러웠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건물들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 하늘을 보며 걸어야 했다.
와중에 지진 후 사흘째까지 약한 여진이 느껴지며 공포를 더욱 키웠다.
길이 없는 곳에서 건물 잔해 사이를 줄타기하듯 지나다가 깨진 유리에 손을 베기도 했다.

◇ 자욱한 흙먼지에 취재 장비도 오작동…아수라장에 부서진 차량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터지지 않아 전화기를 하늘로 향한 채 통신이 되는 지점을 찾아 헤매야 했다. 흙먼지가 너무 심해 망원렌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 문제도 해결하기 곤란해서 밥과 물을 먹기도 꺼려질 정도였다.
8일 새벽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아다나와 이스켄데룬, 안타키아를 거쳐 11일 새벽 아다나 시내에 재진입하기까지 사흘여간 일행 3명이 용변을 본 횟수를 다 합쳐도 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물이 나오지 않아서 생수로 양치만 몇 번 했을 뿐 세수조차 한 번도 못 했다.
3명 모두 아다나의 호텔에서 나흘째 만에 만난 샤워실에서 보낸 시간이 적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에 달했다. 흙먼지를 덮어쓴 머리는 3번은 감아야 거품이 났다.
렌터카 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지만 피해 접수도 할 수 없었다. 한번은 교통체증 속에서 뒤엉킨 차량이 뒤를 들이받았고, 다른 한 번은 거리에 세워둔 차량의 범퍼가 무언가에 부딪힌 채 반쯤 깨져 있었다.
한 경찰관은 "경찰차도 다 부서진 판에 일반 차량 피해 접수를 어떻게 받겠냐. 전산도 먹통"이라고 말했다.

◇ 내비게이션 먹통·건물 사라져 좌표로 경로 설정…무상지원 비행기표 간신히 구해
이스탄불을 떠나 아다나를 거쳐 이스켄데룬, 안타키아를 취재하고 다시 아다나로 돌아오는 여정도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도로 곳곳이 끊어지고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져 우회를 위해 한밤중 산속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고, 2시간이면 갈 거리를 6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다.
내비게이션도 인터넷이 수시로 끊어지는 환경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해 길을 헤매는 경우가 허다했고 건물이 사라져버려 주소 대신 위도와 경도 좌표로 경로를 설정해야 했다.
시내에선 차량이 있어도 대부분 지역이 통제되고 도로가 망가져 끝없이 우회를 거듭했다. 결국 차를 포기하고 도보로 이동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이스탄불로 돌아오기 위해 10일 밤 렌터카를 몰고 안타키아를 벗어나 아다나로 출발할 당시 비행기표와 버스표는 완전히 매진 상태였다.
이 때문에 11일 대기표라도 구할까 싶어 무작정 공항을 찾았다. 아다나 공항에 들어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밀려드는 탈출 행렬로 피란민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운 좋게도 터키항공이 구호 차원에서 무상으로 지원하는 비행기표를 얻을 수 있었고, 약 4시간을 기다려 탑승할 수 있었다.

◇ '우크라전' 키이우보다도 피해 극심…불가항력적 대재앙 앞에 인류애만이 희망
한 달 전인 새해 벽두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취재를 다녀왔다.
하지만 이번 지진 현장의 참상은 전쟁통이라는 말로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인간의 무기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한 번에 도시 전체를 완전히 파괴한 대자연의 불가항력적 재앙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됐다.
극한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기댈 것은 서로를 돕고자 하는 인류애였다. 모든 것이 최악이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튀르키예 주민들의 환대 앞에 취재진과 한국 구호대 누구도 불평하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만나는 이들마다 "코레(한국)"를 연호하며 한국 구호대와 취재진을 반겨줬고, 구조대는 어딜 가나 실력이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우리 구조대와의 기념사진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물과 간식을 건네주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식수를 나눠주기 위해 이동하던 차량이 걸어가던 취재진을 발견하고 차에 태워주기도 했다.
부서진 렌터카는 안타키아에선 신고 접수를 할 수 없었지만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길에 아다나 지역의 현지 경찰이 한국 언론의 현지 취재에 감사한다며 예외적으로 접수를 받아줬다.
안타키아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한국은 한국전쟁 때 우리가 파병했던 형제의 나라"라며 "이번 도움을 잊지 않겠다. 다음에는 반드시 우리가 한국을 도우러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jos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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