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책' 된 찰리와 초콜릿 공장…뚱뚱 빠지고 움파룸파는 중성

입력 2023-02-18 19:08  

'착한책' 된 찰리와 초콜릿 공장…뚱뚱 빠지고 움파룸파는 중성
아동문학거장 로알드 달 작품들 '정치적 올바름' 맞춰 대폭 수정
'마틸다'는 키플링 대신 오스틴 읽고, '미스터 폭스' 아들은 딸로 바뀌어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아동문학의 거장 로알드 달의 작품들이 현대 독자들의 '정치적 올바름(PC)' 수준에 맞도록 수정을 거쳐 재출간됐다고 17일(현지시간)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 아동문학 출판사 퍼핀(Puffin)과 로알드 달 스토리컴퍼니(Roald Dahl Story Company)는 2020년부터 검수 전문가들과 함께 그의 작품에 대해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거쳤다.
텔레그래프가 기존 판본과 신규 판본을 비교한 결과 신체나 정신건강, 젠더, 인종 등과 관련한 표현 수백 가지가 다시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수정된 버전에서는 캐릭터 오거스터스 그루프에게 '뚱뚱한(fat)' 대신 '거대한(enormous)'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소인족 움파룸파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아기나 작은 동물 등에 주로 쓰이는 '아주 작은(tiny)' 대신 객관적 표현인 '작은(small)'으로 바뀌었고, 성별도 '남자(men)'로 적혔던 것을 중성적 표현인 '사람(small people)'으로 수정했다.
작품 '마틸다'에서의 악역 트런치불 선생님을 표현하는 '가장 무서운 여성(female)'은 '가장 무서운 여자(woman)'로 대체됐다.
남성 작가인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을 즐겨 읽는 주인공으로 묘사됐던 마틸다는 대표적인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책을 대신 손에 쥐었다.
이 밖에도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에 나오는 주인공 미스터 폭스의 아들들은 딸이 됐고,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의 '클라우드맨(Cloud-Men)'도 '클라우드피플(Cloud-People)'로 바뀌었다.
수정을 넘어 아예 삭제돼 버린 표현들도 적지 않다.
'더 트위츠(The Twits·멍청씨 부부 이야기)' 속 '이중 턱(double chin)' 표현이나 로알드 달이 자주 사용한 표현 '미친(crazy·mad)'도 지워버렸다.
심지어 '검은(black)', '하얀(white)' 등의 수식어도 다수 삭제됐고, "하얗게 질려 버렸다"는 표현 역시 사라졌다.

때에 따라서는 작품에 한 문장을 통째로 추가하기도 했다.
'더 위치스(The Witches·마녀를 잡아라)'에서 마녀가 가발 아래 대머리를 숨기고 있다는 대목 뒷부분에 "여자들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덧붙이는 식이다.
1990년 세상을 떠난 로알드 달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동문학 작가이기도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반유대주의와 여성혐오, 인종차별 등 문제로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 2020년에는 할리우드 영화 '더 위치스'에서 마녀를 연기한 앤 해서웨이가 그로테스크한 손가락 분장을 한 채 등장하면서 장애인 비하 논란이 일었고, 그의 원작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같은 해 달의 유족은 "달의 발언으로 인해 입은 상처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그의 반유대주의 성향이 담긴 글들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판권을 손에 쥔 출판사는 달의 다채로운 표현과 현대 독자의 민감도 사이의 절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번 수정 작이 그 고민의 결과라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달의 작품이 이처럼 대거 수정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달의 팬클럽 설립자 크리스 하워드는 "달의 책이 바뀌어서 실망했다"며 "일부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사람들은 '해리포터'에 대해서도 그렇게 얘기했었다"고 말했다.
달의 전기를 쓴 매슈 데니슨은 생전 달이 작품을 써 내려갈 때 단어 하나하나에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었다는 점을 짚었다.
데니슨은 달이 작품을 편집할 때 "어린 시절 들었던 전쟁 은어들을 지켜내려 했다"며 "이는 자연스럽고 의도적인 것들로 그는 간섭에 저항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달은)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어린 독자가 행복하다면 신경 쓰지 않았다"며 "그는 소설 편집 작업이 정치적 풍토 속에서 아이들이 아닌 어른 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걸 인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cui7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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