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랑스에 37년간 한국문화 전파한 '므슈 조르주'

입력 2023-02-28 07:31  

[인터뷰] 프랑스에 37년간 한국문화 전파한 '므슈 조르주'
"은퇴하고 나서도 프랑스 곳곳 다니며 한국 문화 알리고파"
1986년부터 한국문화원 근무한 전문위원 올해 2월 퇴직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1980년대에 TV를 틀면 일주일에 2∼3번꼴로 한국 경찰관들이 시위하는 사람들을 때리는 장면이 나왔어요. 이렇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박혀있는 프랑스 기자들에게 한국 문화를 이야기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프랑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던 시절, 방송·연극·문학 등 어느 영역에서도 한국 콘텐츠를 찾아볼 수 없던 시절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에 들어온 조르주 아르세니제빅(66) 전문위원은 미지의 영역에 있던 한국 문화가 프랑스에서 꽃 피우게 되는 과정을 지난 37년간 지켜봐 왔다.
'문화 강국'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그사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콧대 높은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았고, 파리에 3곳뿐이던 한국 식당은 이제 수도권에만 200곳이 넘는 등 한국 소프트파워의 위상은 1980년대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다.
올해 2월까지 근무하고 문화원을 떠나는 아르세니제빅 위원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은퇴를 하면 그간 미뤄왔던 시집도 출간하고, 작곡도 하고 싶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을 주제로 강연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세니제빅 위원은 "영화, 문학, 판소리, 연극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이제는 프랑스에 많이 알려져 인지도는 올라갔지만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며 "특히 조그만 시골 동네에 가면 한국, 중국, 일본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 역시 문화원에서 일하기 전에는 한국 문화를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은 한국 영화 감독 계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한국 영화 마니아'이지만, 그전에는 한국 영화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빠져들었다는 그는 왜 인제야 이 작품들을 알게 됐을까, 아쉬웠다고 힌다.
그런 마음은 비단 아르세니제빅 위원만 품은 게 아니었다. 1993년 퐁피두 센터에서 '한국 영화 회고전'을 열었을 때 옆에 앉아 수많은 영화를 같이 본 고전 영화 배급사 대표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 배창호 감독의 '꿈', 이두용 감독의 '뽕' 등이 파리 시내 영화관에 걸렸다.
"넉 달 동안 85편의 영화를 상영했고, 3만5천명의 관객이 왔어요. 르몽드, 텔라라마 등 주요 언론들은 '우리는 이제야 훌륭한 한국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이 회고전이 오늘날 프랑스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는 토대를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프리랜서 기자, 프랑스어 강사 등으로 일했던 아르세니제빅 위원은 우연한 계기로 한국 문화원과 연을 맺었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제자 중에 한국 문화원장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의 프랑스어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을 본 원장이 아르세니제빅 위원에게 문화원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당시 한국에 관해서라면 군사 독재 정권 치하에 있다는 점 외에는 딱히 아는 바가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에 일자리를 수락했다. 처음에는 서한, 연설문 등을 작성하는 자리라고 했는데 문화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대외협력부터 언론담당까지 각종 일을 도맡아야 했다.
아르세니제빅 위원은 "처음에는 완전한 우연으로 문화원에서 일하게 됐지만, 지금은 완전히 한국과,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며 이제는 한국을 떼어놓고 자신의 삶을 논할 수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파리 음악원, 에콜 노르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던 아내에게는 수많은 한국인 제자들이 있어요. 학생들은 아내를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막역하게 지냈죠. 제 아이들은 꼬맹이 시절부터 때부터 김치와 잡채를 먹으면서 자랐어요."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해 갈 무렵 아르세니제빅 위원은 한국문화원을 위해 조언을 하나 하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느냐며 먼저 말을 꺼냈다. 한국문화원을 운영하는 해외문화홍보원장이 3∼4년 전 파리를 방문했을 때 술을 한잔 기울이면서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때 프랑스 문화원장을 뽑을 때 프랑스어를 잘하는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지, 가장 엄격하고 가장 어려운 시험을 치러서 뽑아달라고 부탁했다"며 "하지만 원장을 뽑고 나면 자발적으로,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게 내버려 뒀으면 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11명의 문화원장을 지켜본 아르세니제빅 위원은 한국에 보고해야 하는 서류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며 "그 시간에 차라리 현장을 더 찾아다니고, 누구와 협업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문화원이 실제로 행하는 시간이 많아야지 무엇을 했다고 행정적으로 증빙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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