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연간 물가 상승률 100% 넘는 아르헨티나에서 산다는 것은…

입력 2023-03-25 07:01   수정 2023-03-25 09:20

[르포] 연간 물가 상승률 100% 넘는 아르헨티나에서 산다는 것은…
한인 의류상가 밀집한 '아베야네다' 거리 한산…상인들은 깊은 한숨만
"월급 올려달라하기도 민망스러운 실정"…"보유 외환 고갈로 수입도 안돼"
"모든 자원 가진 나라, 곧 다시 설 것" vs "정권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한인 의류 도매가게가 즐비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플로레스 지역 일명 '아베야네다'는 23일(현지시간)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체감 온도 40도를 넘는 역대급 폭염이 지나가고, 기온도 23도로 더 할 수 없이 좋은 날씨였으나, 도매시장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상가에도, 상점에도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살인적인 물가', '경제 위기', '가뭄으로 인한 곡물 생산 감소', '외환보유고 고갈 비상' 등 외신들이 아르헨티나 관련 기사를 송고할 때 반복되는 제목들이 실감 나는 현장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지난 2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02.5%로 32년 만에 세자릿수를 기록했다.
선진국들은 연간 물가상승률 6%를 놓고 여야가 신랄하게 책임론을 논하며 민감하지 반응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월 물가상승률이 6%를 상회한다.
선진국에선 한 번에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는 것을 베이비스텝(소폭조정)이라고 하는 데 반해 아르헨티나의 베이비스텝은 기준금리 3% 포인트인상을 말한다.
연간 물가상승률 100%가 넘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걸 의미하는지 한인 교포들의 삶의 터전인 아베야네다 도매 상가를 찾아 살펴봤다.



청바지 가게에서 일하는 바네사(44) 씨는 "자고 일어나면 물건 가격이 올라 있어서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렇지 않고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다"라며 한숨을 길게 쉬면서 말했다.
그는 "월급 가지고는 살기 어렵지만, 가게 매출도 줄어들어 가게도 어려워서 사장님한테 월급을 올려달라고 하기도 민망스러운 실정이다"라며 텅 빈 가게를 보라고 했다.
옆에 있던 직원 라라(29) 씨가 "이러다가 베네수엘라처럼 되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거들자 청바지를 살펴보던 고객이 "이미 베네수엘라 꼴이 난 것 같다"며 인터뷰에 껴들었다.
근교에서 의류 소매 가게를 한다는 이 고객은 "가장 많이 가격이 오른 품목이 바로 옷"이라며 "사람들이 먹고살기도 힘든데 옷을 사겠는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생존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아베야네다 지역에서는 유대인들이 상대적으로 고급 의류를, 한인들이 중간 가격 그리고 볼리비아인들이 저가 의류를 생산하는데, 고물가에 저가 상품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볼리비아 가게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상인들은 귀띔했다.
실제로 유대인들과 한인 가게들은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텅 빈 모습이었다.
액세서리 도매상을 하는 유대인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주인인 에르난(50) 씨는 "식품 가격이 매일 오르고 모든 게 다 오르는데, 사람들이 물건을 살 구매력 자체가 없는 것 같다"면서 "물가는 너무 높고 설상가상으로 가뭄 때문에 농작물 수출에도 비상이 걸렸고, 외환보유고 고갈로 액세서리 수입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불과 3개월 전과 비교해서 판매가 30% 정도는 하락했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의 한인 교민들은 2만여명에 이르며, 대부분 의류 도소매업에 종사한다.
한인들은 그동안 탄탄한 경제 기반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기록적인 고물가와 역대급 폭염이 '퍼펙트 스톰'으로 겹치면서 가을옷 판매에 치명타를 날려 한인들의 신음도 깊어져 가고 있다.
한인 2세로 대형 도매 의류 가게 점장으로 일하는 마르틴(37) 씨는 "매우 걱정스럽다"면서 "하루하루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데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올해 후반기 대선에서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도 누가 이 경제위기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힘없이 대답했다.
수도에서 옷 소매 가게를 한다는 최모(49) 씨는 "(요즘) 아르헨티나에선 '돈이 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돈 가치가 자고 나면 떨어지기 때문에 손에서 돈이 타서 사라진다는 뜻"이라면서 "연간 인플레 100%면 돈 가치가 반토막이 났다는 것"이라면서 혀를 끌끌 찼다.



한인 2세 에스파니아(33) 씨는 "가을옷이 불티나게 팔려야 하는 3월에 긴 폭염으로 장사를 놓쳤다. 천 가격은 지속해서 오르고, 시장에는 돈도 돌지 않고 소매상들은 새 시즌 옷을 구매할 돈이 부족하고 모두가 많이 어려운 것 같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옆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그의 시어머니는 "그래도 아르헨티나는 없는 게 없는 부국이다"라면서 "식량, 석유, 가스, 리튬, 수소 등 미래 먹거리가 다 있는 아르헨티나는 언젠가는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또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항상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면서 "지금은 나라가 어렵지만, 모든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해외투자가 활성화되고 국내 정치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우뚝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sunniek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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