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방송법, 쟁점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인가" 여부

입력 2023-04-27 06:02  

논란의 방송법, 쟁점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인가" 여부
이익단체 대폭 확대 명문화에 법적 우려…해외는 지역·경영 전문성 반영
법률 전문가 "공영방송은 공급자 아닌 국민의 것…역할부터 재정의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방송법 개정안의 27일 국회 본회의 표결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개정안 주요 조항의 법률적 문제와 절차상 미비점을 들어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본질적 정의와 성격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데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할 점은 '대표성', 즉 국민으로부터 적법하게 위임받은 권력인지 여부인데, 현재 본회의에 직회부된 방송법 개정안은 시청자인 국민이 아닌 공급자 위주로 구성됐다는 비판이다.
각 지역 대표자 또는 전문 경영인들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주로 참여하는 영국과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현재 계류된 방송법 개정안을 그대로 통과하기에는 입법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우려도 있다.
현행 방송법은 이사 추천권 배분 규정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 제46조 '이사회의 설치 및 운영 등' 조항에는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돼 있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공영방송 이사는 방통위 여야 비율에 따라 배분돼 왔다. KBS와 EBS는 이사 11명 중 여당이 7명을, 야당이 4명을 추천하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이사 9명 중 여당이 6명을, 야당이 3명을 추천하는 식이다.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대의 기관'인 만큼, 국회에서 여야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방통위원을 뽑고, 그렇게 구성된 방통위에서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구조는 법적 정당성과 국민 대표성을 보장받는다.
일각에선 이 추천권 배분 관행을 문제 삼아 공영방송이 정권 교체기 등 정치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들어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 심의 중인 방송법 개정안은 국회의 영향력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공영방송 이사 규모를 대폭 늘리면서 추천권의 대부분을 외부의 이익단체에 부여했다. 이 때문에 국민 대표성 측면에서 취약점이 지적되고 있다.
공영방송 이사 규모를 21명으로 대폭 늘리면서 추천 주체 중 국회 5명(여야 의석수 비율에 따라 추천)을 제외한 16명, 약 76%를 방송·미디어 유관 단체의 입장이 반영되게 한 것이다.
16명은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가 선정한 4명, 기자·PD협회 등 방송 전문단체가 추천한 6명, 방통위가 선정한 언론 관련 학회 6명으로 구성하도록 했는데 직능별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 관련 단체 등은 선거 등 절차를 통해서 국민의 위임을 받은 기관은 아니다.
이사 추천 주체가 공급자 위주여서, 지역 균형성·전문성·성별·종교·교육·노동 등 사회 각 분야 대표성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해외 사례를 보면 언론 이익단체나 관계자보다는 오히려 지역 대표나 기업 CEO 등 전문 경영인들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참여하는 사례가 많다.
영국 BBC는 비상임이사 10명과 경영진에 속하는 상임이사 4명 등 총 14명이 이사회를 이룬다. 이사장 1명과 민족 권역 이사 4명은 정부의 공직자 선임 절차에 따라 문화미디어스포츠부 인선위원회가 공모를 거쳐 인선하고 국왕이 임명하도록 해 지역성을 반영했다.
일본 NHK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경영위원회와 회장·이사·임원으로 구성된 이사회로 이뤄지는데, 경영위원회는 교육·문화·과학·산업·8개 광역권 등이 공평하게 대표되도록 고려해 총 12명으로 구성하고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방송법 개정안을 보면 이사회 구성을 공급자 위주로 했는데, 공영방송의 주인이 국민 한 명 한 명인 점을 고려한다면 시청자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공영방송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사추위) 구성 방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개정안은 국민 대표성 확보를 위해 성별·연령별·지역별 인구분포 등을 고려해 100명으로 사추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렇게 구성할 경우 특정 단체가 추천을 주도하는 등 편향성을 심화시켜 오히려 정치적 독립성을 약화할 우려도 제기된다.
또 사장에 대한 임명제청권이 이사회에 있고, 사추위의 구성·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이사회가 정하는 사항이므로 사추위가 형식적으로 운영될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 법안이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점, 헌법재판소에서 방송법 본회의 직회부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청구가 진행 중인 점 등 절차적 문제도 언급되고 있다.
최 교수는 "지금은 이사회 구성 변화를 졸속으로 논의하기보다는 공영방송 이사회가 '무엇'을 대표할지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며 "디지털 네이티브까지 포괄할 공영방송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그다음 논의도 할 수 있다. 그게 되지 않으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lis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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