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불안' 日 80년 평화주의 흔들려…기시다, 레드라인 넘을듯

입력 2023-05-20 14:10  

'안보불안' 日 80년 평화주의 흔들려…기시다, 레드라인 넘을듯
BBC, G7 의장국 일본 조명…"北·中 위협에 핵공유 추진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중국의 대만해협 무력시위와 북한 군사도발 등 이웃 국가들의 위협 속에서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80년간 지켜온 평화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전임자인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이어 '우향우' 행보를 지속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줄곧 금기시돼온 자체 핵무장 논의로까지 나아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BBC는 "집권 자민당은 그간 군국화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에 의해 발이 묶여있었으나 어느덧 이런 압박은 느슨해졌다"며 "기시다 정부는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로 군사 지출을 늘리면서 군비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차대전 추축국인 일본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에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항복했다. 그리고 1947년 시행한 일명 '평화헌법'을 현재까지 단 한 차례 개정 없이 유지해오고 있다.
평화헌법은 분쟁 해결을 위한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하고, 육·해·공군을 비롯한 군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9조가 핵심이다.
개헌을 통해 군대를 공식 보유하려던 역대 일본 내각의 시도는 번번이 국내 반발 여론에 부딪혀 좌절됐지만, 안보 위기가 닥칠 때마다 헌법 조항에 대한 해석을 조금씩 확대하는 식으로 진전을 거뒀다.
특히 한국에서 벌어진 6·25 전쟁과 동서 냉전을 틈타 1954년 준군사조직인 자위대를 창설했고, 1990년 제1차 걸프전 때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자위대를 해외 파견하는 등 보폭을 넓혀왔다.
아베 전 총리는 2015년 무력공격사태법 개정을 밀어붙여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한 해외 파병 근거를 마련했고, 후임 기시다 현 총리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 국민투표를 조기에 실시하겠다며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미 템플대 일본캠퍼스(TUJ)의 제임스 D. 브라운 교수는 "평화주의는 일본 대중의 이상적인 고정관념으로, 이를 폐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 대신 평화주의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과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평화주의는 '무력 사용 반대'라는 원칙적 뜻으로 통용됐으나, 이제는 자기방어를 명목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기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BBC는 일본이 최근 주변 국가들에 흡사 포위되는 듯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이해 다시금 전환점에 이르고 있다고 짚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갖춰가고 있는 중국은 일본과 분쟁이 있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등 남중국해에서 과감한 군사행동에 나서고 있다.
갈수록 고조되는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갈등이 전면 충돌로 치달을 경우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일본이 휘말려 들어갈 것이라는 불안감 역시 커지는 형국이다.
여기에 북한이라는 존재가 일본에 영속적이고 실존적인 위협을 드리우고 있다고 BBC는 언급했다.
선대에 이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김정은 북한 정권은 최근 1년간 일본 영공을 지나는 탄도미사일을 수차례 발사했다.
전날 일본에서 개막한 G7 정상회의의 주요 화두이기도 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도 이같은 핵전쟁 우려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갈수록 경제적, 군사적으로 밀착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도쿄대의 스즈키 가즈토 국제안보·정치학 교수는 "일본으로선 '우리가 지금 매우 거친 이웃들의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력 강화에 대한 여론도 점차 반전되고 있다.
일본 정부 조사에 따르면 자위대 강화에 대한 찬성 여론은 2018년 29.0%에서 작년 41.5%로 훌쩍 뛰었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에 지지하는 응답자는 90%에 이르고, 51%는 이제 헌법 9조 개정을 통한 군사력 보유를 원한다.

브라운 교수는 "정부의 자위대 강화 움직임에 대중이 항상 제동을 걸어왔지만, 이제 그 브레이크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민당 내 온건파로 여겨져 온 기시다 총리의 '변신'을 거론하며 "비둘기파는 좀처럼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에, 매파적인 움직임을 하기 쉽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본의 핵무장은 아직 강경 보수파들 사이에서도 금기시된 말이라고 BBC는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아베와 기시다는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던 것을 가로지르며 전력 강화를 추구해왔다"며 "다수의 일본인, 그리고 중국 등 이웃 국가들은 일본이 향후 또 어떤 터부를 깰지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일본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보낼지 여부가 첫번째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기시다 총리는 최근 G7 정상으로서는 마지막으로 키이우를 찾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지지를 약속한 바 있다.
이는 대만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졌을 때 일본이 미국을 어느 정도까지 지원할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베 전 총리가 주장했던 '핵 공유' 옵션도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일부가 채택 중인 핵공유는 미국의 핵무기를 자국 영토 내에 배치해 공동 운용하는 형태로, 작년 기시다 총리는 이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BBC는 "전문가들은 일본이 특정한 상황에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며 "한국이 핵무기를 얻거나,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이 더 커지거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기어코 핵무기를 쓰는 등의 경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국내 여론은 분분하다.
호세이대의 아키모토 다이스케 박사는 "반핵 및 반전 정서는 여전히 살아있다"며 이같은 가능성에 선을 그었지만, 반핵 운동가 오카지마 유나는 "정부는 전쟁 의사가 없다고 말하지만 때가 되면 전쟁에 나설 준비를 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세 살이었던 '히바쿠샤'(被爆者·원폭 피해자) 미마키 도시유키는 사망자 기림비를 바라보며 BBC에 "우리가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불에 탔고, 이는 일본제국 육군의 실수였다"며 "우리는 더는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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