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숨은영웅] 美노병 그의 집 현관엔 '장진호 명판'이 놓여 있었다

입력 2023-07-02 06:25  

[한국전 숨은영웅] 美노병 그의 집 현관엔 '장진호 명판'이 놓여 있었다
16세 때 나이속여 자원입대, 한국전 투입…"내품에서 친구 하늘나라로"
PTSD 겪다 용기내 2019년 한국땅 다시 밟아…"韓 발전상 깜짝 놀라, 참전 보람"



(세일럼[미 오리건주]=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지난달 1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남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주도(州都) 세일럼.
시내에서는 꽤 떨어진 모로우 코트 노스웨스트라는 길로 들어서자 입구에 지붕에서 성조기가 펄럭이는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금세 참전 용사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관 입구 한켠에는'북한 1950년 11월 27일∼12월 11일'의 기간과 함께 '초신 해병대(CHOSIN MARINE)'이라고 적힌 작은 명판이 놓여 있었다.
한국 전쟁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는 '장진호 전투'(Chosin Few) 참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전 당시 미군은 일본이 제작한 지도를 사용해 '장진'을 '초신(Chosin)'으로 불렀다.
명판은 훗날 장진호 전투 주력이었던 미 해병대로부터 받은 참전 인증이라고 한다. 미 해병대의 유명한 구호로, '언제나 충성'(Always Faithful)을 뜻하는 라틴어 '셈퍼 파이(Semper Fi)가 적혀 있었다.



집 안에서 안경을 쓴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어르신이 나와 기자를 반겼다.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았다. 실제 나이보다는 젊고 건강해 보였다.
한국 전쟁 참전용사 빌 치즈홈(89) 씨였다. 그는 집안으로 기자를 안내한 뒤 한국 전쟁의 기억을 조금씩 되살렸다.
70여년이 지나 모든 걸 기억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당시의 순간순간은 지우려고 해도 오랜 기간 그의 뇌리에 스며들어 있었다.
1934년 5월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에서 태어난 치즈홈 씨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군에 자원입대했다. 당시에는 18세 이전에는 입대가 되지 않던 때였다.
그는 "(아버지의 이혼으로) 계모와 함께 살기 싫어서 집에서 나가고 싶었고 그래서 나이를 속여 입대했다"고 했다.



군인이 되고 채 3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입대 6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게 됐다.
전쟁통의 나라였지만, 처음 보는 한국은 당시 10대였던 그에게 가난으로만 기억되진 않았다.
그는 "시골 동네에 가면 사람들이 큰 솥에다 밥을 지어서 먹는데 우리를 볼 때면 같이 먹자고 나눠주기도 했다"며 "우리도 배급받은 초콜릿이나 젤리를 아이들에게 주곤 했는데, 가난한 전쟁 상황에서 나눠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한국에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은 한층 격렬해졌고, 자신이 속한 7보병사단 31연대는 장진호에 배치 명령을 받았다. 치즈홈 씨는 "1950년 11월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미 제1해병사단 1만5천여 명이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중공군 7개 사단 12만여 명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렸다가 혹한 속 치열한 전투 끝에 포위를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중공군과 밤낮없는 전투가 이어졌고,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영하 40도에 가까운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다.
그는 "1951년 9월쯤 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1년 가까이 한국에 있으면서 5번 가량 전투를 했다"며 "장진호 전투가 최악이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포탄 잔해에 맞아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네이팜탄에 시력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고 했다. 입대 후 알게 된 친구도 이 전투에서 잃었다.



그는 "내 품에서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며 "자신도 아빠가 됐다며 아기 사진을 보여준 지 불과 며칠 뒤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53년 군 생활을 마친 후 한국 전쟁 참전 공로로 2개의 훈장을 포함해 모두 7개의 메달을 받았다.
치즈홈씨에게 한국 전쟁은 오랫동안 끔찍한 기억(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으로 남았다. 한국이 발전했다고 들었지만,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2019년에서야 한국에 가보겠다는 용기가 생겼고, 마침내 약 70년이 지난 후에야 한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그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 가난했던 나라가 스스로 일어서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taejong75@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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