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르포] ① 순례객 가득 포탈라궁…광장에는 초대형 시진핑 사진

입력 2023-06-22 06:01  

[티베트 르포] ① 순례객 가득 포탈라궁…광장에는 초대형 시진핑 사진
라싸 시내 곳곳서 중국 전역에서 온 순례객들 '오체투지' 행렬 모격
학교·가정에 시진핑 사진과 오성홍기…거리에는 공산당 선전문구


[※ 편집자 주 : 중국 티베트(시짱·西藏)는 신장(新疆)과 함께 소수민족 탄압 등 인권 문제가 제기되는 지역입니다. 2008년 대규모 유혈시위가 벌어졌고 이후에도 승려들의 크고 작은 분신이 있었습니다. 연합뉴스는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주관으로 세계 유명 언론과 함께 티베트를 공동 취재했습니다. 티베트 주민들의 생활과 중국 공산당의 통치까지 세 꼭지의 현장 르포 기사를 송고합니다.]


(라싸[티베트]=연합뉴스) 한종구 특파원 = 14일 저녁 중국 티베트 성도 라싸 공항에 내리자 중국의 다른 지역과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오후 9시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밖은 한낮처럼 환했다.
수도 베이징에서 서쪽으로 2천600여㎞ 떨어져 있지만, 중국은 베이징 시간을 기준으로 전국을 통일하기 때문에 실제 시간보다 2시간 이상 빠른 시간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해발 3천800m 고원에 위치한 라싸 공항 주변은 온통 메마른 풀과 돌로 덮인 거대한 산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진으로만 본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들은 티베트를 '서쪽의 보물창고'라는 의미로 '시짱'(西藏)이라고 부른다.
인도·네팔·부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자 중국 전체 면적의 8분의 1에 해당하며 구리·석유·우라늄 등 자연 자원도 풍부한 지역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인구는 364만 명, 이 가운데 87.8%가 티베트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이다.
취재진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티베트 불교의 상징으로 꼽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포탈라궁이다.
라싸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포탈라궁으로 가는 길에서는 티베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마니차(불경이 새겨진 티베트 불교 도구)나 염주를 손에 들고 입으로는 끊임없는 경전을 암송하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새까만 얼굴의 젊은이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고지대인 탓에 산소가 희박해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극심한 두통이 몰려왔지만, 순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포탈라궁 주변을 돌고 또 돌았다.
순례객도 순례객이지만 취재진을 놀라게 한 것은 라싸 시내 모습이었다.
시진핑 주석의 어록이나 중국 공산당의 선전 문구를 적은 대형 게시판과 전광판이 도로 곳곳에 설치됐기 때문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는 곳은 기업의 상품을 광고하는 자리인데, 티베트는 예외였다.
붉은색 바탕의 게시판에는 중국어와 티베트어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자'라거나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중화 민족은 한 가족'이라거나 '중화 민족은 같은 뿌리'라며 민족의 단결을 호소하는 내용도 많았다.
중국이 티베트 분리 독립 문제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한 외신기자는 "중국 여러 곳을 여행하고 취재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산당을 선전하는 지역은 처음"이라며 "한 민족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한 민족이 아니기 때문 아니냐"고 말했다.
취재진은 포탈라궁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포탈라궁 광장에 도착해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신체의 다섯 부분(두 팔꿈치, 두 무릎, 이마)을 땅에 닿게 하며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기원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순례객들 사이로 중국 국기 오성홍기가 펄럭였다.


광장 한쪽에는 중국어와 티베트어로 '시짱 평화해방 70주년 축하'라는 문구와 함께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전 주석과 시진핑 현 주석까지 1∼5세대 최고 지도자의 얼굴이 함께 담긴 대형 조형물이 설치돼 있었다.
이 조형물 맞은편에는 시진핑 주석이 환하게 웃고 있는 초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늦은 밤에도 사진들이 잘 보이도록 조명까지 설치한 모습이었다.
또 광장 뒤편에는 '티베트 평화해방 기념비'가 포탈라궁을 마주 보고 있었다.
중국은 1951년 5월 23일 티베트와 '시짱 평화해방 방법에 관한 협의'라는 조약을 맺고 티베트를 병합했는데, 이것이 농노 사회였던 티베트를 해방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포탈라궁과 포탈라궁 광장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 이름을 '베이징 중로'라고 명명한 것도 눈에 들어왔다.
특히 '포탈라궁-베이징 중로-포탈라궁 광장-국기게양대-티베트 평화해방 기념비'로 이어지는 구도는 베이징 중심가의 '톈안먼-장안대로-톈안먼 광장-국기게양대-인민영웅기념비'와 같았다.
베이징에서 2천600㎞ 떨어진 라싸 중심부 도로명에 베이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라싸를 '티베트의 베이징'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티베트 시위 사태의 본거지였던 '조캉사원'(大昭寺)과 인근 '바코르 거리'(八廓街)도 평화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캉사원은 포탈라궁과 함께 티베트인의 양대 정신적 성소로 불리는 곳이다.
사원 주변을 돌거나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객과 티베트 전통 복장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만 오갈 뿐 2008년 당시처럼 티베트의 독립을 외치던 승려들과 티베트인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한자로 중국어를 크게 써 놓고 그 밑에 티베트어를 병기한 상가들, 중국어로 손님을 부르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이곳이 중국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거리 곳곳에서 부동자세로 전방을 주시하는 군인들이 없다면 일반 관광지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마치 체제에 저항하지 않고 당국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종교를 비롯해 어느 정도의 자유를 허락하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라싸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산 중턱에 '민족 만세'라고 쓰인 붉은색 대형 조형물을 설치해 시내 어디서나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점도 외지인에게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조캉사원 앞 광장에서 만난 한 티베트족 젊은이는 기자에게 중국어로 "우리는 중국인인 동시에 티베트인"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시내를 벗어나자 지붕에 타르초(경전이 적힌 만국기 형태의 오색 깃발)를 걸어 티베트인이 사는 곳임을 알리는 주택에도 어김없이 오성홍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학교, 병원, 기업, 공장, 농장 등 취재진이 방문한 모든 곳에는 중국 역대 지도자 사진과 시 주석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런 풍경에는 중국 최고 지도부의 배려와 지지 속에 티베트가 안정적으로 평화롭게 발전하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티베트 분리 독립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함께 느껴졌다.
취재진이 찾아간 라싸 외곽의 한 티베트족 체험 마을 입구에는 "각 민족은 중화민족 대가족 안에서 석류 씨처럼 꼭 껴안아야 한다"는 문구가 중국어와 티베트어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jkh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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