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참상' 되풀이…이스라엘 공격에 다시 전쟁터된 서안지구

입력 2023-07-04 11:44   수정 2023-07-06 08:43

'20년전 참상' 되풀이…이스라엘 공격에 다시 전쟁터된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제닌 난민촌, '테러 소탕' 명분에 초토화돼
"극우 네타냐후 정권, 사법개편 역풍에 안보 이슈로 돌파구"
유엔 사무총장 "군사작전에 국제인도법 준수돼야"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연이은 폭발로 난민촌 입구부터 마을 한가운데까지 땅바닥이 쿵쿵 흔들린다.
구급차에서 울리는 사이렌과 고함, 비명은 끊이지 않는 포격과 기관총의 요란한 굉음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거리는 탄피와 깨진 유리로 뒤덮였고, 이스라엘군의 시야를 막으려 불태운 타이어 더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와 자욱한 최루탄 가스가 뒤섞여 매캐해진 공기가 코를 찌른다.
1만1천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모여 사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작은 마을은 3일(현지시간) '테러 집단'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소탕하겠다는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작전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서안 북부의 가난한 빈민촌 제닌에서 2000년대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인 '제2 인티파다' 이후 최악의 전투가 펼쳐졌다"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이곳은 2002년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군사작전으로 초토화됐던 곳인데, 역사는 애꿎게도 반복되고 있다.
가디언은 "20년이 지난 오늘 이곳에 다시 전면전이 벌어지며 이전 세대가 겪었던 오래된 트라우마가 되살아났고, 이는 이곳의 젊은이들을 새로 각성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이른 시각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합동 상황실'을 중심으로 여러 목표물을 공습하고 지상군 병력을 투입하는 등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군사작전을 벌였다.

'집과 정원' 작전으로 명명된 이번 군사행동을 통해 15년 만에 처음으로 서안을 겨냥한 무인기(드론) 공격도 이뤄졌다.
오후 들어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는 최소 8명으로 늘었고, 부상자는 50여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2002년 당시 인티파다 진압의 상징이었던 불도저도 다시 등장, 도로를 휩쓸며 민가와 자동차를 밀어냈다. 이스라엘군은 "급조폭발물(IED)을 제거하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닌의 지역 병원에는 밀려드는 환자로 혼란상이 펼쳐졌다. 간헐적 정전이 이어졌고, 복도에는 피가 흘렀다.
4년간 이곳에서 일해온 정형외과의사 마흐무드 바슬릿은 "오늘이 최악의 날"이라며 "이스라엘군이 앰뷸런스 진입을 막아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들이 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스라엘군은 가디언의 이메일 질의에 "팔레스타인의 의료행위를 방해하지 않고 있다"고 부인했다.

55년간 이어져 온 이스라엘 점령 기간 제닌은 팔레스타인 저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이곳에선 양측 간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수시로 벌어졌고 주민들은 빈곤과 범죄, 실업 등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이 지역은 오늘날 다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제닌에서만 자국군 피습 사례가 총 50차례 발생했고, 19명의 테러 용의자가 이곳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이에 이스라엘은 지난해 3월 제닌과 인근 나블루스에 초점을 맞춘 대테러 활동인 이른바 '방파제' 작전을 개시했고, 이후 15개월간 야간 공습을 이어왔다.
올해 들어서만 팔레스타인 측 133명, 이스라엘 측 24명이 숨졌는데, 피해자 수는 2005년 이후 최대 수치라고 가디언은 짚었다. 작년 또 다른 분쟁지역인 가자지구에서는 팔레스타인 측 83명, 이스라엘 측 1명이 사망했다.
최근 들어 이스라엘군은 제닌에서 급조폭발물 공격을 당하자 맞대응 차원에서 공격용 헬기까지 띄우는 등 유혈 사태 수위는 갈수록 고조되는 형국이다.
이에 미국 등 서방 국가는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는 "이번 작전은 오래전부터 계획됐으나 지난주 '이드' 명절까지 연기돼온 것"이라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번 '집과 정원' 작전의 의도가 무엇인지 불확실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작년 말 극우 성향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재집권하면서 안보 강화에 대한 압박이 커졌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군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 무력화'라고 비난받는 사법 정비 정책을 밀어붙이다 여론의 반발로 지지 기반이 약해진 것과 이번 공격의 시점이 겹치는 것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가디언은 "이번 충돌은 아직 완전한 전면전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수십년간 이어진 분쟁이 새로운 단계로 옮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어떤 계기로 (전면전의) 불꽃이 튀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은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이번 작전을 통해 제닌에서 다수의 폭발물 등을 회수했다"고 밝히며 무력 작전을 정당화했다.
이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제닌 사태 전개와 관련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성명에서 "모든 군사작전은 반드시 국제인도법을 준수하면서 실행돼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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