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여태 없던 글로벌 투자협정, 한국 주도로 타결

입력 2023-07-12 07:07  

[특파원시선] 여태 없던 글로벌 투자협정, 한국 주도로 타결
한국, 협상 공동의장국 되자 급물살…WTO 사무총장 "뛰어난 항해술" 평가
WTO, 20년 안팎 소요 협상 6년만에 처리…韓 개도국 요구사항 높은 이해 바탕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제 귀를 믿을 수가 없네요(I couldn't believe my ears)."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지난 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WTO 청사에서 열린 '개발을 위한 투자 원활화 협정'(IFD Agreement) 참가국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협정이 타결되자 내놓은 반응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린 회원국들의 이견이 분출하는 다자회의 틀 속에서 통상 굵직한 협정 하나가 타결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게 사실이지만 이 협정은 6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타결에 이르렀다.
WTO 수장의 반응에는 통념을 깬 신속한 타결에 놀란 기색이 묻어난다. 누구보다 협정 타결을 바라지만 회원국들이 이렇게 '시원하게' 합의에 도달했다는 건 예상 밖이라는 것이다.
이 협정은 WTO라는 다자 틀 내에서 각국이 외국인 투자 업무를 취급할 때 어떤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를 다룬 첫 규범이다.
양자 협정 내지 지역별 협정을 통해 투자 규칙을 정해놓은 사례는 전 세계에 3천여개에 이른다. 외국인 투자자의 시장접근이나 보호, 투자자 국가 소송 여부 등의 사안이 이런 개별 협정에서 다뤄져 왔다. 하지만 큰 틀에서 세계 투자 업무의 규범이 될 협정은 여태 만들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번 협정은 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후 타결된 세 번째 협정이기도 하다. 1996년 처음 논의되기 시작해 2014년 타결된 무역원활화 협정, 21년 만에 합의가 도출된 수산보조금 협정에 이은 것이다.
이 협정은 각국 투자 관련 조치의 투명한 공개와 절차 간소화 등 투자 걸림돌을 해소함으로써 외국인의 개발도상국 투자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합리적 수수료 부과 의무, 전자정부 체계 사용 장려 등의 내용도 담겼다.
투자 업무의 투명성을 높이고 인허가를 원활화하며 기업의 책임 있는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협정의 취지다. 협정 가입국이라면 기업들이 '투자하기 편한 나라'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 정도의 기본 규범을 설정하는 내용이다.
WTO 내 상소기구가 정지되는 등 국제 무역·투자 분쟁을 원만히 처리할 기능이 점차 약해지는 상황에서 개도국 투자를 활성화할 규범이 만들어진 것은 국제사회가 환영할 일이다. 분쟁이 많은 건 규범이 빈약해서라는 지적이 그동안 많았다.
WTO 사무총장의 반응에서 보듯, 2017년 논의가 시작된 이 협정이 6년 만에 타결에 이른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는 작년 7월부터 칠레와 함께 협상 공동의장국이 된 우리나라의 역할이 중추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사무총장이 신속한 협정 타결에 대해 "뛰어난 항해술" 덕분이라며 공동의장국들을 추켜세운 데에는 '가속페달'을 밟게 해 준 한국에 대한 감사의 뜻도 다분히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칠레가 단독 의장국을 수행하다 작년 7월부터 한국이 공동의장국으로 참여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우리 쪽 공동의장은 다수의 자유무역협정(FTA) 타결과 투지유치 업무 경험을 지닌 '베테랑' 박정성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차석대사가 맡았다.
논의가 시작된 2017년부터 작년 7월 전까지는 모든 협정 제안이 말 그대로 '제안 상태'에 담겨 있었지만, 올해 4월이 되자 모든 협정 제안 관련 쟁점들이 '합의 상태'로 넘어갔다. 시간만 오래 끌 부차적 쟁점들은 과감히 빼는 전략도 활용됐다.
외국의 투자를 받고, 외국에 투자한 경험이 모두 풍부한 한국은 협상 참여국으로서 쟁점을 선명하게 가다듬고, 핵심에 접근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장국으로서는 협상 참가국들의 의견을 회의 때마다 적극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쟁점을 지닌 국가 대표들을 수시로 만났던 것도 한국 대표단이다.
세계 경제가 갈수록 블록화하는 상황에서 무역·투자를 활성화하려면 다자 틀이 예전 기능을 되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탄탄한 규범이 신속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을 공동의장국 한국은 수시로 강조했다.
박정성 차석대사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우리는 작년 말 타결을 목표로 두고 협상을 진행했다"면서 "기업인 이동 문제, 최혜국대우조항(MFN), 기존 WTO 협정과의 관계 등 쟁점이 남아 타결을 못봤지만 올해 1월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 당시 각국 통상장관들이 협정 지지 의사를 확인하면서 큰 동력을 얻었다"고 떠올렸다.
박 차석대사는 "의장국이자 협상 참여국인 우리나라 대표단에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인력 등 여러 분야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점이 협상을 가속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WTO의 164개 회원국 가운데 이번 협정에는 3분의 2 이상인 110여개 회원국이 참여했다. 협정 참여 의향을 지닌 국가들이 모여 타결에 이른 뒤 참여 저변을 넓히는 이른바 복수국간협상(JSI) 방식으로 이번 협정은 추진됐다.
이번 타결 이후로는 협정문 교정 등 기술적 작업을 거쳐 내년 2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제13차 WTO 각료회의에서 타결이 공식 선언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관계자는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는 뼈를 깎는 체질 개선 과정을 거쳐 많은 외국인 투자 경험을 갖게 됐고, 우리 기업들의 해외 투자도 많이 진행돼 개도국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자신감 있게 얘기할 수 있었다"며 "이런 경험은 협상 참여국 사이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prayer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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