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반된 판결에 가상자산 증권성 논의 제자리…혼란 지속될 듯

입력 2023-08-03 06:15  

미 상반된 판결에 가상자산 증권성 논의 제자리…혼란 지속될 듯
권도형 제기 소송서 미 법원 "가상화폐는 증권" 판단…'리플 판결'과 달라
국내서 증권성 논의 판결 거의 없어…'루나 사태'가 기준 될 듯
금융당국TF 구성에도 체크리스트 마련 요원…개별 가상자산 위주 검토만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채새롬 민선희 기자 = 미국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오면서 가상자산(가상화폐)의 증권성 여부와 관련한 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달 '리플 판결' 이후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 리스크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다시 '가상자산은 증권'이라는 요지의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을 둘러싼 리스크가 커지는 모습이다.
국내 법원에서는 아직 가상자산 증권성에 관해 정면으로 논의한 판결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가상자산법 통과 등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금융당국의 증권성판단 지원 태스크포스(TF)는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테라·루나 폭락사태'와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차이코퍼레이션 전 총괄대표 신현성씨 사건이 가상자산 증권성 여부가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해외서 가상자산 증권성 논란 지속…미국 판결도 엇갈려
가상자산 증권성 논란은 해외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년 넘게 이어진 미국 증권선물위원회(SEC)와 리플 간 소송전이다.
SEC는 2020년 12월 가상자산 리플(XRP)이 법에 의한 공모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불법 증권이라고 판단하고, 리플 발행사 리플랩스와 최고경영자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리플랩스는 리플이 증권이 아닌 상품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지방법원 아날리사 토레스 판사는 지난달 13일 '리플이 그 자체로 증권인 것은 아니다'라며 사실상 리플랩스의 손을 들어줬다.
리플랩스가 기관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리플은 증권이지만, 가상자산거래소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판매한 리플은 증권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기관투자자의 경우 리플랩스와 직접 거래했고, 리플랩스 사업이 성공하면 리플 가치도 더불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 반면, 거래소를 통해 구매한 일반 투자자들은 판매 주체를 모르는 데다 구매비용이 어디로 가는지 명확히 알 수 없어 증권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타인의 노력에 의한 이익 기대'가 증권성 여부를 가른 기준이 됐다.
가상자산업계는 리플 판결이 나온 뒤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리플이 미등록 증권이라는 판결이 나올 경우 현재 유통되는 대부분의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코인)이 미등록 증권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보름여 만에 이를 반박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 기준은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다.
뉴욕맨해튼연방법원 제드 레이코프 판사는 지난달 31일 테라폼랩스와 설립자 권도형이 미 SEC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가상화폐는 증권"이라며 "판매 방식에 따라 증권 여부를 구분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레이코프 판사는 "유사한 사건에서 이 지역의 다른 판사가 최근 채택한 접근 방식을 거부한다"며 토레스 판사의 판결을 직접 반박하기도 했다.
이번 판결로 가상화폐는 증권이며, 가상화폐 거래소는 연방 증권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SEC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 한국, 아직 명확한 판결 없어…루나 사건에서 본격 다뤄질 듯
한국에서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과 관련해 법원 판결이 나온 적은 있지만 투자계약증권 해석과 적용에 있어 사실관계와 법리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은 상태다
이정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가 쓴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기준' 논문에 따르면 한국 법원에서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과 관련한 거의 최초의 판결이자 유일한 판결은 지난 2020년 3월 서울남부지법에서 내려졌다.
당시 A 거래소를 운영하던 B사는 C라는 명칭의 가상자산인 자체 토큰을 만들고 매수인을 모집했다.
B사는 "C 보유자에게 거래소 수수료 수익 중 일정액을 지급하는 방법(수익금 배당)과 거래행위에 사용한 수수료에 따라 토큰을 지급하는 방법 등으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다"고 광고하며 매수인을 모집했다.
이후 1이더리움당 125만여개의 C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120억개의 C를 사전판매했는데, 이를 할당받은 투자자들은 C 가격 하락으로 손해를 입자 B사와 B사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가상자산 C가 자본시장법에서 정한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데, B사가 자본시장법상 증권발행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를 발행해 손해를 입은만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C가 자본시장법상 증권, 그중에서도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은 "특정 투자자가 그 투자자와 타인 간의 공동사업에 금전 등을 투자하고, 주로 타인이 수행한 공동사업 결과에 따른 손익을 귀속받는 계약상 권리가 표시된 것을 말한다"고 전제했다.
법원은 "C를 보유함으로써 거래소 수익을 분배받기는 하지만 수익분배는 B사가 C 거래 활성화를 위해 토큰 보유자에게 부수적으로 제공하는 이익"이라며 "C에 내재된 구체적 계약상 권리나 본질적 기능이라고 볼 수 없는 점, 토큰 자체 거래로 발생하는 시세차익 취득이 매수의 가장 큰 동기인 점, 이에 관해 토큰 보유자 간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점 등에 비춰볼 때 C를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후 항소가 제기되지 않아 해당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논문은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과 관련해 이를 정면으로 논의한 판결은 지금까지도 이 사건 외에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형사사건이기는 하나 루나 사태와 관련해 루나가 증권인지 여부가 사건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 사건 판결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4월 권도형씨와 함께 테라폼랩스를 공동창업한 신현성 차이코퍼레이션 전 총괄대표를 기소했다.
신씨 등은 테라 기반의 블록체인 사업 '테라 프로젝트'를 벌이면서 루나 코인을 발행·판매해 약 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테라폼랩스 입장에서 루나 코인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상품이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테라 프로젝트에 투자해 수익을 나눠 받을 권리를 얻는 금융투자상품이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테라 프로젝트의 사업 성과가 루나 코인의 가치에 반영된 점도 투자계약증권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문제는 법원이 지난해 12월 신씨의 첫 번째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도 "루나 코인은 자본시장법에서 규제하는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언급한 점이다.
이 교수의 논문은 "루나에 내재된 여려 요소들이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의 개념 요소인 '공동사업의 수익 분배에 관한 계약상 권리가 표시된 것'을 충족하는지 여부가 문제 될 것"이라며 "이러한 요소를 충족한다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해 자본시장법 제178조의 사기적 부정거래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당국, 증권성 판단 기준 제시 어려워…"개별 판단으로 접근"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국내 유통 중인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을 지원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증권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공시의무 등 각종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가상자산은 공시 절차를 거쳐 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증권 성격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거래가 불가능해진다.
TF는 향후 가상자산 증권성을 점검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마련하고, 가상자산의 기술적 특성과 증권 개념의 연계성을 검토, 사례별 증권성 검토의견을 마련하는 업무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 내년 시행을 앞두게 되고, 한국거래소가 토큰증권(ST) 시장 개장을 서두르면서 TF의 발걸음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위해서는 가상자산을 포함한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여부 판단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TF의 발걸음은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TF는 출범 반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구체적인 체크리스트를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단기간에 마련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주식은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 등 명확한 서류상 근거만 살펴보면 되지만, 가상자산은 백서만 아니라 마케팅 자료, 소셜미디어 홍보, 주요 관계자의 발언 등까지 들여다보고 증권성 여부를 따져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법원의 관련 판결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가상자산 증권성 여부를 따지기는 쉽지 않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개별 계약이 증권인지 여부는 사실관계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개별 판단이 필요하고, 이는 전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라며 "복잡한 구조일수록 실제 계약내용을 다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일괄 기준을 두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유통 중인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는 주로 가상자산거래소에서 검토한다.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거래소에서 거래지원(상장)하는 식이다.
금감원 TF는 현재 거래소 자체 판단이 헷갈리거나 기준이 모호한 경우 도움을 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거래소의 가상자산 증권성 여부 판단을 지원하는 작업을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며 "법문이나 가이드라인 규정에 따라 개별 판단을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현재는 개별 판단을 위주로 하고, 개별 사례가 쌓이면 공통된 특성을 검토하면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급하게 하기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pdhis959@yna.co.kr, srchae@yna.co.kr, ss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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