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딜레마' 속 고삐 바짝 죈 나라살림…경기 마중물 '난제'

입력 2023-08-29 11:00   수정 2023-08-29 11:15

'세수 딜레마' 속 고삐 바짝 죈 나라살림…경기 마중물 '난제'
R&D·국고보조금 재정다이어트…복지분야 8.7% 예산확대
SOC·노인 예산 '껑충'…秋 "필수소요 반영, 선거연결 지나친 상상력"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역대 최저 수준으로 쪼그라든 '2024년도 예산안' 총지출 증가율은 세수 부족 상황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에 가깝다.
연구·개발(R&D) 투자, 국가보조금 등을 대폭 구조조정해 복지·안전·고용 분야와 저출산 대응 예산 증액분을 마련했다.
하지만 미국의 고금리 기조로 통화정책의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의 마중물 격인 재정집행마저 위축되면 중국경제 침체 등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재정건전화 노력은 필요하지만, 급격한 긴축은 경제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예산 낭비요인 줄이고 복지 분야 8.7% 증액
정부는 29일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 약자 복지 ▲ 미래준비 투자 ▲ 일자리 창출 ▲ 국익·안전 시스템 등을 4대 중점투자 분야로 부각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를 역대 최대폭인 21만원 올리고 지원 대상도 약 4만 가구 늘렸다. 신생아 가구를 위한 주택 특별공급, 유급 육아휴직 6개월 연장, 부모급여·출산지원금(첫만남이용권) 증액 등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책도 내놨다.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전략산업의 생태계 고도화를 지원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첨단 서비스 산업과 K-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도 늘린다.

경찰에 흉악범을 제압할 수 있는 저위험 권총을 확대·보급하고 전국 주요 하천에 수해대응 조기 경보망을 구축하는 등 국민 안전을 위한 대책들도 담았다.
R&D와 국가보조금 등을 중심으로 대폭 구조조정도 이뤄졌다. 전체 구조조정 규모는 2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로부터 집행 부진 지적을 받거나 부정수급 등이 적발된 40개 이상 사업의 예산을 줄인 결과다.
구조조정으로 절감한 예산은 사회복지·안전 분야에 집중적으로 배치됐다. 내년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올해보다 7.5% 늘었고 복지 분야만 따로 보면 증가율이 8.7%에 달한다. 공공질서·안전 예산도 6.1% 확대 편성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R&D 예산은 성역처럼 여겨졌는데 큰 틀을 바꿨다"라며 "흔히 보수정권에 쉽지 않은 약자 복지에 파격적으로 많은 예산을 넣었다"고 말했다.

◇ 역대 최저 총지출 증가율…"재정 건전화는 중장기적 지속가능성이 중요"
총지출 증가율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린 상황에서 내년 예산안의 큰 폭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그만큼 세수 여건이 녹록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은 2.8%로 재정 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다.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4.9%)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정부 지출이 경제 규모가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역대 최저 수준의 지출 증가율을 고수한 끝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관리수지 적자 폭은 3.9%를 기록했다. 재정준칙(3% 이내)은 지키지는 못했지만, 가까스로 3%대에 멈춰 섰다.

추 부총리는 "돈을 써야 할 곳에는 알뜰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역대 최저 수준의 증가율을 정하고 예산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 건전화는 가파른 긴축이 아닌 세수 기반 확충안 등을 포함한 중장기 대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 다이어트는 필요하지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재정 위축은 그간 재정에 의지해 온 경제 전반에 충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지출 증가율(2.8%)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2022년 총지출 증가율(8.7%)은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평균치인 5% 중반에도 크게 미치지 못할 만큼 이례적인 수준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건전성은 중장기적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라며 "재정건전성 수치가 일시적으로 안 좋게 나오더라도 중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재정을 사용하면 세수 기반도 확충하면서 경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내년 경기 불확실성 커지는데…통화·재정정책 여력 '빨간불'
급격한 재정긴축 기조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내년 경기 전망과도 맞물려 우려를 키우고 있다.
최근 중국 경제는 높은 청년 실업률에 부동산 업계 디폴트까지 겹치면서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 경제의 회복세 지연은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2%로 하향 조정한 것도 중국의 성장 둔화세를 반영한 결과다.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도 내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당장 금융시장에 큰 혼란은 없지만 역대급 한미 금리차로 금리 인상 압박이 계속되면 한국 경제 전반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점점 커지는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해 내년 충분한 재정 여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미국의 고금리 여파로 통화정책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은 '최후의 보루'로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R&D 예산의 대폭 삭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성장 잠재력 육성을 목표로 중장기적 시각에서 R&D 투자가 이뤄져야 함에도 단기 성과를 기준으로 '재정 건전성'의 희생양이 됐다는 불만도 나온다.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낮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내년 R&D 예산은 올해보다 16.6%나 줄었지만 정부가 1년 전 발표한 중기계획상 내년 R&D 예산은 4.4% 증액이었다.
추 부총리는 "5년 중기재정계획을 발표하지만 5년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며 "매년 상황이 바뀌니까 매해 5년 중기계획을 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성장동력 산업을 키우고 지속해서 육성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R&D 투자 원칙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껑충 뛴 SOC·노인 예산…왜?
재정 다이어트 속에서도 내년 SOC(사회간접자본)·노인 예산은 올해와 달리 큰 폭으로 늘었다. 일각에서는 '총선용'이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지만 정부는 필수 소요를 반영한 결과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내년 SOC 예산은 26조1천억원으로 올해보다 4.6% 늘어난다. 총지출 증가율(2.8%)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내년 착공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C 사업과 공항 투자가 늘어난 결과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추 부총리는 "SOC 예산은 전국에 필요한 필수 소요를 반영한 것"이라며 "이를 선거와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내년 노인 일자리 예산도 껑충 뛰었다.
노인 일자리 예산은 2020·2021년 각 1조3천억원, 2022년 1조4천억원, 올해 1조5천억원 등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내년 2조원으로 25% 수직상승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노인 일자리 관련 정부 방침은 단순 일자리인 공익형을 줄이고 질 높은 일자리인 민간·사회서비스형을 늘리는 것"이라며 "그간 대기 수요를 반영해 일자리를 많이 늘렸고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 단가도 높아 예산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roc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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