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 100년] ②"비극 되풀이하지 않으려면"…日서 조선인 학살 전시회

입력 2023-08-31 05:05   수정 2023-08-31 16:17

[간토대지진 100년] ②"비극 되풀이하지 않으려면"…日서 조선인 학살 전시회
당시 조선인 학살 두루마리 그림 첫 공개…전시회·촛불집회 등 잇달아
일본 정부 9월 1일은 '방재의 날'…조선인 학살엔 눈감고 방재·부흥만 강조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간토(關東)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올해 일본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을 조명하는 전시회와 행사 등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리는 간토대지진과 관련한 대부분 행사는 방재와 부흥을 주제로 하고 있을 뿐 당시 벌어진 조선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방화한다' 같은 조선인과 관련한 유언비어가 유포돼 약 6천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일본인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됐다.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고려박물관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는 기획전 '간토대지진 100년-은폐된 조선인 학살'이 열리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진행되는 이 기획전에서는 화가 기코쿠가 그린 간토대지진 두루마리 그림의 원본이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그림은 기코쿠가 간토대지진 2년 뒤인 1925년 완성한 작품으로 아라이 가쓰히로 전 고려박물관장(전 센슈대 교수)이 경매에 나온 것을 구입했다.
이 작품에는 간토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집단 학살의 참혹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총과 칼, 죽창 등을 든 일본 군인과 자경단, 일반인이 조선인을 폭행하고 학살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또 피를 흘리고 쓰러진 조선인 시신들이 불타는 모습도 묘사돼 있다.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도 지난달 14일 고려박물관을 찾아 이 작품을 관람했다.
윤 대사는 이 작품 관람 후 한일 간에 존재하는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희생자를 추도하는 한편,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양국 간 미래지향적 우호 관계 구축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다른 전시회와 추모 행사 등도 잇달아 열린다.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 희생자 추도대회 실행위원회'는 31일 도쿄 분쿄구 분쿄시빅홀에서 학살 희생자 추모대회를 개최한다.
이 단체는 또 다음 달 2일 저녁 도쿄 국회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문을 낭독한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다음 달 2일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역사자료관에서 '간토대지진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무엇이 시민을 학살로 몰아갔는가-간토대지진의 비극을 공유하고 전하기 위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 심포지엄에서는 학살 발생 원인과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가 논의된다.
다음 달 3일까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민센터에서 열리는 '제8회 전쟁의 가해 패널전'에서는 올해 특별히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조명했다.
하지만 이런 시민사회 일각의 움직임과 달리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100주년에도 조선인 학살과 관련한 행사는 하나도 마련하지 않는 등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관여·방조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토대지진 발생 직후 일본 내무성이 전국 지자체에 '조선인 폭동'을 사실화하는 유언비어를 타전하는 등 조선인 학살에 일본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정부 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2017년 5월 각료회의에서 간토대지진 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사건과 관련해 '유감의 뜻 표명'을 할 계획이 없다는 답변서를 확정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도 이달 30일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으로 헛소문이 확산하고 많은 조선인이 군·경찰·자경단에 살해됐다고 전해지는 데 대한 정부 입장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반성이나 교훈과 같은 단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이유에서 올해도 재해 예방과 부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지정해 매년 지진뿐 아니라 태풍, 쓰나미 등 여러 재해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고 이에 대처하는 훈련을 실시한다.
내각부는 이달 들어 정부와 관계 공공기관, 지방공공단체, 기타 관계단체에 "올해 방재의 날이 간토대지진 100년이 되는 해이므로 이 기회를 이용해 적극적으로 방재훈련 등 각종 대응을 실시하라"고 당부했다.

일본 정부의 외면이 겹치면서 일본 시민들은 100년이 흐른 지금 간토대지진 당시 벌어진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일본여론조사회가 지난 6∼7월 실시한 간토대지진 100주년 방재 관련 여론조사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정보가 부족해 많은 지역에서 사실이 아닌 소문이 퍼져 혼란이 심해졌다는 사실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모른다'는 응답자가 3명 중 2명꼴인 66%에 달했다. 이 질문에 '알고 있다'고 한 응답자는 33%였다.
간토대지진의 교훈을 계승하고 알려야 할 주체에 대해 63%는 '국가'라고 답했다.
조선인 학살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본 정부가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이를 자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sungjin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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