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가 민주주의 폭격" vs "좌파 실정으로 쿠데타 야기"

입력 2023-09-12 03:10  

"군부가 민주주의 폭격" vs "좌파 실정으로 쿠데타 야기"
'50년 전 군부 쿠데타' 놓고 여론 쪼개진 칠레…분열 짙고 깊다
추모 행사서 대통령 "쿠데타, 정당화 안 돼"…쿠데타 옹호 시위도 잇따라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남미 칠레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군부 쿠데타가 11일(현지시간) 50주년을 맞았다.
민주 선거를 통해 수립된 첫 사회주의 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정부를 군홧발로 무너뜨리고 17년간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는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칠레 사회를 두 쪽으로 가르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군부에 의해 숨지거나 실종된 이들의 가족들은 '정의 실현'을 주장하며 역사적 심판을 요구하는 반면, 경제 발전 치적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비등하고 있어 갈등의 골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고 짙어지고 있다.



◇ '인권 탄압과 독재' 피노체트 vs '실정으로 쿠데타 야기' 아옌데
소아과 의사 출신 살바도르 아옌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혁명이 아닌 자유선거를 통해 남미에서 첫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는 한편 기타 산업에 민간 참여를 허용하는 혼합경제 체제를 도입한 아옌데 정부는 극심한 빈곤 속에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어린이에게 무료로 우유를 보급하는 한편 강력한 소득재분배 정책 등을 추진해 주목받았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을 비롯한 자본가와 상류층의 엄청난 반발 속에 1971∼1973년 사이 칠레 경제는 대위기를 맞았고,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결국 실권했다. 같은 해 8월 23일 아옌데 당시 대통령이 피노체트를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지 19일 만의 일이었다.
쿠데타 당시 대통령 집무실인 라모네다 궁은 총탄과 폭격으로 피해를 보았다. 아옌데 당시 대통령은 이곳에서 마지막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1990년까지 17년간 노조원, 학생, 예술가 등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여 고문을 자행했다. 이 기간 사망자와 고문 피해자 등은 4만명에 이른다. 1천100여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로, 그 가족들은 정의 실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피노체트 군정 시기에 칠레는 민영화와 무역장벽 해소 등 정책이 효과를 내며 신흥 경제국으로 발돋움했다.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이 시기를 '칠레의 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할 정도다.
이 때문에 피노체트에 대한 칠레 내부 평가는 현재까지도 '인권탄압에 앞장선 독재자' 또는 '빈곤에서 구해낸 시대의 지도자'라는 식으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우파 일각에서는 "경제적으로 국가를 위기에 내몬 아옌데 전 대통령이 결과적으로 쿠데타를 불러왔다"는 논리의 수정주의적 '아옌데 책임론'도 제기하고 있다.



◇ 쿠데타 50주년 희생자 추모…"칠레 민주주의 재건"
이날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 집무실(라모네다 궁) 앞 시민광장에서는 당시 정권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칠레 주요 언론이 생중계한 이날 쿠데타 50주년 기념식에는 피노체트 군사 정권 당시 고문 등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이들의 가족을 비롯해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과 정부 주요 장관, 미첼 바첼레트·리카르도 라고스 전 대통령 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멕시코)·구스타보 페트로(콜롬비아)·루이스 아르세(볼리비아)·루이스 라카예 포우(우루과이) 등 중남미 정상들도 자리했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과 사회비판적 가사로 유명한 록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도 초청받았다.



'아옌데 이후 가장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칠레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보리치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오늘 우리는 50년 전 전투기, 탱크, 총기로 무장한 반역의 오만함에 압도돼 법치가 무너질 때도 헌법을 지키려 했던 분들을 기억한다"며 "쿠데타가 일어난 순간부터 칠레 국민의 인권은 유린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폭격으로 무너졌다 재건한 민주주의가 칠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쿠데타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행사에서는 이 지역 민속춤 '쿠에카'에서 변형된 실종자 가족들의 '쿠에카 솔라'(혼자 추는 쿠에카) 공연도 있었다. 쿠에카 솔라는 원래 남녀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쿠에카와는 달리, 이름 그대로 실종자를 그리워하며 하얀 손수건을 들고 추는 처연한 느낌의 독무다.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 당시 라모네다 궁에 대한 폭격이 시작된 시간인 오전 11시 51∼52분께에는 참석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묵념했다. 이때 많은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딸, 이사벨 아옌데 부시 상원의원은 50년 전 쿠데타로 실각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부친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한 뒤 "쿠데타 책임을 아버지에게 돌리려는" 이들을 비판했다.
추모 행사와 대조적으로 이날 우파 정당 독립민주연합(UDI)은 성명을 내고 "1970∼1973년 사이 사회, 정치, 제도적 붕괴가 발생했고, (쿠데타는) 불가피해졌다"며 "오히려 아옌데 정부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군부 쿠데타에 대한 칠레 내부의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외부의 '보이지 않는 손', 특히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정부에서 칠레 좌파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 조짐을 사전에 알고도 이를 묵인했거나 피노체트 세력을 도왔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기밀문서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한편, 칠레 정부는 지난 주말 쿠데타 옹호론자들이 중심이 된 57건의 폭력 사태로 경찰 6명과 시민 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경찰은 불법 행위자 16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walde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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