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진' 노벨상…오래 기다린 유력후보 받는 관행에 '이변'

입력 2023-10-08 08:00  

'빨라진' 노벨상…오래 기다린 유력후보 받는 관행에 '이변'
코로나19 극복 기여한 '백신개발' 주역들 이례적 수상
찰나의 빛으로 전자세계 관측…양자점 발견·합성
문학상은 욘 포세…평화상은 이란 여성 인권운동가에
초유의 수상자 명단 사전유출로 '흑역사' 갱신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올해 노벨상에서는 오랫동안 유력 후보로 거듭 꼽히며 충분한 학계의 검증이 이뤄진 인물들이 상을 받던 예년과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길게는 40∼50년 전 발표된 업적을 시상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 극복에 크게 기여한 두 과학자가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또한 이란에서 여성들의 자유를 향한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옥중의 여성 인권 운동가에게 평화상이 돌아갔다.
다만, 평화상을 제외한 수상자 상당수가 통상적 은퇴 연령을 넘긴 60대 초중반에서 80세 사이라는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현지시간으로 이달 2일부터 9일까지 모두 6개 부문 수상자 공개가 이뤄지는 노벨상은 현재까지 9일 발표될 경제학상을 뺀 5개 부문 수상자가 발표됐다.


◇ 생리·의학상에 'mRNA 백신 개발 주역' 커리코·와이스먼
2일(이하 현지시간) 발표된 생리의학상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기여한 헝가리 출신의 커털린 커리코(68) 헝가리 세게드 대학 교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페렐만 의대 드루 와이스먼(64) 교수에게 돌아갔다.
효과적인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뉴클레오시드 염기 변형에 관한 발견이 이들의 주요 공로다.
노벨위원회는 "현대 인류 건강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였던 시기에 전례 없는 백신 개발 속도에 기여했다"며 코로나19 백신이 지금까지 130억 회 이상 투여돼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중증 감염 수백만건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누적 감염자는 총 7억7천87만5천433명, 누적 사망자는 695만9천316만명이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의 생리의학상 수상은 이례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업적과는 별개로 발표 후 수십 년이 흘러 충분히 검증된 연구성과에 상을 수여하는 노벨상 관행에 비춰 수상이 불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컸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바이러스 단백질 정보가 담긴 mRNA 정보를 변형해 인체에 투여하면 수지상 세포가 이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하면서도 면역계 염증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내 2005년 발표했는데, 실제로 상용화된 결과물이 나온 건 2020년 코로나19 백신이 처음이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역대 의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은 통상 핵심 연구 수행으로부터 평균 21년 뒤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경제학자는 노벨상 수상까지 23년, 물리학자는 23.5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커리코와 와이스먼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이후 18년이 흘렀으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mRNA 백신이 광범위하게 접종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는 3년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수상은 관행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팬데믹 시기에 전례 없는 백신 개발을 가능케 한 공로는 관행을 깨기에 충분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특히 커리코는 한때 비주류였던 mRNA를 연구한다는 이유로 미국 대학에서 사실상 쫓겨나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개발에 매달린 끝에 인류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 '전자 세계의 창' 물리학, '양자점 연구' 화학…"응용 잠재력"
3, 4일 차례로 발표된 물리학상과 화학상의 영예는 다양하게 응용돼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업적에 돌아갔다.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의 움직임을 잡아낼 정도로 파장이 짧은 '찰나의 빛'을 만들어내는 새 실험방법을 고안해 낸 과학자 3인조 피에르 아고스티니(70), 페렌츠 크러우스(61), 안 륄리에(여·65)는 물리학상을 받았다.
'물질의 전자역학 연구를 위한 아토초(100경분의 1초) 펄스광을 생성하는 실험 방법'과 관련한 공로다.
전자의 세계에선 영점몇 아토초만에도 변화가 나타나기에 일반적인 빛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한데, 이들은 100경분의 1초 단위로 변화하는 전자 세계마저 관측·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 미시세계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연구성과가 물질 내에서 전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고 제어하는 것이 중요한 전자공학이나, 서로 다른 분자를 식별해야 하는 의료 진단 등 분야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응용될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화학상에는 양자점(퀀텀 도트) 발견과 합성에 기여한 문지 바웬디(62), 루이스 브루스(80), 알렉세이 예키모프(78) 등 3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바웬디와 브루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국 컬럼비아대 현직 교수이고 예키모프는 전 미국 나노크리스털 테크놀로지사 수석과학자다.
노벨 화학위원회는 "수상자들은 양자(퀀텀) 현상에 따라 특성이 결정될 만큼 작은 입자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며 "양자점이라고 불리는 이 입자는 현재 나노기술 분야에서 중요성이 매우 크다"라고 설명했다.
양자점은 크기가 수∼수십㎚(나노미터·10억분의 1m)인 반도체 결정으로, 양자점의 크기를 나노기술로 조절하면 빛을 흡수해 여기된(들뜬) 전자가 방출하는 에너지 파장(가시광선)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다.
이런 전기적·광학적 특성은 초고화질 디스플레이와 암과 같은 종양의 이미지를 지도처럼 정확하게 그려내 수술을 돕는 등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휠 수 있는 전자기기, 초소형 센서, 초박형 태양전지, 양자 암호통신 등 분야에서도 쓰일 여지가 크다는 게 학계의 전망이다.



◇ 초유의 수상자 명단 유출사태도…노벨상 권위 '휘청'
노벨 화학상과 관련해선 공식 발표를 수시간 앞두고 수상자 명단이 주최 측의 실수로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스웨덴 SVT 방송 등은 화학상 수상자 3명의 이름이 담긴 보도자료 이메일이 발표 예정 시간보다 몇 시간 이른 4일 아침 언론사들에 발송됐다고 보도했다.
수상자 발표 예정 시간은 현지시간 오전 11시 45분(한국시간 오후 6시 45분)이었는데, 발표와 동시에 보내져야 했을 보도자료가 오전 7시 30분 전후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노벨 화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수상자 미정 상황에서 잘못된 자료가 유출된 것이라고 했지만, 최종 발표된 수상자 명단은 보도자료에 담긴 이름과 동일했다.
그간 노벨상 수상자 선정 결과가 사전에 새어 나왔다는 논란이 여러 차례 불거진 바 있지만, 주최측이 실수로 공식 수상자 명단을 사전 유출한 건 이번이 첫 사례다.
일각에선 이런 사고로 노벨상의 권위에 다시 금이 가면서 노벨상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노벨상은 1901년 첫 시상 이후 과학 등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이 이뤄지고 새로운 학문 영역이 여럿 등장했다는 점에서 과학분야 시상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 문학상에 '아침 그리고 저녁' 노르웨이 거장 욘 포세
2023년 노벨 문학상은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시인인 욘 포세(64)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5일 포세에게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그의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말로 표현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포세는 북유럽권에서 널리 알려진 거장으로 그간 40여편의 희곡을 비롯해 소설, 동화책, 시, 에세이 등을 썼으며, 그의 작품은 세계 50여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새로운 이름: 7부작 중 6∼7권'은 작년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다.
포세는 리듬과 멜로디, 침묵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한 언어 구사 중심의 미니멀리즘 성향 작품 세계로 자주 사뮈엘 베케트에 비교되기도 한다.
그는 영국의 유명한 온라인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Nicer Odds)의 배당률 순위에서 중국 작가 찬쉐(殘雪·70)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이전부터 유력한 문학상 후보로 꼽혀왔다.



◇ 평화상, 이란 여성 인권운동가 모하마디 '옥중 수상'
6일 발표된 평화상은 이란의 대표적 여성 인권운동가이자 반정부 인사 나르게스 모하마디(51)가 '옥중 수상'했다.
이란 여성에 대한 압제에 저항하고 인권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앞장선 공로다.
베르트 레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그 정권(이란)은 그를 모두 13차례 체포했고 5차례 유죄를 선고했으며 형량은 도합 31년의 징역형, 154대의 태형이었다"며 "지금 발표하는 순간에도 그는 감옥에 있다"고 말했다.
모하마디는 2003년 이란 여성운동의 '대모'격인 시린 에바디가 이끄는 인권수호자 센터에 가입하면서 인권운동에 투신했고, 이후 이 단체 회장을 맡아 여성 인권과 민주주의 진전, 사형제 반대 등과 관련한 운동을 해왔다.
그의 평화상 수상은 이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1주기 직후에 이뤄졌다. 1주기는 지난달 16일이었다.
모하마디는 작년 아미니의 의문사를 계기로 전국적인 시위 물결이 일었을 때는 교도소 안에서 히잡을 불태우며 저항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노벨위원회는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이란 정부가 모하마디를 석방하길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이란은 외무부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편항적이고 정치적"이라며 모하마디에 대한 평화상 수여 결정을 비난했다.
평화상은 6개 분야 노벨상 중 유일하게 선정 기관이 스웨덴이 아니라 노르웨이에 있다.

◇ 경제학상은 9일 발표…시상식은 12월 10일 전후 열려
경제학상은 9일 중부유럽표준시 오전 11시 45분(한국시간 오후 6시 45분)에 발표될 예정이다.
노벨상 중 가장 늦은 1969년부터 시상이 이뤄진 이 상은 다른 5개 부문과는 달리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것이 아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맞아 상을 제정하기로 하고 1968년 노벨재단에 기부한 출연 재산을 기반으로 1969년부터 수여돼 정식 명칭도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이다.
시상식은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이 낀 '노벨 주간'에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수상자에게는 금메달과 상금 1천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3억5천만원)가 수여된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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