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이어 이스라엘까지…자꾸 불붙는 '세계의 화약고'

입력 2023-10-08 13:01   수정 2023-10-08 17:12

우크라 이어 이스라엘까지…자꾸 불붙는 '세계의 화약고'
미국의 중국 집중·다극화 추세 따른 분쟁 도미노일까
우크라전·아프리카 연쇄 쿠데타·캅카스 분쟁 등 연장선일수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의 기습공격으로 민간인 수백명이 숨지고 인질로 끌려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분쟁 도미노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약없이 이어지는 와중에 또 다른 '화약고'에 불이 댕겨진 것은 점점 불확실해지는 세계 안보의 추세를 보여주는 현상으로 관측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8일(현지시간) 안보 분야 각료를 소집, 심야 회의를 열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를 겨냥한 전쟁 돌입을 공식화했다.
전날 새벽 하마스의 기습 로켓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분쟁으로 이스라엘에선 300명 이상이 숨지고 1천5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 무장대원들에게 붙들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끌려가 인질이 된 민간인도 상당수다.
이에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보복 폭격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의 군사·통치 역량을 파괴한다는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중단없이 공세를 지속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다.
이번 사태는 미국의 중재로 추진돼 온 이스라엘과 아랍 진영의 화해 움직임인 이른바 '중동 데탕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소셜미디어로 공개돼 이스라엘 안팎의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
'이스라엘판 9·11 테러'란 말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근거지를 폐허로 만들겠다며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예고했다.
현재로서는 팔레스타인에 온정적인 아랍 세계의 입장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멘, 튀르키예 등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하마스의 공격을 지지하는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겨냥한 이스라엘 군사작전의 시점이나 규모가 어떻게 될지는 불투명하지만, 전례에 비춰볼 때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할 경우 주변 이슬람 국가들이 일제히 이스라엘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아랍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단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에 자제를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이 "점령을 지속하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그들의 법적 권리를 박탈하고, 그들의 존엄을 겨냥한 체계적 도발이 반복된다면 긴장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은 상당 기간 중단되거나 아예 무산될 수 있다.
CNN방송은 이 같은 상황을 들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동 평화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악재를 만났다고 평가했다.
일부에서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 배후에 이란을 위시한 이슬람 시아파 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일부 제기된다.
이란이 사우디를 위시한 수니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접근이 자국 안보와 지정학적 입지를 위협한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수니파인 하마스를 지원해 온 이란 고위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 발발 직후에도 "자랑스러운 작전"이라며 하마스를 지지했다.
이 같은 의혹과 이미 팽팽한 긴장수준 때문에 이번 사태가 1∼4차에 걸친 중동전쟁처럼 커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과 아랍연맹 혹은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대결로 확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 당국자는 공격 배후가 이란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란이 특정한 공격에 연계돼 있다는 어떤 징후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세계 곳곳에서 각종 분쟁이 증가하는 추세의 연장선에 있을 수 있다.
강대국의 영향력 공백 속에서 잠복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유일한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한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면서 중동 등지의 분쟁에 대한 개입을 줄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뼈아픈 실패로 미국 국민의 여론이 악화하자 자국 실리를 강조하는 고립주의 성향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라이벌 격인 러시아도 작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거센 저항과 서방의 전방위 제재 때문에 해외 영향력이 감소했다.
그 때문에 구소련권에서 그간 눌려있던 갈등이 표면화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지난달에는 캅카스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를 공격해 점령하는 것을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주둔시켜 온 러시아가 사실상 묵인하는 일도 벌어졌다.
올여름 아프리카에선 니제르와 가봉 등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잇따라 쿠데타가 발발, 반(反)서방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기도 했다.
미국의 영향력 감축, 프랑스와 과거 식민지의 관계 파탄이 쿠데타의 배경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멀리 동아시아에선 중국이 수년 내에 대만을 침공할 것이란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협력 강화를 시도하는 한편 '핵무력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하는 등 행보를 보이고 있다.

hwang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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