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 간토대지진·후쿠다무라 사건엔 차별의식…지금도 존재"

입력 2023-10-13 07:00  

"백년전 간토대지진·후쿠다무라 사건엔 차별의식…지금도 존재"
日 간토대지진 때 일본인 살해 '후쿠다무라 사건' 저자 "日 혐오 발언 부끄러워"
"학교서 한일관계 교육 이뤄지면 지독한 발언 안 나올 것…한국어 번역본 기대"



(나가레야마[일본]=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조선인 학살이 없었다면 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도 죽이지 않았을 거예요. 죽여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100년 전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다무라(福田村) 사건'을 취재해 동명의 책을 쓴 쓰지노 야요이(82) 씨는 지난 10일 지바현 나가레야마(流山)시에서 만난 연합뉴스 특파원에게 이 사건과 간토대지진 직후 각지에서 발생한 조선인 학살 배경에 일본인의 차별의식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후쿠다무라 사건은 1923년 9월 일본 수도권을 강타한 간토대지진 무렵 도쿄 인근 지바현 히가시카쓰시카군 후쿠다 마을에서 벌어진 만행을 가리킨다.
당시 도쿄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코쿠섬 가가와현에서 약을 팔기 위해 후쿠다 마을에 온 일본인 15명 가운데 9명이 주민들에게 살해됐다. 희생자 중에는 6세 이하 어린이 3명과 임신부 1명도 있었다.
무고한 이들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마을 주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말투가 그 원인이었다. 시코쿠 사투리를 쓴 탓에 조선인으로 잘못 인식된 것이다.
쓰지노 씨는 "후쿠다무라 사건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소외당하는 하층민인 '피차별 부락민(部落民)'이었다"며 "가가와현에서도 분명히 차별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들이 희생자들을 죽일 때 피차별 부락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견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선인으로 판단해 살해하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간토대지진이라는 대규모 자연재해로 극도의 불안에 빠진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조선인이 방화나 약탈을 저지른다는 유언비어가 널리 퍼졌다.
이로 인해 6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자경단 등에 의해 학살됐고, 후쿠다무라 사건 피해자처럼 조선인으로 오인된 일부 일본인들도 살해됐다.
그는 "일본은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뒤 한반도에서 조선인이 저항하자 무력으로 진압했다"며 "대지진을 계기로 조선인이 배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고, 학살까지 이어졌다고 본다"고 짚었다.
그는 100년 전 확산했던 차별의식이 오늘날 일본 사회에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견해의 근거로 민족, 인종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혐오 발언'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2016년 한국인과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겨냥해 "꾀죄죄한 몰골에 치마저고리와 아이누 민족의상 코스프레 아줌마까지 등장"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지난달 일본 당국으로부터 '인권 침해' 사례로 주의를 받은 자민당 스기타 미오 중의원(하원) 의원을 언급했다.
스기타 의원은 이같이 지적받은 뒤에도 "과거에 철회하고 사죄한 사안"이라며 추가로 반성의 뜻을 표명하지 않았다.
쓰지노 씨는 "혐오 발언이 부끄럽다"며 "일본 학교에서 한국과 일본 관계를 가르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교육이 확실히 이뤄진다면 한국인에 대한 지독한 발언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간토대지진 때 이뤄진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조선인 희생자 추도 행사에 7년 연속 추도문을 보내지 않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가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다고 쓴쏘리도 했다.
당시 증언을 보면 관민이 일체가 돼서 조선인 학살을 자행하거나 방조했고, 조선인을 죽이고는 '만세'를 외친 이도 있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쓰지노 씨는 인근 지역 주민 권유로 1999년부터 이 사건을 취재해 2013년 책을 펴냈다. 책은 5년 전쯤 절판됐다가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올해 개정판이 나왔다.
그는 "후쿠다무라 사건 현장을 갈 때마다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며 "다행히 개정판 반응이 좋아서 6쇄까지 찍었다"고 말했다.
후쿠다무라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지난달 일본에서 개봉됐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을 취재한 기자의 삶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나는 신문기자다' 등을 연출한 모리 다쓰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이우라 아라타와 나가야마 에이타 등이 출연했다.
이 영화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돼 '1923년 9월'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쓰지노 씨는 모리 감독이 인간의 이중성을 잘 포착했다면서 "혼자서는 못 하는 일을 여럿이면 할 수 있고, 스위치 조작으로 단번에 불을 켜듯 보통 사람도 일순간에 잔혹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배우들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아직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역사적 사실은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이 책이 번역되고, 한국 독자들이 그 책을 읽고 함께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젊은 사람이 이런 일을 지속하길 바랍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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