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잡자니 성장 걱정…'딜레마' 한은, 9개월간 금리 동결

입력 2023-10-19 10:02   수정 2023-10-19 10:23

가계부채 잡자니 성장 걱정…'딜레마' 한은, 9개월간 금리 동결
가계부채·환율·물가·성장 '복합 위기'에 올리지도 내리지도
전문가들 "일러야 내년 2분기 인하" 관측 우세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한국은행의 '딜레마' 상황이 지난 1월 이후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현재 한국 경제가 긴축이나 완화 등 한 방향의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위기를 한꺼번에 맞고 있다는 뜻이다.
2.0%포인트(p)까지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나 원/달러 환율 상승, 다시 급증하는 가계부채 등을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출·소비 부진 속에 성장 경로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라 한은으로서는 소비·투자 위축과 대출 부실 위험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올리기도 쉽지 않아 19일 동결이 결정됐다.

◇ 가계대출 6개월째 증가·환율상승·자금유출…금리 인상 요인
우선 현재 기준금리 인상 요인으로는 가계대출과 환율, 물가 불안이 꼽힌다.
한은의 '2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천862조8천억원으로 1분기 말(3월 말·1천853조3천억원)보다 0.5%(9조5천억원) 늘었다.
가계신용은 각종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액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이다.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작년 4분기(-3조6천억원)와 올해 1분기(-14조3천억원) 잇따라 뒷걸음치다가 세 분기 만에 다시 반등했다.
빚을 내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다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각 4조9천억원, 2조4천억원 또 늘었다. 4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지난 7월 말 미국(기준금리 5.25∼5.50%)과의 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인 2.0%포인트(p)까지 벌어진 뒤 원/달러 환율 상승과 자금 유출 압박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실제로 미국 국채 금리가 뛰면서 이달 4일 원/달러 환율(종가 1,363.5원)은 지난해 11월 10일(1,377.5원) 이후 약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자금도 9월 14억3천만달러 빠져나가 8월(-17억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물가도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3.7%로 아직 한은의 전망 경로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으로 앞으로 유가가 빠르게 오르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 경기 회복 불투명하고 PF 등 대출 부실 위험…금리 못 올려
그렇다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선뜻 올리기에는 경기와 대출 부실 관련 위험이 너무 크다.
2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 0.6%)이 1분기(0.3%)보다 높아졌지만, 세부적으로는 작년 하반기 이후 수출 부진 속에서 성장을 홀로 이끌었던 민간소비(-0.1%)마저 설비투자(-0.2%), 정부소비(-1.9%) 등과 함께 뒷걸음쳤다. 그나마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 순수출(수출-수입)만 늘면서 겨우 역성장만 피한 상태다.
8월 산업활동동향 통계에서도 소매판매액지수는 승용차 등 내구재와 의류 등 준내구재 소비 부진으로 7월보다 0.3% 떨어져 두 달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더 오르면 이자 부담 등에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는 위축되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을 중심으로 부실 대출 '폭탄'까지 터질 위험이 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9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 앞서 "수출은 다소 회복되고 있지만, 소비 침체 조짐이 확연해지면서 경기 회복 경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며 "따라서 금통위원들도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미국 등 선진국 경기 둔화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은이 금리를 올려 경기를 더 얼어붙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우리나라 실물 경제 상황이 나쁘고 중국 시장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이나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의 효과는 단기에 그쳐 실익이 없는 반면 부작용은 더 클 것"이라며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 PF에서 문제가 터지거나 내수와 수출이 다 죽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당분간 딜레마 속 동결 이어질 듯…인하는 내년 2분기 이후에나
지난 8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록을 보면, 금통위원들도 이런 딜레마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금통위원은 "앞으로 물가는 대체로 당초 전망 경로를 유지할 것이나, 성장의 하방 리스크(위험)가 커진 반면 금융 불균형은 확대됨에 따라 정책목표간 상충 관계가 심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른 위원도 "현재 상황에서 기준금리 결정 여건을 보면, 상·하방 요인이 혼재하고 있다"며 "물가는 하락 추세지만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부동산 PF 등 취약부문 리스크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경기는 부진이 다소 완화되고 있지만, 본격 회복 국면에는 미치지 못하고 가계부채는 증가 추세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한은의 딜레마와 동결 기조가 내년 초까지 이어지고, 내년 2분기 이후에나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과 함께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내년 2분기 소비 둔화에 대응해 금리 인하를 시작하면 한은도 내수 부진 등을 고려해 2분기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미국이 먼저 금리를 내리고 나서야 한은도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내년 중반 정도나 피벗에 들어가고, 한은은 이보다 늦은 내년 하반기에나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도 "내수 부진에 따른 물가 안정을 바탕으로 내년 3분기부터 물가가 관리 목표치(2%)에 근접할 것"이라며 "이 경우 한은은 내년 하반기 두 차례 금리를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경기 상황에 따라서는 한은의 인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가 예상보다 더 나쁠 경우, 미국보다 한은이 금리를 더 먼저 내릴 수도 있다"며 "더구나 시장의 장기 금리가 빠르게 낮아진다면 한은의 인하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분석했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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