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시 딜라이트] "한국인? 사진 같이 찍을래요" 반기는 형제의 나라

입력 2023-10-27 06:00   수정 2023-10-28 02:04

[터키시 딜라이트] "한국인? 사진 같이 찍을래요" 반기는 형제의 나라
"우리 할아버지도 참전용사" 튀르키예인 마음 속 6·25 기억 여전
2월 강진때 韓구호대 활약도 깊은 인상…"한국 발전 위해 기도하겠다"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한국에서 왔어요? 한국 사람을 만나면 느낌이 참 좋고, 뭐라도 더 잘 대해주고 싶어요."
지난 2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한 경찰서에서 만난 40대 직원이 따뜻한 미소를 띠고 건넨 말이다.
상대방이 먼저 호감을 표하며 다가와 준 덕에 필자가 이역만리 타국의 관공서를 방문하며 품었던 긴장감도 이내 누그러졌다.
이달 초 튀르키예에 도착, 3주 남짓한 짧은 시간 현지 생활을 겪어보며 필자가 받은 첫인상은 푸근함과 정(情)이다.
오지랖이 넓은 이곳 주민들은 거리에서 낯선 동양인의 얼굴을 발견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서툰 영어로 "어디에서 왔나요?"(Where are you from?)라고 말을 걸어온다.
미처 답하기도 전에 먼저 "코레?"(Kore·한국)하고는 찍어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다.
일본인 혹은 중국인이냐는 질문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실제로 한국인을 향해 '형제의 나라'라는 말을 즐겨 쓴다.
휴일 들렀던 박물관에서는 히잡을 두르고 방문객을 맞던 여성이 필자의 6살짜리 아들을 부르더니 볼을 살짝 꼬집으며 "너와 나는, 튀르키예와 한국은 형제이고 자매야"라고 환대했다.
머리칼이 희끗희끗하게 샌 기념품 가게 사장은 셔츠 속에서 하회탈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더니 선물을 덤으로 얹어줬고,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BTS(방탄소년단) 슈가 팬이고요, 한국을 사랑해요"라며 사진을 함께 찍자고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필자는 마흔이 넘도록 '메르하바'라는 튀르키예 인사말을 몰랐는데,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이스탄불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는 다들 아는 것 같다.
굳이 역사책을 들춰보자면, 양국 우호의 뿌리는 6세기 동맹을 맺은 돌궐과 고구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동시대 튀르키예인들의 마음속에는 한국을 남달리 가깝게 느끼게 만들어 주는 끈끈한 연결고리가 따로 있다.
바로 6·25전쟁 참전의 기억이다.
26일 이스탄불의 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인터뷰 대상을 찾던 필자에게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한 청년이 쭈뼛거리며 말을 건네왔다.
공예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네르(29)는 스마트폰 번역 앱을 켜고 "혹시 한국에서 왔느냐"며 "내 외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싸웠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는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가 한국의 산에서 찍은 사진을 어머니가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며 필자에게 포옹을 청해왔다.
필자도 번역 앱을 검색해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준 할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는데,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2월 6일 튀르키예 동남부 안타키아 지역을 덮친 규모 7.8의 강진은 서로를 향한 두 나라의 호감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한국 정부가 급파, 지진 발생 이틀 만에 재해 현장에 도착한 118명 규모의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는 즉시 현장에 투입돼 건물 잔해에 매몰된 생존자들을 구조해냈다. '토백이','티나', '토리', '해태' 등 구조견 4마리도 활약했다.
구조대원들이 머물던 숙영지 텐트에는 현지 주민들이 어색한 한글로 "고마워 형", "형제 나라"라고 쓴 글이 남았다.
당시 명민호 일러스트레이터가 강진 피해를 애도하며 연대의 뜻을 담아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그림이 한국과 튀르키예 양국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기도 했다.
첫 번째 그림에는 6·25 당시 기와집과 초가집 폐허 앞에 선 한국인 소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수통을 건네는 튀르키예 군인의 모습이 담겼다.

바로 옆 두 번째 그림에는 산산이 부서진 건물 앞에서 재투성이가 된 소녀가 한국 긴급구호대가 건네는 물을 마시는 모습이 같은 구도로 그려졌다.
공교롭게도 한국전쟁 종전 70년을 맞이한 올해,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 한국 곁을 지켜줬던 튀르키예를 이제는 한국이 도울 수 있게 된 상황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듯한 모습이다.
교민사회에 따르면 지금도 지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스탄불에서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한 교민은 "피해 복구에 손을 보태려고 갔었는데, 가전제품과 생필품 등 한국의 지원에 감사하다면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보람이 컸다"며 "2002년 월드컵 때처럼 두 나라가 기분 좋게 함께할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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