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밀턴 프리드먼이 한국 의대 정원 논란을 지켜봤다면

입력 2023-11-05 07:07  

[특파원시선] 밀턴 프리드먼이 한국 의대 정원 논란을 지켜봤다면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자유시장 경제학의 거목인 밀턴 프리드먼은 노동조합이 창출한 이익은 비노조원들에게 돌아갈 각종 혜택을 빼앗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런 프리드먼이 미국의 각종 노조 중에서도 가장 철통같은 노조로 지목한 것은 의사들의 이익 단체인 미국의사협회(AMA)다.
AMA는 1847년 '공공 보건의료 향상과 의학 발전'이라는 고상한 목표를 내걸고 출범했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AMA가 의료 면허 발급 제한 등을 통해 의료시장에 진입하려는 경쟁자들을 막기 위한 카르텔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소개한 사례 중에 대표적인 것은 1930년대 초반 나치가 집권한 뒤 독일 국적의 유대계 의사들이 대거 미국으로 탈출하자 AMA가 보인 행태다.
그때까지 미국에선 의대만 졸업하면 다른 조건 없이 의사 면허에 도전할 수 있었지만, AMA는 갑자기 '미국 시민권'을 필수 조건으로 추가하자고 나섰다.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유대계 독일인 의사들의 미국 진료 활동을 막겠다는 이야기였다.
독일 의학이 현재는 물론이고 당시에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환자 보호 등의 목적이 아닌, 미국 의사들의 이익 보호를 위한 주장이었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시각이다.
AMA는 1920년대 대공황 시절에는 더 노골적으로 밥그릇 지키기에 나섰다.
의사의 수를 늘리려는 정부 움직임에 대해 AMA가 "의사 정원이 늘어 의사들의 소득이 떨어지면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제동을 건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도 반복되는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의사가 늘어나면 과잉 진료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난다'라거나 '의대 정원이 늘어나면 교육의 질이 낮아진다' 등의 주장을 폈다.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인 과잉 진료는 개별 의사의 직업·윤리 의식 수준의 문제다.
과잉 진료 방지책은 의사에 대한 단속·처벌 강화나 윤리 교육일 수는 있어도 의대 정원과는 관련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의대 정원이 늘면 과잉 진료도 확산할 것이란 주장은 의사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 집단으로 규정하는 '자학 개그'로 들린다.
프리드먼은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뒤 한 강연에서 "의사 수 증가와 비윤리적 의료행위 증가의 상관관계를 증명할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제발 제시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증적인 연구가 부족한 '공급자 유인수요' 등의 모형을 제시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프리드먼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되지 않는다는 평가다.
의사 정원 확대 반대 논리로 제기된 의대 교육의 질 저하 가능성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라도 의대 교육 환경이 저하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교육 당국과 대학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 집단이 나서서 참견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미국의 의사들이 면허 발급 제한이라는 수단을 통해 의료시장의 경쟁을 관리한 덕에 17~30%의 소득을 더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의사 연봉은 평균 35만 달러(약 4억6천만 원)에 달한다. 각종 전문직 중에서도 최상위 수준이다.
의사 정원이 엄격하게 관리되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의사의 소득은 2021년 기준 2억6천900만원으로 다른 전문직보다 월등히 높다.
지난 2020년 변호사의 평균 수입은 의사의 40% 수준으로, 2014년(60%)에 비해 의사와의 차가 더 벌어졌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가 많은 전문직이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특정 전문직 집단이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 경쟁 제한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같은 시장 왜곡을 바로잡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을 설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공급 부족으로 고통받는 소비자들은 정부의 과감한 시장 정상화 조치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kom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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