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5월부터 텐트 치고 기다려"…아르헨서 확인된 '테일러노믹스'

입력 2023-11-10 07:53  

[르포] "5월부터 텐트 치고 기다려"…아르헨서 확인된 '테일러노믹스'
"음악에 공감하면서 같이 성장했다"…이웃나라서 온 '원정팬'도 많아
팬덤, 대선에도 영향…"아르헨 트럼프 반대" vs "음악과 정치는 별개"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사실은 5월 31일부터 텐트 생활을 했다. 그가 올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걸어 다니는 기업, '테일러노믹스'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인기 절정의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에라스 투어' 첫 공연을 펼친다.
아르헨티나의 스위프트 팬들은 그가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자 확정도 되기 전에 서로 뭉쳐서 리베르 플레이트 축구팀 구장 근처에서 텐트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미카엘라(27)는 팬들이 텐트 생활 규칙까지 만들어가면서 5개월 이상 자리를 지켰다고 설명했다.
텐트에 번호까지 붙여가면서 철저하게 관리를 했는데, 자신이 속한 텐트 1번은 총 28명의 팬이 월 40시간씩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올해 스물 세살인 아테나스는 "(그동안) 모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6월 6일부터 텐트 생활을 했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5월 31일부터 시작했다"면서 "이미 다른 유명 가수 방문 때 알게 된 친구들과 텐트 생활을 한 적이 있어서 이번이 두 번째인데 사정에 따라 월 40시간만 채우면 되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9일 오전, 당일 공연 때문에 텐트는 이미 철수됐고 길바닥에 앉아서 공연장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은 땡볕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얼굴로 손에 '반짝이'를 붙이거나 팔찌를 교환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TV 리포터들과 카메라맨들을 비롯해 여러 매체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수개월간 텐트 생활을 한 것을 가족들에게 숨기거나 창피하게 생각해서 인터뷰가 어려웠다는 현지 언론의 기사들과는 달리, 팬들은 밝은 얼굴로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공연시간까지 한참이 남은 아침 11시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펼쳐지는 리베르 플레이트 축구 스타디움 앞에서는 입장을 기다리는 팬들이 좌석 종류별로 길게 줄지어 서면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10대 청소년들도 많이 보였다.
코르도바주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왔다는 발렌티나(15)와 칸델라(14)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우정의 팔찌를 보여주면서 "스위프트의 노래를 어려서부터 들었으며, 특히 팬데믹 때 많이 들으면서 공감하게 되었다"며 "음악뿐만 아니라 그의 가치관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스위프트 팬들은 한결같이 그의 음악은 특별하고 그가 직접 쓴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쓴 가사를 통해서 서로 다른 환경에 있음에도 동감하게 되며 위로받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스위프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와 같이 성장한 30대나 20대 후반이 있는가 하면, 2020년 팬데믹으로 국가봉쇄 상태에서 집에서 그의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는 10대 및 20대 초반 팬들도 많았다.



길게 늘어선 줄에서 이웃 나라 칠레와 브라질에서 온 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금관을 쓴 크리스티안(19)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지난 월요일에 왔으며, 친구들과 같은 날짜의 공연 표를 구하지 못해서 혼자 기다리고 있지만 다른 팬들과 교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티안 옆에는 브라질에서 왔다는 줄리아(25)가 있었다. 표를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이들은 제일 좋아하는 스위프트의 노래가 뭐냐는 질문과 동시에 "모두 다"를 외쳤다.
그 옆에서 삼삼오오 앉아서 팔찌를 교환하던 4명의 팬 중 말레나(23)와 후아나(18)는 각각 아르헨티나 지방인 산타페주와 네우켄주에서 왔다고 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은 이날 그냥 줄을 서서 공연을 기다리면서 친구가 되었다며 웃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꼭 내가 시공간을 넘어서 그와 같이 성장하는 느낌도 들고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된다"는 세바스티아나(20)는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스위프트가 롤모델이라고 했다.



올해 33세인 테일러 스위프트는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여가수 중 한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블룸버그 추산 순자산 11억 달러(1조4천억원)를 소유하고 있는 스위프트는 오직 음악과 공연만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단순 유명 가수가 아닌 '사회·경제적 파장'을 일으키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스위프트의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식당, 호텔 등 지출이 많이 늘어나면서 '스위프트노믹스'(Swiftonomics, 스위프트+경제를 합친 말)와'투어플레이션(Tourflation)'란 말까지 생겼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는 스위프트가 미국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눈길을 끈다는 기사를 보도하기까지 했다.
미국 20여개 도시에서 올해 3∼8월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를 실시한 스위프트는 이 투어의 판매 수익만 세전으로 22억 달러(2조9천700억원)를 번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미국에서 그가 공연하는 도시의 호텔 가격이 치솟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가격이 급등하는데도 팬들은 그를 보기 위해 기꺼이 고가의 티켓을 구입하고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묵으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스위프트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을 2주 남긴 시점에서, 그의 아르헨티나 팬 일부는 '자유전진당에 반대하는 스위프티스'라고 지칭하면서 극우 대선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의 낙선운동을 개시했다.
이는 스위프트가 2020년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음악 커리어 위험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후보는 당선되면 여성부를 없애고, 낙태법을 폐기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극우 경제학자로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연장 주변에서 '스위프티(스위프트 팬들)는 밀레이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라는 분홍색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밀레이 낙선 운동과 관련, 공연장 앞에서 기다리는 팬들의 반응은 반으로 팽팽하게 나뉘어 있었다.
헤미마(23)와 세바스티아나(20)는 "음악을 떠나서 광기 어린 밀레이를 절대 지지할 수 없으며, 극우는 안된다는 스위프트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훌리에따(20), 카산드라(24) 그리고 크리스티안(23)도 "정치적인 판단은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밀레이는 지지하지 않으며 밀레이 낙선 운동을 하는 스위프트 팬들의 행동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들 외에도 많은 팬이 '밀레이=트럼프'이며 '트럼프 같은 극우는 안된다'는 스위프트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다.



이와는 달리, 지난 5월 말부터 텐트 생활을 하면서 수개월간 공연을 기다려온 아테나스와 미카엘라는 "음악은 음악이고 정치는 정치다"라면서 이번 낙선운동에 반감을 표했다.
"우선 모든 스위프트 팬이 아니라 일부가 그런 발표를 했는데 이는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본다"면서 "미국 상황과 아르헨티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연 14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우리는 '변화'를 원하고 있다"면서 둘 다 밀레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코르도바주에서 왔다는 헤레미아스(23)와 아구스틴(23)도 "음악은 음악이고 정치와는 별개로 봐야 한다"면서 아구스틴은 "두 후보 다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기권표를 행사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헤레미아스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라고 해도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으며, 일부 팬들의 행동을 전체로 인식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밝힐 수 없다"라고 했다.
밀레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팬들조차도 "스위프트 팬이름으로 낙선운동을 개시한 건 잘못되었다고 본다"는 의견도 있었다.
스위프트 팬덤까지 반으로 갈린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은 오는 19일 치러진다.
sunniek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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