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Eye]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선물 받은 김치를 먹었을까

입력 2023-11-11 08:00  

[런던 Eye]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선물 받은 김치를 먹었을까
뉴몰든 한인타운 방문 행사에 왕실 풀 기자단으로 참가
참석자 "악수하게 될 줄 몰랐어…손 두껍고 따뜻해"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찰스 3세 국왕은 뉴몰든 한인타운 방문 때 생일 선물로 받은 김치를 먹었을까.
8일(현지시간) 찰스 3세 국왕은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문을 앞두고 뉴몰든을 처음 방문해서 한인들을 만나고 이른 생일 선물로 김치를 받았다. 찰스 3세는 14일에 75세 생일을 맞는다.
선물로 김치가 준비됐다는 얘기를 듣고 찰스 3세가 맛을 보는 장면을 상상해봤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찰스 3세는 김치가 든 항아리를 받았지만, 보자기를 풀어보진 않았다.
그날 반응으로 유추해보면 찰스 3세는 김치를 들어봤고, 재료가 배추(cabbage)이고 맵다는 것까진 알지만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연합뉴스는 유일하게 영국에 특파원을 둔 한국 주요 매체로서 이날 왕실 소규모 풀 기자단(Royal Rota)에 포함됐다. 그 밖에 펜 기자는 BBC(왕실 출입기자 몫)와 영국 뉴스통신사 PA였고 동포 언론이 1곳 있었다. 사진과 방송 카메라 기자는 1명씩 들어왔다.
풀 기자단은 찰스 3세가 도착해서 떠날 때까지 모든 일정을 같이 했다.
그 외에 취재를 신청한 기자들은 행사장 밖 특정 장소에 배치돼서 찰스 3세가 지지자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풀 기자단은 국왕보다 앞서 움직이되 동선을 방해하면 안 되고 직접 질문은 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왕실 미디어팀의 주요 역할은 기자들을 신속하게 이동시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알려주는 것으로 보였다.

찰스 3세의 표정은 세세하게 볼 수 있지만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 거리일 때가 많았다. 휴대전화로 사진, 영상을 찍을 수 있었지만 계속 움직여야 하니 좋은 위치를 잡기 어려웠다. 기자들은 주로 참석자들을 통해 전해 듣는 방식으로 취재했다.
한 참석자는 "국왕이 소곤소곤 말하는 것 같았다"며 "악수까지 할 줄 예상 못했는데 손이 무척 크고 두껍고 따뜻했다"고 말했다.
영국에 주재하며 찰스 3세를 비교적 가까이 본 것은 세 번째다. 2021년 왕세자 시절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2∼3m 거리에서 지나가며 마주쳤고, 작년엔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미디어 스탠드에서 장례행렬에 선 모습을 봤다.

이번엔 대관식을 치른 후여서인지, 참석자들의 긴장된 표정 때문인지, 평소 다니는 슈퍼, 식당이 있는 동네에 온 것이 이유인지 영국의 군주를 본다는 점이 더욱 실감 났다.
현장에 2시간 전께 도착하자 길은 이미 일부 통제됐고 사람들도 꽤 모여 있었다. 경찰견이 주변을 훑다가 다리 옆으로 지나갔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렸지만,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박자가 빠른 K팝이 나오며 텐션을 끌어올렸다. 한복을 입은 꼬마들의 재잘재잘 목소리도 기분을 들뜨게 했다.
함께 기다리던 영국 기자가 런던 외곽에 한인이 이렇게 많이 사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는 영국 내 한인의 존재를 인식해본 적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면서 지금 나오는 음악이 K팝이냐고 물었다. 그는 뉴진스를 몰랐다.
그에게 국왕이 왜 뉴몰든에 오는 것 같냐고 물으니 윤 대통령 국빈 방문 전에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고,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후 영국이 유럽 너머로 눈을 돌리며 한국에 관심이 커지고, 그 결과 국왕이 한국 대통령을 대관식 후 첫 국빈으로 초청하고, 그런 과정에 영국인들 사이에 한국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로 해석됐다.
왕실은 이후 SNS에 뉴몰든 방문 영상을 올리면서 배경 음악으로 BTS의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했다.
대영제국의 흔적이 더 짙게 남아있던 시기에 자리 잡은 교민들에겐 가슴 벅찬 순간일 듯했다.
이번 행사의 효과를 최소한으로만 봐도 영국 국왕 및 왕실 직원들과 주요 매체 기자들, 기사를 본 많은 독자가 뉴몰든에 유럽 최대 한인타운이 있고 한국인들은 김치를 먹으며 한인 사회가 영국 군주를 환영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됐다.
찰스 3세가 K팝과 한식에 관해 설명을 듣고 한인의 문화를 살펴본 것은 영국에서 한국 문화가 주류로 진입하는 데 상당한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찰스 3세가 이날 참석자들과 나눈 대화를 종합해보면 30여년 전인 1992년 11월 방한 때 기억이 강한 듯했다. 한 참석자에게 한국에 종종 가보냐고 묻고선, 그렇다고 하자 정말 멀다, 진 빠진다(exhausting)고 답했다고 한다.
뉴몰든에 한인이 모인 배경에 관해선 '삼성' 때문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왕실이 배포한 자료엔 예전에 대사관저와 삼성전자가 있던 점 등이 이유로 제시됐다. 통상 한인사회에서는 도심 접근성, 집값, 교육환경을 꼽는다.
찰스 3세는 한인 단체 대표들과 나란히 선 탈북민 2명에게 북한 탈출 과정, 북에 남은 가족, 영국 생활 등에 관해 물으며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찰스 3세는 "윤 대통령을 만나면 한국 문화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그에 더해서 김치와 한식을 맛본다면 한국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찰스 3세는 이날 행사장에 차려진 생일상과 빙수 등 음식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찰스 3세는 김치 선물을 받고선 너무 매워서 머리가 터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내용의 농담을 했는데, 입맛에 맞춰 고춧가루를 조금만 넣고 만든 김치라니 알맞게 익었을 때 한 입 맛을 봤기를 기대해본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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