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의무 폐지 끝까지 난항…정부 믿었더니 돌아온 건 '혼란'

입력 2023-12-21 16:47  

실거주의무 폐지 끝까지 난항…정부 믿었더니 돌아온 건 '혼란'
여소야대 상황 뻔히 알면서 '실거주 폐지·소급적용' 발표
주택법 개정안 국회 국토위 소위 통과 또 '불발'



(서울·세종=연합뉴스) 박초롱 한주홍 기자 =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21일 또다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실거주 의무 적용 대상인 4만7천여가구의 혼란이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이들은 정부가 올해 1월 3일 전매제한 완화와 함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발표하자,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집을 산 청약 당첨자들이다.
그러나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은 올해 2월 법안 발의 후 10개월 넘게 첫 번째 입법 관문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 절충안 찾나 했더니…소위 한 차례 더 열어 논의
국회 국토위는 이날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주택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법안 처리를 보류했다.
이날 소위에서 여야는 실거주 의무를 두되, 입주 직후가 아니라 보유 기간 내에만 의무를 다하면 되도록 한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발의안을 중심으로 절충점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안 되면 논의가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밀리기 때문에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투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도입된 불합리한 규제가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실거주 의무 폐지법이 처리되도록 논의를 서둘러달라고 당부했다.
애초 야당은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지속적인 협의를 거치며 여야 간 이견이 다소 좁혀진 상태였다.
김정재 의원 안은 처음에는 전세를 주더라도 차후 불연속적으로 실거주 기간을 채우면 되도록 했다. 실거주 의무 기간이 2년이라면 1년씩 거주해 합쳐서 2년을 채우면 된다.
더불어민주당 국토위원 사이에선 입주 직후에는 거주하지 않아도 되지만, 실거주 기간은 연속해서 채우는 것으로 절충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 의견이 엇갈리면서 이날 법안 처리는 보류됐다.
국토위 관계자는 "민주당은 실거주 의무를 완화하되 폐지는 반대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지만, 당내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당론으로 입장 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토위는 소위를 한 차례 더 열어 주택법 개정안을 심사한다는 계획이지만, 통과를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실거주 의무 적용 72개 단지 4만7천여세대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입주 시점에서 2∼5년간 직접 거주해야 하는 규정이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로 2021년 도입됐다.
지난해 하반기 분양 시장이 얼어붙자 정부는 올해 1월 전매제한을 완화하고 실거주 의무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아파트는 서울 강동구 e편한세상강일어반브릿지(593가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천32가구) 등 전국 72개 단지, 4만7천595가구다. 이 중 3분의 1가량이 내년에 입주를 앞두고 있다.
실거주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정부를 믿고 움직인 수분양자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실거주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사는 집의 전세 계약을 연장했거나, 자녀 학교, 직장 문제로 이사가 어려운 이들이 있다.
자금이 부족해 전세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 했던 이들은 돈을 구해야 한다.



◇ 국토부 '혼란 자초'…책임 피하긴 어려워
국토교통부는 실거주 의무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혼란을 자초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국토부는 올해 1월 3일 발표한 '2023년 업무보고'에서 시행령만 개정해도 되는 전매제한 완화와 법 개정 사안인 실거주 의무 폐지를 패키지로 묶어 발표했다.
보도자료에는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 옆에 '주택법 개정안 발의'라는 설명이 간략하게 덧붙어 있다.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을 뻔히 알면서 법안이 통과돼야 시행할 수 있는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발표하고, 법이 통과하면 소급 적용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는 미분양 문제에 대한 우려가 상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거주 의무 폐지 발표가 '둔촌주공 살리기'를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 내 대표적 대단지 재건축 아파트에서 미분양이 발생하면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수 있다는 우려에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마침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 등 규제 완화 정책(1·3 대책)을 발표한 날은 미분양이 대거 발생할 위기에 놓였던 둔촌주공 재건축 아파트의 계약일이었다.
공정주택포럼 대표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서울의 경우 보통은 무주택자가 청약해 분양받기 때문에 이들을 다 투기꾼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며 "정부의 전략 부재로 혼란이 가중된 측면이 있기에 정부 말을 믿고 거래한 이들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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