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에르도안이 왜 네타냐후를 때릴까

입력 2024-01-07 06:01  

[특파원 시선] 에르도안이 왜 네타냐후를 때릴까
지방선거 앞두고 이슬람 지지층 결집 효과
美 F-16 도입 등 실리 위해 국제무대 '밀당 게임'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가자지구의 도살자 네타냐후."
"네타냐후가 저지른 짓이 히틀러보다 덜한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상대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이끄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중동의 아랍·이슬람 국가들은 비판과 견제를 쏟아낸다.
하지만 '히틀러', '도살자' 등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는 것은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언뜻 봐서는 이해가 쉽지 않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에 대규모 파병한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지위를 누리고 있고, 현재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는 친(親)서방 성향이다.
이슬람이 주요 종교지만 세속주의 전통이 뿌리 깊고 알카에다나 헤즈볼라,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무장 투쟁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런 튀르키예의 지도자가 공공연히 하마스를 '해방자'이자 '무자헤딘'(성스러운 이슬람 전사)라고 추켜세우고, 미국의 '맹방' 이스라엘을 두고 시아파 이슬람 종주국 이란보다 훨씬 날 선 언어를 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재자'를 자처하며 균형 잡힌 스탠스를 유지했던 것과도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는 우선은 전국 지방선거(3월)가 다가오는 튀르키예 국내 정치상황으로 설명된다.

2003년 첫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작년 5월 재선에 성공하며 사실상 종신 집권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70%에 이르는 살인적 물가상승률과 리라화 가치 급락 등 경제난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스탄불 등 승부처를 탈환해 국정 동력을 강화할 필요가 절실한 상황이다.
보수 이슬람 신자층이 기반인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전쟁 국면에서 팔레스타인 옹호 여론을 타고 지지층 결속을 바랄 수 있다는 관측을 낳는 지점이다.
로이터 통신도 최근 에르도안 대통령이 잇따라 이스라엘 규탄 집회에 참여한 것을 두고 "대선 승리를 도운 민족주의 및 이슬람 정당이 함께했다"고 짚었다.
현지인들은 또 다른 행간을 읽어낸다.
외신에서 수년 근무한 이스탄불의 한 언론인과 만난 자리에서 이 주제를 꺼냈더니 "국제 무대에서의 '밸런스 게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기적으로 미국산 F-16 전투기 추가 도입, 중장기적으로는 EU 가입 등 숙원 달성에 추진력을 얻고자 역내 이슈를 지렛대로 삼는 측면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양국간 투자와 사업이 위축되지 않는 것도 그 방증이라고 했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발언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의 외부 필진 칼럼에도 "튀르키예가 가자에서의 대테러 작전을 공개 비난하는 반면 튀르키예 기업은 이스라엘과 계속 교역한다"며 "서방 동맹에 대한 이중적, 위선적 외교정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피아 구분이 분명해지는 분쟁 사안에서조차 줄을 타듯 하는 에르도안을 두고 서구는 껄끄러워하면서도 쉽게 거리를 두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과거 오스만 제국 때부터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이자 지중해와 흑해 사이 관문이라는 이스탄불의 지정학적 이점이 여전히 남은 덕이다.
FP는 "미국 의회 양당과 행정부 관계자들은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 튀르키예에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것을 자제한다"며 "'대마불사'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세계 강대국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말'은 거리낌 없이 하면서 실리 외교를 펼치는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국립 보아지치대학교 방문학자로 체류 중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6일 튀르키예에 대해 "발칸, 카프카즈, 동지중해 지역이 주변에 방사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역사 속 굵직한 갈등에 익숙해질 법하다"며 "이곳 학자들은 입체적 지정학 게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고 분석했다.
인 교수는 "튀르키예는 분명 나토 동맹국인데 유럽 주류와는 다르게 움직이고, 중동-이슬람 정체성을 한 손에 들고 아랍과도 사뭇 다른 게임을 한다"며 "해석도 각양각색이며, 그러면서도 판을 읽고 주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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